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 장애인의 날 기획]<2>칠흑어둠 속, 탁구치고 파스타 먹어봤더니…

장애인식 개선 위한 이색 체험카페 ‘눈탱이감탱이’

음식 사진 언감생신 미각•후각으로만 맛 인식

‘눈’이 보여 ‘감’사함을 느끼는 곳…이색 데이트•회식 장소로 제격

#지난 16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눈탱이감탱이’ 카페. 로비에서 직원의 어깨를 잡고 깜깜한 공간으로 들어서자, 손에 힘이 들어가고 발걸음이 느려진다. 나를 인도하는 직원의 어깨가 생명줄처럼 느껴진다. 탁구대가 있는 방에 불이 희미하게 켜있다. 이내 직원이 불을 끄니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인다. 여기서 운동을 하다니!

일반 탁구는 공이 허공을 날아다니지만, 시각장애인용 탁구는 공이 탁구대 위를 구른다. 공안에 구슬이 들어있어 굴릴 때마다 소리도 난다. 경기에는 색다른 규칙이 하나 있다. 서브를 넣기 전에 꼭 “서브 넣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기자는 계속 그 규칙을 잊은 채 게임을 시작해 10점 넘게 감점됐다. 탁구를 치면서 가장 답답한 때는 공이 떨어진 상황. 눈이 보이지 않으니 떨어진 공을 찾을 방법이 없다. 그 상황을 대비해 예비 공이 마련돼 있었지만 예비 공마저 잃어버렸다. 군데군데 짚어보며 찾는데 손으로 바닥 닦는 모양새다. 기분이 영 나쁘다.

탁구대 위 벨을 누르니 직원이 찾아와 식사 방으로 안내한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길을 척척 찾는 직원이 신기하다. 적외선 안경이라도 썼냐고 물으니 “교육과 연습의 결과”란다. 의자에 앉게 도와주고 쓰레기통, 벨, 냅킨의 위치를 알려준다. 음식을 기다리며 테이블 한 쪽에 놓인 점자책을 만지작거린다. 점자가 무척 작아 점 사이 경계도 느껴지지 않는다. 손 끝 감각이 예민해야 읽을 수 있을 듯하다.

“피클 집으려다 물컵에 포크 담그고 칼 대신 숟가락을 잡았어요”

눈탱이감탱이의 음식 메뉴, 먹기 쉽게 하기 위해 파스타는 짧은 면으로 요리하고 돈가스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 나온다.

주문했던 크림스파게티와 소고기 볶음밥이 나왔다. 음식은 먹기 전에 사진 찍는 게 예의인데. 아차, 나 지금 눈이 안 보이지. 사진을 못 찍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촉각과 후각에 의지해 한 숟갈 뜨는 순간 덜컥 겁이 난다. 어차피 못 본다고 이상한 재료를 썼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눈탱이감탱이 홈페이지에 ‘음식 갖고 장난치지 않습니다’라고 크게 적혀있던 게 기억나 안심한다.

피클을 집으려다 물 컵에 포크를 담그고, 칼 대신 숟가락을 잡는다. 평소 10분 안에 먹어치웠을 음식인데 30분은 족히 걸렸다. 카페에서 배경음악이 흐르지만 옆에서 쩝쩝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거슬린다. 시각이 차단되면 청각이 살아난다는 게 사실인가보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데 갑자기 친구가 키득키득 웃는다. 왜 웃냐고 물으니 “나 지금 스피커랑 대화하는 것 같아”란다.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 들리니 그럴 수도.

식사가 끝나고 직원이 식기를 치운 뒤 시각장애인용 오목을 가져왔다. 말의 한 면은 평평하고 다른 면은 울퉁불퉁하다. 게임이 진행되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상대방이 반칙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기자가 몇 번 반칙을 했지만 친구가 알아채지 못했다. 정말 안 보이는 사람 속이는 일만큼 쉬운 게 없는 듯하다. 직원이 오목 세트를 치우고 젠가를 가져다준다. 평소 ‘균형감각의 신’이라고 불리는 친구가 블록 하나를 빼자마자 와르르 무너진다.

눈을 계속 감고 있는 게 익숙하지 않아 암흑 속에서 계속 뜨고 있었더니 눈이 피로하다. 어둠에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답답한 마음이 점점 커진다. 체험을 끝내고 밝은 빛 아래로 나오자 “와 빛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눈탱이감탱이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주)암흑의 성정규 대표는 “체험을 끝내고 나오면서 눈이 보임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면 체험을 성공한 것”이라고 말한다.

체험 마지막 단계에서 편지쓰기를 진행한다. 빛을 비춰야만 보이는 투명 펜으로 편지지에 글씨를 쓴다. 사진 오른쪽에 자세히 보면 기자가 ‘이로운넷’이라고 적었다.

체험 끝내고 나오니 “아, 빛이다” 감탄 절로

(주)암흑 성정규 대표

성 대표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초등학생 때 자고 일어난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시신경에 염증이 생겨 시력을 잃었다. 이후 제과공장, 출판사 등에서 박스를 나르며 궂은일을 하다가 안마 회사를 차려 2호점까지 열었지만 그만 두고 암흑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 프랑스 블라인드 레스토랑에 대한 방송을 접한 게 계기가 됐다. 눈탱이감탱이는 체험의 독특성과 의미를 인정받아 지상파 방송에도 여러번 소개됐다.

눈탱이감탱이는 영화 ‘어바웃 타임’ 주인공처럼 서로의 모습을 보지 않고 소개팅을 하는 ‘깜깜 소개팅’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또한 약 3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이 있어 데이트 장소뿐만 아니라 학교나 기업 등 기관의 워크샵 장소로도 활용된다. 최근에는 서대문구청 직원들이 장애인 인식 개선 체험을 위해 다녀갔다.

성 대표는 암흑 체험을 통해 비장애인들이 볼 수 있음에 대해 감사를 느끼고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고 한다. 장애 인식 개선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8 장애인고용촉진대회에서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저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와 비장애인이 달리기 시합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똑같이 달리면 당연히 제가 더 느리죠. 저는 비장애인들이 이런 체험을 하면서 장애가 어떻게 불편한지 몸으로 느껴보고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 박유진 이로운넷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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