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주체는 나, 의사는 조력자…주치의 프로그램 통해 알았죠”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혁신파크 내 건강혁신점 1개월차 113명 등록
조합원 가입하면 월 1만원 이용…주치의와 대화로 건강상담 및 생활‧운동 처방

#정효정(46‧여) 씨는 2주 전부터 줄넘기를 시작했다. 첫 주에는 하루 100개도 버거웠지만, 지금은 300개는 거뜬히 할 만큼 실력이 늘었다. 그가 줄넘기를 시작한 이유는 ‘주치의’가 운동을 제안하면서다. 주치의 프로그램에 등록한 효정 씨는 ‘운동 처방’으로 유산소 운동이자 근력 운동이면서 생활 속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줄넘기를 추천받아 매일 실천 중이다.

살림의원 건강혁신점 뒤편에 마련된 공간에서 김신애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정효정 씨가 줄넘기를 하고 있다.

‘주치의 프로그램’을 전면으로 내세운 살림의원 건강혁신점이 지난달 2일 서울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에 문을 열었다. 개원 한 달을 맞이한 이곳에는 7월 한 달간 환자 414명이 다녀갔고, 주치의 프로그램에 가입한 사람만 113명이다. 올해 말까지 프로그램에 150명이 등록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는데, 한 달 만에 목표 수치에 다가섰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사협)이 새롭게 시도하는 ‘주치의 프로그램’은 출자금 5만원을 내고 조합원이 된 뒤, 월 1만원만 내면 주치의와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의료 모델이다. 원래는 개인 또는 가족이 동네 의원의 단골 의사를 주치의로 정한 뒤, 매년 일정액을 내면 진료 및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보험자 또는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 영국, 캐나다, 쿠바 등 일부 국가에서 채택해 운영 중이나, 한국에는 도입되지 않아 비영리 의료기관인 살림사협에서 시도에 나선 것이다. 지난 2012년 서울 구산동에 살림의원을 개원한 살림사협은 최근 24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이용할 만큼 호응을 얻고 있다. 구산점 환자가 늘어나면서 건강혁신점을 추가로 열고, 주치의 한 명이 돌보는 환자를 제한해 의료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주치의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로 했다.

“적지 않은 비용에 비효율적 관리, 제대로 된 설명 못 듣는 문제점”

김신애 살림의원 건강혁신점 주치의(오른쪽)가 환자와 상담하고 있다.

건강혁신점에서는 주치의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와 의사가 친근한 관계를 맺고, 30분~1시간가량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동네 의원에서 조기 진단 및 치료가 가능한 질병들을 해결한다. 의원 내에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해 소아청소년과, 내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정형외과 등 과목의 질병을 1차로 살피고, 간단한 혈액‧초음파 검사나 예방접종 등을 시행한다.

주치의를 맡은 김신애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우리나라에서는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게 어렵지 않은 편이라 1차 병원(동네 의원)뿐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2~3차 병원(중‧대형 의원)도 이용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주치의 프로그램을 시작한 후 여기저기서 진료받은 기록과 처방받은 약을 들고와 질문을 쏟아내는 환자들을 보면서 여전히 의료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음을 실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전문의는 “환자들이 병원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치르면서도 비효율적인 관리를 받고, 의사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한다는 게 큰 문제점”이라며 “물론 주치의 프로그램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지만, 우리가 시도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부에 관련 정책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식습관‧수면패턴‧운동방법까지 알려주는 주치의…내 삶과 연관성 높여

살림의원 건강혁신점은 지난달 2일 서울혁신파크 참여동 103호에 문을 열었다.

주치의가 하루에 돌보는 환자 수가 제한되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등록제, 예약제로 운영된다. 주치의와 충분한 시간 동안 상담하면서 환자는 나의 건강 역사에 대해 돌아보고, 평소 증상이나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며 개인맞춤형 생활 처방이나 운동 처방도 받을 수 있다.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조합원 정효정 씨는 “지금껏 다녔던 병‧의원과 근본적으로 달라 만족감이 크다”는 이용 소감을 밝혔다. 그는 “다른 병원의 경우 의사는 나와 별개의 존재, 의료 지식이 훨씬 많은 우월한 대상처럼 느껴져 소소한 것에 대해 물어보기 어려웠다”며 “건강혁신점에서는 주치의와 내 생활 전반이나 건강 고민에 대해 친밀하고 상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건강의 주체가 나 자신이며, 의사는 조력자일 뿐이라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어요. 사실 나의 건강은 일상에서 소소하게 아픈 게 더 많거든요. 크게 아프면 곧바로 병원에 가니까요. 생활 속에서 느끼는 작은 증상들이 큰 병으로 진행될 지, 가볍게 치료하고 말 건지 판단하고 싶은데, 병원에서는 상담하기 어려우니까 인터넷에서 잘못된 정보를 찾게 되잖아요. 이제 주치의가 있으니 곧바로 해결할 수 있어요”

취업준비생 고은빈(25‧여) 씨는 건강혁신점이 문을 열 때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그는 “최근 건강이 나빠져 힘들어하던 중 주치의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며 “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내 건강 전반을 주치의와 함께 관리할 수 있어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식습관, 수면 패턴 등 일상생활에서 중요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고민하면서 내 건강과 삶 전반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처럼 ‘최저건강’ 개념 우리 삶에 필요해…1년간 자료 바탕으로 정책 제안할 계획

살림사협 조합원이 되면 주치의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예방 관련 비보험 진료비를 10~20% 할인받을 수 있다.

김 전문의는 지난 한 달간 주치의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들을 만나면서 “신체적으로 아픈 이들만큼 정신적‧심리적으로 위태로운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20~40대 젊은 직장인들이 최소한의 건강관리를 할 시간조차 없이 업무에 시달리는 환경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출‧퇴근만 2시간 이상 걸리는 분들은 아침 식사, 운동 등 건강에 투자하는 시간이 적고, 일과 휴식 사이 ‘스위치 오프’ 할 여유가 없는 이들 역시 온종일 긴장을 안고 산다”며 “이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 스트레스 질병, 비만, 대사증후군 등을 떠안게 된다”고 진단했다. 김 전문의는 “최저임금처럼 ‘최저건강’이라는 개념이 우리 삶에 필요하다”며 “지금 젊은 세대를 돌보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7월 건강혁신점 주치의 프로그램에 가입한 총 113명 중 85명의 초진 및 상담이 끝났고, 지난 2일부터 재진이 시작됐다. 만 12세 이상부터 조합원 가입 및 이용이 가능한데, 18세 고등학생 환자부터 60대 나이 지긋한 조합원까지 다양하게 건강혁신점을 찾았다.

살림사협은 앞으로 1년간 주치의 프로그램을 시행해 사람들의 건강이 얼마나 증진됐는지, 비용은 얼마나 들고 의료진들의 삶은 어떤지 등을 평가해 자료를 만들고, 실제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 국회 등에 정책 제안을 해나갈 계획이다. 김 전문의는 “무엇보다 생활 처방이나 상담 등에 대한 의료보험 수가가 보장되면, 우리나라 의료 행태 전반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글. 양승희 이로운넷 기자
사진제공.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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