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부터 소멸까지 친환경적인 독서대 ‘G.스탠드’

지속가능한 디자인으로 사회문제 풀어가는 그레이프랩

갈수록 사회가 피라미드 구조로 굳어져가고 있어요. 바닥 층이 점점 넓어지고 꼭대기는 고정화되는 겁니다. 그런 경제 구조는 건강하지 못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더군요.”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는 대안으로 포도송이( The Bunch of Grapes ) 이론을 제시했다.

포도는 독식해가며 몸집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옆에 또 다른 송이가 달리며 성장합니다. 누가 누구를 해치지 않고 작은 조직들이  서로 연결되는 구조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포도송이 이론을 앞세워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그 첫 작품이 G.스탠드이다.

100% 재생지로 만든 친환경 독서대 G. 스탠드(사진제공=그레이프랩)

재생 종이 100%… 접착제·코팅처리 0

G.스탠드라고 이름 붙여진 독서대는 100% 재생종이 한 장으로 만들어졌다. 어떤 화학적 접착제를 쓰지 않았고 코팅이 돼 있지 않아 쓰임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간다.

“ 요즘 비닐 대신 종이 봉투를 쓴다고 하지만 나무를 베어낸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전 세계적으로 베어진 나무의 30~40%가 종이로 만들어집니다. 재생지를 쓴다는 건 그만큼 사회적 임팩트가 커지는 거죠.”

G.스탠드는 케이스+접이식 독서대로 구성돼있고 제품의 오염을 막기 위한 포장도 비닐대신 마섬유로 만들었다.

무게 110g. 가벼워 휴대하기 편하고 다양한 크기의 책은 물론 휴대폰·노트북 거치대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종이 자체는 힘이 없지만 이를 접어 만든 기하학적 폴딩 구조는 한 장의 종이를 마치 건축물처럼 안정감 있고 튼튼하게 만들어줍니다.”

노트북이나 태블릿PC 거치대로 활용된 G.스탠드(사진제공=그레이프랩)

독서대는 최대 5kg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다. 특히 기하학적인 폴딩 구조는 창의적인 수학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로 교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G.스탠드 제작기술에는 기하학적인 수학의 원리가 숨어져 있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크라우드 펀딩에서는 목표금액의 1944%를 달성했고 친환경 제품을 회사 기념품으로 제작하고 싶은 기업들로부터 컨설팅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적정 기술로 발달 장애인들과 협업

G.스탠드는 에너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정기술로 만들어졌다. 제작에는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한다. 김 대표는 사원 신승호 씨를 가리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기둥이라고 소개했다.

G. 스탠드는 ‘오리가미(종이접기)’라는 적정기술로 제작된다.

“3시간 만에 45개의 독서대를 접습니다. 그림도 잘 그려 이달 말 승호 씨의 그림이 들어간 아트 독서대가 출시됩니다. 다른 사원들을 책임지는 매니저 역할도 잘 해내고 교육도 잘 시킵니다.”

지난 1년간 승호씨의 활약상을 지켜본 그는 석 달 전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지내는 3명의 발달장애인들을 추가로 고용했다.

시급 1만 원…발달장애인 작가들과 수익배분

서울 한남동 사무실 앞에서 G. 스탠드를 들고 선 그레이프랩 직원들

이들은 장시간 근로가 힘들기 때문에 일주일에 1~2회 출근해 작업에 동참한다. 장애를 지녔다고 해서 시급이 낮은 것은 아니다. 접기만 하는 사원들의 시급은 1만 원. 기술이 좋고 매니저 역할을 맡은 승호 씨는 1만 2000원을 받는다.

제 역할은 장애인을 포함해 노인·이주노동자·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디자인 제품을 개발하고 그들과 협업을 통해 상품화시키는 겁니다. 경제활동은 고용과 수익 배분 형태로 하고요.”

승호 씨의 경우 3중 구조로 수입이 발생한다. 시급을 받고 일하고, 독서대에 그림을 그리는 제작비는 따로 받는다. 자신의 작품이 그려진 독서대가 판매되면 수익을 절반씩 나눠 갖는다.

상품 설명서가 담긴 카드의 삽화(오른쪽)도 승호씨 작품이다.

“혹시 회사에 나오기 힘든 상황이 생긴다 하더라도 제품이 팔리면 수익을 챙길 수 있는 구조로 경제적 안정을 꾀하려는 목적입니다.”

그레이프랩은 지난해 비영리 예술단체 로사이드 소속의 발달장애인 작가 2명과 협업의 형태로 아트 에디션을 제작했고 그 판매수입의 50%를 로사이드와 작가들에게 배분했다.

상생의 비결…나눔

김 대표는 창업 전 10년 넘게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했다. 카카오 초창기 멤버로 이모티콘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모티콘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상생의 지혜를 얻었다.

“서비스를 구상하면서 웹툰 작가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들은 소통 감각이 뛰어나고 유머도 많지요. 그 감각을 살리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당시 이모티콘 서비스에 대한 사내 반응이 시큰둥했고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작가들에게 큰돈을 지급할 형편이 못됐다. 그래서 그는 웹툰 작가와 수익을 절반씩 나누는 형태로 사업모델을 짰다.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

“ 대성공이었죠. 서비스가 잘 될수록 카카오도 잘되고 작가도 잘 되는 걸 보면서 서로 나눠도 한쪽이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잘되는 상생모델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2012년 말 4년 동안의 카카오 근무를 접고 상생의 모델을 더 연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집중 연구했다. G. 스탠드라는 제품은 그때 포장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한 샌드위치 박스 모델을 변형한 형태다.

장애인들의 특성을 재능으로 승화

김 대표가 협업의 첫 대상으로 발달장애인을 선택한 것은 유산이란 개인의 아픈 경험에서 비롯됐다.

“아이가 너무 약해 태어난다 해도 장애를 갖게 될 거라고 의사가 말했어요. 아이를 살리려고 온갖 병원을 드나들며 아픈 애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우리애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면 어떻게 키워야 할까 진지한 고민을 했지요. 제가 내린 결론은 장애인 문제를 개인의 몫으로 남겨둬서는 안되며 사회가 십시일반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는 무작정 장애인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1년 넘게 미술 수업과 봉사 활동을 하면서 이들이 성장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면밀히 관찰했다. 그는 발달장애인들의 개성 넘치는 그림 솜씨와 성실성 그리고 상대방이 슬프거나 힘들 때 걱정해주는 공감능력에 반했다.

G.스탠드 아트에디션은 로사이드소속 발달장애인 작가들과의 협업 작품이다.(사진제공=그레이프랩)

우린 장애인을 생각했을 때 부족한 점을 찾아내 이를 고쳐주려고만 합니다. 이보다는 그들이 잘하는 점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일반인보다 더 잘할 수 있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세계로 풍덩

2017년 그레이프랩을 창업한 김 대표는 G. 스탠드를 시작으로 조명과 거치대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무드등(G. Light), 페트병에서 뽑아낸 섬유로 만든 에코가방 (G.Bag) 등 친환경 제품을 속속 내놓을 전망이다. 더불어 이를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보다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아름씨(왼쪽)는 “다시 일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레이프랩은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유연성있는 근무형태를 실험중이다.

비영리단체에서 코디네이터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이아름 씨는 육아로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 여성이다. 그는 올해 그레이프랩에 입사했다. 재택근무형태로 기획과 조사· 콘텐츠 제작 등의 업무를 총괄하고 1주일에 한번 출근해 진행사항을 공유한다.

장애인이든 경력단절 여성이든 사회적 약자들이 그들의 예술적 감각이나 기술로 사회에 기여하고 정당한 대가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잉크가 30% 적게 쓰이는 지속가능한 서체로 인쇄된 명함(사진제공=그레이프랩)

그가 건넨 명함에는 영어 알파벳 G.(dot)이라는 로고가 새겨져있다. 이 서체는 영국의 문구 전문 업체 Ryman 사가 만든 지속 가능한 디자인 서체라고 한다. 글자의 선을 꽉 채우지 않고 공간을 비워 둠으로써 잉크가 30% 적게 든다. 종이는 박스 종이를 사용했다. 그의 삶 속에 파고든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마치 포도송이들이 연이어 주렁주렁 매달린 것처럼…

글. 백선기(이로운넷 책임에디터)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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