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 장애인의 날 기획] <1>장애인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다

장애인도 경제활동 필수인데…250만 장애인 중 경제활동 인구 38.5%

대기업 외면 속 사회적기업 역할 맡아…1200여개 사회적기업 중 장애인 고용 14.4%

“행복해졌어요. 옛날에는 화나고 짜증나고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이곳에는) 나 또래의 친구들이 많아요. 같이 놀러 다닐 수 있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이전에는) 내 또래 없었어요. 어울릴 시간도 없었어요.”

지난해 설립 10주년을 맞은 인쇄출판 사회적기업 리드릭에서 일하는 한 발달장애인의 얘기다.

리드릭의 80명 직원 중 절반은 발달장애인들이다.

현재 리드릭에는 80명의 직원이 일한다. 이 중 절반인 40여명은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은 주로 복사용지 제작, 인쇄 공정 참여, DM 발송 등의 일에 참여한다. 이렇게 일하고 한 달 급여로 최저임금 수준이거나 평균 85만원 가량을 받는다. 국내 발달장애인의 월평균 급여가 45~57만원인데 비하면 월등히 높다.

리드릭에서는 종일 집중해서 일하는 게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일주일에 2시간은 음악·미술 테라피, 인권 교육, 취미·레저 프로그램 등 3명의 직업재활사들과 함께하는 힐링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작업환경이 이러하니 리드릭에는 장기 근속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많다. 발달장애인의 근속기간이 평균 20-47개월인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리드릭은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2014년, 2016년 연속으로 서울시 우수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광옥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은 “발달장애인 고용 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개인 욕구에 따른 자기 결정권이 강화되고 직업생활을 통해 사회통합의 기회가 확대된다는 점이다”며 “그런 점에서 사회적기업 리드릭은 지난 10년 간 일반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을 고용한 수가 356명에 이르며, 타 시설에 비해 높은 급여 수준, 욕구와 직무 능력을 고려한 직무 배치, 교육 및 치료 프로그램 등 발달장애인 맞춤형 지원 등은 장애인 사회적기업들의 사회적 역할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평가했다.

일을 통해 사회통합 돕고, 장애인 인식 개선에 나서

국내 15세 이상 장애 인구는 2,441,166명(2016년 기준)이다. 이 중 경제활동을 하는 장애인은 38.5%에 불과하다. 특히 중증 및 발달장애인의 경제 활동률은 더 낮다. 일반 고용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사회적기업은 일을 통한 사회통합의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15 장애인 고용 사회적기업 사례연구>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인증 사회적기업 1,251개소 중 장애인을 전체 또는 일부 고용하는 기업이 약 180개소로 14.4%에 달했다. 장애인 고용 사회적기업은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을 계기로 등장했다. 그 중 약 50%는 직업재활시설로 사업을 운영했다. 초기에는 장애인 고용 사회적기업의 경우 90% 이상이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자리 제공형’에 속했다.

발달장애인 고용 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개인 욕구에 따른 자기 결정권이 강화되고 직업생활을 통해 사회통합의 기회가 확대된다는 점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남용현 선임연구위원은 “초기 장애인 사회적기업은 신규 설립보다는 기존의 직업재활시설이나 표준 사업장 등 장애인 다수 고용 사업장에서 전환했거나, 기존의 직업재활시설을 동시에 운영하는 곳이 다수였다”고 밝혔다.

일반 고용 시장에 진입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이 대다수다 보니, 조립 및 포장, 인쇄출판, 사무용품 제조·판매 등 단순 업무에 집중돼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장애인 특성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살려 교육, 문화, 예술, 보건 등의 서비스 분야의 사회적기업도 꾸준히 늘고 있다.

장애인의 장점살릴 업종도 있다!

눈에 띄는 분야는 발달장애인들이 반복적인 단순 작업에 높은 집중력을 보이는 점을 적극 활용한 경우다. 바리스타나 커피 원두 핸드픽 작업, 떡 생산, 비누 제작 분야가 대표적이다.

커피지아는 현재 일반인 9명과 발달장애인 14명으로 총 23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실습생으로 받았던 자폐성 발달장애인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커피 원두 ‘핸드픽’(Hand-Pick) 작업에 투입하면서 발달장애인 고용율이 대폭 늘었다. 마을기업 성미산좋은날협동조합도 느리게 움직이는 발달장애인들의 특성과 10시간 이상씩 천천히 우려내는 더치커피가 잘 부합한다고 판단해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더치커피 제조 사업을 한다.

커피지아에서  커피 원두 핸드픽 작업에 투입된 발달장애인들

삼성농아원 법인 산하 장애인보호사업장인 삼성떡프린스는 컴퓨터 기술을 가르치는 훈련장에서 시작해 ‘떡’을 통해 청각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신선하고 정직한 떡으로 인정받아 2회 연속 서울시 사회적 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것은 물론, 최근에는 대한민국 청와대에 떡 선물세트를 납품하게 됐다. 동구밭은 고립해 생활하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꾸준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비누 제작에 나선 기업이다.

동구밭 발달장애인들이 만드는 비누

예술을 매개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소통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고 더불어 일자리도 창출하는 사회적기업들도 있다.

디자인마이러브는 장애인 예술가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장애인문화예술 판은 장애인들이 직접 연극배우로 나서는 장애인극단을 운영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깬다. 2008년 창단한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은 장애인예술단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초청 창작뮤지컬을 선보였으며, 그 공연으로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오바마 단체 봉사상을 수상하는 등 정상급의 공연 수준을 자랑한다.

㈜오티스타는 자폐인 디자이너들을 양성하고 그들의 그림을 활용해 디자인 상품을 개발·판매함으로써 자폐인들의 사회 통합과 독립생활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자폐성 장애인 디자이너의 그림으로 만든 (주)오티스타 제품

장애인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색다른 콘텐츠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을 돕는 소셜벤처들도 최근 눈에 띈다.

‘벙어리장갑’을 ‘엄지장갑’이라 고쳐 부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커뮤니케이션 장애 인식개선 프로젝트를 벌이는 설리번, 교통약자용 지도 및 시민의식 고취를 위한 교통약자 눈높이 체험 등 장애와 비장애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무의협동조합, 장애인 누구나 편안하게 제주를 여행할 수 있도록 배리어 프리 투어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커뮤니티 맵핑 활동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미디어 스타트업 위에이블 등이 그들이다.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를 제작한 무의협동조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전용 단말기를 통해 소리로 전달되는 정보를 실시간 자막으로 통역해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돕는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 수동휠체어를 전동처럼 조종할 수 있는 ‘토도 드라이브’를 개발한 토도웍스 등은 기술을 기반으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기업들이다.

서울지역 장애인 고용 및 서비스 제공 기업

 장애인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과제

장애인 문제 해결에 나서는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상당수는 일반 시장에서 소외 받는 장애인들의 고용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일을 통한 사회통합에 기여한다.

박경수 한양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장애인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통합형 사회적기업은 직업 능력이 없는 장애인이나 사회적 제약 등으로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노동통합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고 말했다.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이 개발한 청각장애인 문자통역 앱 `쉐어타이핑`

장애인들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고, 사회로부터의 고립 문제를 해결하는 등 사회활동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 또한 사회적경제기업들의 중요한 사회적 역할로 본다.

박원진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은 사회와 단절된 채 익숙한 네트워크 안에서만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걸 꺼리기에, 이들이 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교육과 문화 활동을 지원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 사회적경제기업에 고용된 많은 장애인들이 일을 통해 사회성이 부쩍 커졌다는 평가도 한다. 동구밭 노순호 대표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장애인들이 텃밭을 가꾸며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일이 끝나면 옆 친구가 끝내지 못한 일을 도와줄 정도로 변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성과에도 여전히 과제도 많다. 장애인 고용 기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물론, 정부 정책 또한 장애인 사회적경제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지원 체계가 미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정렬 서울사회적기업협의회 대표는 “해외에서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의 경우 그 특수성과 사회문제 해결의 성과 등을 고려해 다양한 지원이 조건 없이 이루어진다”며 “장애 유형에 따라 생산력 등 여러 측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라현윤 이로운넷 에디터

사진제공. 리드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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