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기획-도시농부이야기] 입하에 밤나무를 슬퍼함(환상박피술 環狀剝皮術)<2편>

“텃밭 경작에 방해된다고 11살에…”

환경기획/도시농부 이야기(2)

둘째는 다소 차분해진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이렇듯 우리는 세상과 소통하는 감각과 지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식물도 인간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먹고 성장하며, 가난과 슬픔과 고통을 겪으며, 서로 돕고 친구를 사귀며 자손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할 줄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들처럼 움직일 수 없다는 이유로 식물을 과소평가하고, 함부로 다루어 왔습니다. 언제나 동물보다 뒷전이었죠. 식물을 ‘움직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열등한 생물로 취급해 마구 베어내고 뿌리 뽑아버려도 괜찮은 존재로 여깁니다.

고사한 밤나무 사형제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인간이 식물 없이 살 수 있는지를. 식물이 없어진다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고등동물은 몇 주를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식물은 더 번창하겠지요. 인간은 전적으로 식물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먹고 숨 쉬는 생존과는 관련이 없는 일에도 인간이 식물에 기대는 경우는 무척 다양합니다. 밤나무와 당신이 관련된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당신께서는 우리의 씨앗인 밤 없이 혼례를 치룰 수 있나요? 사당이나 묘소의 위패를 만들 때 밤나무를 쓰고, 제사상에 반드시 밤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왜 세계 모든 나라의 철도침목은 밤나무목재를 사용했을까요?

고양시도시농부네트워크 벽제농장 전경

밤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려 가뭄 같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많은 열매를 맺기에 부귀와 다산을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혼례를 치를 때 자식 많이 낳으라고 대추와 함께 밤을 신부에게 던져주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또한 밤은 자기가 낳은 근본을 잊지 않는 덕(德)이 있는 나무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다른 식물의 종자는 싹이 나올 때 종자 껍질을 밀고 올라오는데 밤나무만 뿌리와 줄기사이에 오랫동안 종자껍질을 그대로 매달고 생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징을 빌려 제사에 밤과 밤나무를 써왔던 것입니다. 또한 밤나무의 목질은 재질이 단단하고 방부제 역할을 하는 타닌성분이 많아 잘 썩지 않기에 오랫동안 철로의 침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장이나 번식을 위해 인간에게 기대는 어떠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으로부터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환상 박피술

지금까지 입술을 꾹 깨물고 있던 셋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리 사형제가 아무렇게나 죽임을 당한 것은 인간들이 우리 식물의 진가(眞價)를 몰라서 입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뿌리가 텃밭경작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 하나로 고사당했습니다. 우리의 나이테가 (겨우)11개 생겼을 때입니다. 이곳 벽제동은 접경지DMZ에서 멀지 않아 곳곳에 방어용 참호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잎을 떨구고 긴 잠을 준비하고 있던 겨울의 문턱에 이곳에도 참호선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형제의 한가운데에 땅을 파고 참호를 쌓은 군인이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지나가듯 한마디 하였습니다. ‘유사시 시야확보를 위해 이 나무들을 베어야할 수도 있습니다.’ 주위에 있던 구경꾼 중 단 한사람만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 형제가 뿌리내리고 있는 비탈아래에서 10평 남짓한 텃밭을 일구려 생각한 것을 걱정하고 있던 차입니다. 달빛이 참호를 환히 비추던 날 그는 톱과 끌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우리의 뿌리가 그 밭으로 뻗어나가 토양의 양분을 빼앗아 갈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참호를 판 군인이 생각없이 뱉은 말을 그는 이 나무들을 없애도 좋다는 신호로 해석한 것입니다.

밤나무 사형제 가운데의 참호

우리는 그가 장차 하려는 끔직한 행위에 얼어붙었습니다. 비상 신호를 각 부위에 보내고 위험을 알리는 화학물질을 급히 날려 보냅니다. 하지만 그가 작업에 착수하자 모든 것이 부질없어졌습니다. 그는 우리의 급소를 정확히 알고 아주 쉽게 그곳을 공략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무나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무기물은 줄기 안에 있는 물관을 타고 오릅니다. 물관부는 동맥의 역할을 합니다. 죽은 세포로 되어있고 나무중심에 가까이 있습니다. 광합성으로 잎에서 만들어진 당분 등의 영양분은 겉껍질 바로 안쪽의 체관을 타고 각 부위로 전달됩니다. 체관부는 정맥입니다. 바나나껍질을 벗겨보면 과육과 껍질사이에 하얀 실 같은 줄이 여러 개 붙어있습니다. 이 줄이 바로 체관부입니다.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고사시킬 때 쓰는 환상 박피술은 이 체관부를 벗겨내는 것입니다. 먼저 톱으로 빙 돌아 수피부분을 자른 다음, 끌 같은 도구로 잘린 사이의 수피를 도려냅니다. 나무줄기를 빙 돌아 벗겨내기 때문에 잎에서 만들어진 양분이 그 아래 뿌리까지 내려 갈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뿌리가 죽게 되고 곧이어 나무 전체가 말라죽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뿌리부분에 저장되어 있는 양분이 고갈 될 때까지 연명할 수는 있습니다.

[3편에서 계속]

글. 고양시도시농부네트워크 윤병훈 이로운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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