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내셔널지오그래픽 특별전 'Photo Ark' 사진전에서

취재를 하다보면 무심코 나눈 대화 속에서 보석을 건질 때가 있다. 며칠 전 육아휴직 중인 한 직장여성과의 전화인터뷰가 그랬다. 5살과 11개월의 자녀를 둔 두 아이의 엄마 김지훈 씨는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곧 직장 복귀를 앞두고 있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일하는 사회적기업 ‘웹와치주식회사 (이하 웹와치)' 다. 웹와치는 ‘ 웹 접근성 국가 품질 인증 기관’으로 장애인이나 노약자 모두에게 편리한 정보화 세상을 만들자는 일념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 회사 직원의 절반가량은 장애인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웹와치는 널널한 회사다. 전체 임ㆍ직원을 통틀어 31명 중 10% 인 3명이 현재 육아 휴직 중이다. 

이 중에 한 명은 아내가 두 아이를 보살피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자 2년 차 육아휴직 중인 부장급 남자 직원이다. 오는 3월이면 팀장급 직원 1명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육아휴직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삶의 생애 주기에 따라 부딪히는 불가피한 상황이고 법적으로 보장된 일들이지만 아직도 현실에선 결코 녹녹치 않은 것이 육아휴직이다. 특히 직원 복지가 잘 된 대기업이 아닌 영세한 기업이라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괜찮은가" 라는 질문에 이범재 웹와치대표는 "사실 쉽지 않은 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 때문에 ‘ 해라,하지 마라’ 하지 않는다. 모성보호는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 회사는 그걸 버티고 견뎌내야 한다"고 답했다.

과연 그럴까. 사원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 두 번째 육아휴직 중인 김지훈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 우리 회사는 육아휴직을 쓸 때 눈치를 보거나 하진 않아요. 출산 예정일 3개월 전부터는 단축근무를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급여가 깎이진 않아요. 저도 한 달 전부터 1시간 늦게 출근해 1시간 먼저 퇴근했어요."

큰 도움이 됐느냐 물었다. "그럼요. 첫 애를 돌봐줄 수도 있고 만삭이 돼 몸이 무거운데 쉴 수도 있어 좋았어요."

복직을 앞두고 압박감을 느끼지는 않느냐고 묻자 " 직장인이라는 게 집에서 쉬고 있긴 하지만 그리 맘이 편한 것은 아니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드디어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려나 하는 순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 IT 직장에만 15년 넘게 근무했어요. 법적으론 보장돼 있지만 임신하면 그냥 그만둬야 하는 문화가 있었죠. 무언의 압력이 와요.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휴직 후 돌아와 다시 일하는 경우도 거의 못 봤어요. 휴직에 들어갈 참이면 ‘ 너 그만둘 각오하고 출산휴가 들어가’ 이런 식이었지요. 물론 요즘 많이 변했을 거예요. 하지만 동생들이나 제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면서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문화를 설명해줬다.

"저와 함께 웹와치로 이직한 동료는 이곳에 올 당시 임신한 줄 몰랐어요. 입사하자마자라서 미안한 마음이 일었지만 출산 후 육아휴직을 했어요. 회사 입장에선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거예요. 과거 직장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그 동료는 육아휴가 100일만 쓰고 바로 출근해야 했었거든요. 그야말로 사람 귀한 줄 몰랐던 거죠."

그는 " 제도뿐 아니라 실제 행동에서도 임원들은 ‘한 숟가락이라도 더 직원들에게 떠먹여 줄 것이 없나’  고민하는  분위기가 몸에 배어 있다" 고 전했다.

"장애인들과 더불어 사는 회사라 그런가 마음이 정말 따뜻한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요. 과거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 다닐 때에 비하면 급여는 결코 많지 않아요. 하지만 '회사가 우리 편'이란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취재 현장에서 만났던 한 남자 직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전 외벌이라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가 벌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회사에선 짧게라도 쓰라고 자주 말씀하세요. 말이라도 고마운 일이죠."

최근에 만난 한 스타트업 여성 공동대표 역시 ‘회사가 내 편이다’라는 인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강조했다.

"대표를 맡기 전 팀장으로서 리더십이 필요했을 때 제가 계속 복기했던 말은 '조직에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언제든지 달려가 이야기할 수 있고 안길 수 있는 엄마와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는 거였죠. 세심하게 돌아보고 대화하는 것. 회사라는 조직도 저는 일종의 가족이라고 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신년사에서 모성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황은 "어머니의 시선을 잃어버린 채 미래를 바라보는 세상은 근시안적"이라며 "이런 세상은 이익을 낼 수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을 위한 이익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영웅적 행위가 자기희생이라는 형태로, 강함은 연민, 지혜는 유순함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어머니들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웹와치는 2018년부터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해진 출ㆍ퇴근 시간 앞뒤로 1시간씩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출ㆍ퇴근하는 제도다. 김 과장은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너무 기대돼요. 제가 육아휴직에 들어간 이후에 도입된 제도라 전 이용해보지 못했거든요. 누가 내게 묻는다면 정말 자랑하고 싶은 회사입니다.”

'어머니의 시선'을 간직한 회사라 그럴까.  웹와치는 매년 10% 넘게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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