톨스토이가 묻는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오늘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 “당신에게는 얼마나 많은 친구가 필요한가?”누구나 그러할 때, 언제나 똑같을 때, 어디서나 마주할 때 우리는 그 대상(혹은 사건)에 무감각해지기 쉽다. 이 연재의 제목이기도 한 일상(日常) 또한 그렇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다반사(茶飯事)는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이니, 보통 있는 예사로운 일을 이를 것이다. 큰 변화가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 그것이 일상다반사다.최근 일상사가 되어버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계정들을 잠그고
장면 1. 조우“우리는 뭐 이렇게 놀아야 되나? 이야, 안 속네? 베테랑이시네! 베테랑. 멋있다! 터프해. 우리 할아버지가 사람은 간덩이 보고 사귀라고 그랬거든요.”“어이, 재밌게 사네. 근데 죄짓고 살지 마. 이 새끼 딱 몽타주부터 느낌이 우리 관할인데”“걔도 네 몽타주 안 좋아할 거다.”“대체 그쪽은 나한테 왜 이러는데? 나한테 이러고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야, 범인은닉 및 사건 날조, 위증과 증거인멸 사주는 처벌 얼마 안 해. 그냥 제대로 사과하고, 피해자 가족들 책임져 주고 끝내라.”“협박이신가? 그래서 나를 좀 엮어보시
이달 말이면 20년 몸담았던 직장을 떠난다. 소속감은 있었지만, 고용된 노동자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제 할 일만 제대로 한다면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은 곳이 대학이다. 교수가 할 일이란 강의 수준을 유지하고, 개인의 연구실적을 쌓는 것, 학생들이 가치 있는 삶에 목표를 두게 이끌어가는 일 정도이다. 모두가 긴 호흡으로 진행된다. 강의는 학기 단위로, 연구실적평가는 년 단위로 이루어지니 경우에 따라서는 빠르게 달리거나 쉬엄쉬엄 걷거나를 자율적으로 조율하면 된다. 이것만 지키면 대부분의 교수는 정년까지 갈 수 있다. 하나의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어요.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어. 사랑밖엔 난 몰라.”아이는 앳된 모습으로 중학교 1학년 때 혼자 캐나다로 떠났다. 본인이 원해서 갔으니 잘 지낼 거다, 우리 부부는 덤덤히 각자 할 일이나 열심히 하고 지냈다.하루는 아내가 말했다.“아이 보내고 너무 태평하네. 그간 물고 빨았던 건 가식이었던 거냐 친구가 그러더라.” 아내 나이 26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기를 꼬박 1년 그랬다고 했다.
“네 주변에 사람이 안 붙어있는 이유가 네 태도 때문이란 생각 안 해보니?”얼마 전 하지 않으면 더 좋았을 말을 동생에게 던지고 말았다. 그날 나는 짧은 일정으로 해외 출장 중이었고, 시간에 늦지 않게 회의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오빠, 엄마 카톡 계정 뭐로 되어 있어요??”내가 미처 메시지 확인을 못 하고 시간이 흘렀을 때 동생이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됐어요. 직접 계정 찾기 했어요. 구글로 다 되어 있구나? 그대로 유지해주세요.”‘그대로 유지해주세요’라는 말이 명령조로 들리면서 갑자기 꼭지가 돌았다. 지난 이십여년간 내가
꽃샘추위가 있다 하더라도 3월의 시작이면 봄이 왔다고 봐야겠죠. 봄을 시샘하는 찬 바람이 얼마간 불겠고 한두 번 눈이 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봄은 올 것이며 여름이 뒤따를 겁니다. 저도 이런저런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모터사이클의 오랜 먼지도 털고 시동도 걸어줍니다. 방전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 녀석에게는 CPR을 실시합니다. 겨우 숨이 살아나고 엔진의 작은 고동이 느껴집니다. 봄 아지랑이 사이사이를 누비며 달릴 꿈을 꿉니다.인생을 곧잘 계절에 비유하곤 합니다. 봄은 싹이 트고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은 저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두둑한 보상이 따른다니 가보겠습니다.” - 이상희 교수 / 고인류학자, UC Riverside새해가 밝은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첫 달이 지나갑니다. 모두 새해의 다짐 한 두 개쯤은 하셨죠? 출근길 한숨 속에 지난 밤의 소주 냄새가 묻어나는 당신이 오늘만큼은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는 것 같은 크고 작은 많은 다짐 말입니다. 금연, 금주처럼 ’금’자를 붙일 수 있는 것들이 물론 단골손님이겠고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열댓 가지의 결심들이 메모장을 가득 채웠
“세상일이란 게 그렇고 그런 거지(You know, it‘s like anything else)” - 우디 앨런의 영화 ‘애니씽 엘스’ 중. 제가 2018년에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는 건조하게도 보험료 출금 알림 메시지였습니다. 이후 신년을 숨죽여 기다리는 듯 5시간 5분의 적막이 흘렀고, 자정을 맞아 신년축하 메시지가 폭죽처럼 터져 올랐습니다. 매해 찾아오는 12월 말일과 1월 1일이 만나는 자정의 익숙한 모습입니다.하지만 해 바뀜이라는 순간은 연속되는 일상의 분기점일 수 있을
아침에 눈을 뜨니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온통 첫눈에 관한 소식이다. 아, 첫눈. 첫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은 모두가 하나씩 가진 터라 나도 잠시 기억을 추슬러 본다. 하지만 정말 잠시였다. 꿈속에 머문 나와 달리 아내는 현실적이다. 창밖으로 내리는 무거운 눈발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탈탈 털며 나가자고 재촉한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You know nothing, John Snow.”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나는 아파트에 살았다. 결혼 후부터 줄곧 공동관리주택에 살았으니 근 30년간 내게 집은 그저 관리비만
저는 요즘 바늘방석에 맨살로 앉은 것처럼 괴로웠습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현실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오랜 시간 일했지만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고, 부딪힐수록 깎여나가는 부분은 더욱더 뾰족하고 날카로워 질 뿐이었습니다. 나이에 맞게 주어지는 책임감 또한 무거웠습니다. 목이 옭조여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얼마 전 한국인 최초의 우주 비행사 이소연 박사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딱 10년 전인 2008년 4월 8일부터 11일간 우주를 비행하며 무려 18가지의 기초과학 실험 임무를 진행하
매년 한 번은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난다. 봄, 가을이 라이딩하기에 좋다. 언제부턴가 덥고 긴 여름과 춥고 긴 겨울만 남게 되어 택일은 꽤나 어려워졌다. 상반기 호시절엔 이사가 겹치고 평년보다 비가 잦아 떠나질 못했다. 여름은 호들갑스럽게 뜨거웠다. 9월 첫 주가 지나고 내린 비에 날씨가 급변했다. 밤에는 서늘한 기운이 옷깃을 스몄다. 서둘러 열흘간의 여행 일정을 짰다. 이번에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까지 들어가기에 팔도를 다 걸치는 편애 없는 여행이다. 각 지역의 숙소와 배편까지 완벽하게 예약을 마쳤다. 여행 중 준비 없이 비를
뮤지컬의 막이 잠시 내려오고 길지 않은 휴식시간이 주어지자 낡은 극장의 협소한 화장실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소리로 떠들기도 하고 막간을 이용해 팸플릿을 보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모습이었다.그때 얼굴이 사색이 되어 큰일을 치르고야 말 것 같은 이가 사람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죄송합니다... 마치 꿈속에서 소리를 지를 때처럼 묵음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모두가 그 사람을 쳐다보지만, 누구도 욕을 하지 못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기 때문이다.이십여 년 전, 아버지에게 심근경색이
아내와 나는 동갑이고 캠퍼스 커플이었다. 그러나 졸업한 뒤 반년 만에 헤어졌다. 대학원으로 진학한 나와는 달리 집사람은 대기업에 취업했다. 사회생활을 하던 그녀의 눈에 공부한답시고 여전히 부모에게 얹혀살며 장난이나 치고 있던 남자친구는 얼마나 한심하고 불안해 보였겠는가. 헤어져 있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익숙해진 관계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집사람 이외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2년 후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 결혼을 했다.우리는 본가의 2층에 신혼살림을 꾸렸다. 2층에는 우리 침실과 내 서재 그리고 여동생이 쓰는 방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