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치킨’, 은퇴하면 결국 치킨집을 차린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조기 퇴직이 성행하고 퇴직 후 재취업이 쉽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중장년층은 치킨집, 편의점, 카페 등 자영업에 너도나도 뛰어든다. 2017년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중은 25.4%로, 4명 중 1명은 자영업자가 된다.

그러나 음식, 숙박, 도소매업 등 4대 자영업 폐업률이 80%까지 치솟으면서 중장년층을 위한 일자리 솔루션의 필요성이 커졌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일터를 떠나는 인구도 계속 늘어나는데,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대책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회적기업 ‘상상우리’는 중장년이 가진 경험과 지혜가 사회혁신의 훌륭한 자원이 된다는 소셜미션을 가지고 은퇴자들의 창업과 취업을 돕고 있다.

“능력 있는 중장년층 방치하는 건 사회적으로 큰 낭비”

IT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박생규(66) 씨는 2015년 상상우리에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해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사진=상상우리

상상우리는 외국계 시장조사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던 신철호 대표가 지난 2013년 설립했다.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경영지도사 자격증 강의를 했는데, 청중 가운데 중장년이 유독 많았다. 유명 대기업에서 부장, 임원 등을 지낸 인재들이 50대 초반에 은퇴해 방황하는 것을 보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쉬게 하는 건 사회적으로 큰 낭비’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직접 시장 조사를 해보니 50~60대 은퇴자는 늘고, 전체 인구는 줄어 다수의 중장년층이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을 기점으로 은퇴 인구가 80만을 넘어섰고, 향후 몇 년간 80~90만명씩 일터를 떠나게 된다. 신 대표는 “기존의 일자리 정책은 주로 청년층에 집중돼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일자리 솔루션이 절실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상상우리는 중장년층의 교육 및 상담을 통해 취업과 창업을 돕는다. 중장년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로 육성하고, 중장년 역량 개발에 특화한 콘텐츠를 발굴하며, 사회적기업 등 혁신기업과의 네트워크 확대 등에 주력한다. 지난 한 해에만 중장년 800여 명이 상상우리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축적된 경험?낮은 이직률?합리적 인건비…“다양한 분야 진출로 신세계 경험”

신 대표는 "중장년층을 교육할 때 그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려는 게 아닌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사진=권선영 에디터

중장년만이 가진 장점에 대해 신 대표는 “경험에서 나오는 인사이트”라고 답했다. 상상우리에서 재교육을 받는 중장년들은 앞서 기업에서 오랜 시간 일하다 은퇴한 평균 50대 중반이 대다수다. 이들은 사회적경제 기업이나 스타트업 등을 총괄 관리하는 역할로 재취업을 하거나 직접 소셜미션을 내걸고 창업을 하기도 했다.

신 대표는 “교육을 시작할 때 ‘월급 400만원 받고 풀타임 근무에 2년간 일할지, 200만원 받고 주 4일 근무에 10년간 일할지 물으면 99%가 후자를 택하신다”며 “향후 10년간 일할 때 필요한 점을 준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멘토링을 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은퇴 후 재취업 분야를 보면 건물 경비, 보일러 관리 등 특정 영역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상상우리에서 교육받는 분들은 몇 십년간 자동차회사에서 영업을 했거나 대기업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등 한 분야에 오랫동안 일을 했던 분들인데, 새로운 것을 배워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며 ‘신세계’를 경험하시는 거죠. 20대 신입사원 때로 돌아간 것 같다고 이야기하세요.”

고용노동부, 서울시, 현대자동차그룹, 상상우리는 지난해부터 향후 5년간 50+세대의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굿잡5060’프로젝트를 진행한다./사진=서울시

최근 정부에서도 은퇴자와 중장년층을 위한 일자리 정책을 내놓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현대자동차, 50플러스재단, 상상우리와 협력모델을 구축해 시작한 프로젝트 ‘굿잡 5060’이 대표적이다. ‘굿잡 5060’은 2018년부터 향후 5년간 매년 200명을 선발해 총 1000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행해 신중년 일자리 500개를 만든다는 목표로 시행 중이다. 

지난해 ‘굿잡 5060’ 교육생 89명이 수료해 35%가 사회적경제 기업, 스타트업 등 취업에 성공했고, 오는 3월에는 취업률 50% 달성을 앞두는 등 성과를 냈다. 신 대표는 “5060 채용의 장점을 더 많은 기업에 알리고 싶다”며 “중장년은 축적된 경험을 활용할 수 있고, 이직률도 상대적으로 낮으며, 인건비 측면에서도 유리해 기업의 요구 사항에 부합하는 점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경력자?채용기업 DB 축적한 ‘워크위즈’ 오픈…“우물 바깥에 더 많은 기회”

신 대표는 "중장년과 청년이 한 기업에서 조화롭게 일하기 위해서는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려 마음의 벽을 낮추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사진=권선영 에디터

올해 상상우리의 목표는 무엇일까. 먼저 오는 2월 중장년 온라인 취업 플랫폼 ‘워크위즈’를 오픈해 운영할 예정이다. 중장년 경력자와 채용기업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매칭확률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오프라인은 50플러스재단, 온라인은 위크위즈가 중장년들의 구심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지난해 공공구매 전문가, 행정 전문가에 이어 올해는 재무, 마케팅, 브랜드 전문가 양성 과정 등도 준비 중이다.

신 대표는 “은퇴 후 한두 달은 즐겁게 쉬다가 그 이후로는 재취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해 우울해 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이들에게 상상우리를 알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중장년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을 바꾼다는 건 감히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물을 떠나지 않아도 괜찮지만, 우물 바깥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게 저희 역할이죠. 취업률 같은 단기성과에 목매지 않고, 중장년들이 스스로에 대한 시야를 넓혀 가능성을 찾아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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