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더독' 스틸 컷. 펫샵에서 팔려 아파트에 살던 보더콜리 '뭉치'는 주인에게 버려진다./사진=오돌또기

멀리 산책을 나온 줄 알던 개는 잔뜩 신이 나 있다. 평소 놀던 대로 공을 물어왔지만, 그 자리에 주인은 떠나고 없다. 개는 버려진 것이다. 영화 ‘언더독’은 어제까지 누군가의 ‘반려견’이었던 개가 하루아침에 거리를 떠도는 ‘유기견’이 돼버린 시점에서 시작된다. 버려진 개 ‘뭉치’의 애처로운 눈빛 때문에 첫 장면부터 눈물이 핑 돌아 시야가 흐려졌다.

‘언더독’은 지난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을 선보인 오성윤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다. 우연히 SBS 교양 프로그램 ‘TV 동물농장’을 시청하던 오 감독은 철망 안에 갇힌 한쪽 눈 없는 시츄를 비롯해 버려진 수많은 개들을 보고 기획을 결심했다. “보호소에서 열흘 만에 안락사되는 생명들을 탈출시키고 싶었다”고. 시나리오 작업에만 2년, 선녹음, 믹싱, 콘티, 비디오 작업 등 제작에 4년 이상을 쏟아 ‘한국형 애니메이션’을 다시 한번 내놓았다.

‘TV 동물농장’ 애청자이자 동물권단체를 후원하고 있는 자칭 ‘애견인’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저렸다. 아무리 만화의 색채를 띤 가상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현실과 너무 닮아있는 탓이었다. 평생 새끼만 낳다 죽는 강아지공장의 모견들, 펫숍에서 거래되는 어린 개들,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한때의 반려견들, 더러운 뜬장에서 키워지는 이른바 육견들. 이밖에 투견, 들개, 로드킬과 밀렵 당한 동물 등 어느 하나 비참하지 않은 생명들이 없었다.

영화 '언더독'에는 노견, 투견, 번식견, 들개 등 다양한 사연을 품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사진=오돌또기

‘언더독’은 소재의 무거움에 눌리지 않기 위해 스토리 전개만큼은 유쾌하게 풀어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곳곳에 유머 포인트를 심어놓아 강약 조절에 힘썼다. 관객들은 주인공 ‘뭉치’가 버려지는 상황과 견사에서 탈출한 ‘밤이’가 추격당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훔치다가도, 떠돌이 개들의 리더 ‘짱아’의 능글맞은 모습과 당찬 강아지 ‘토리’의 엉뚱한 행동에 웃음을 터트렸다.

작품의 핵심은 하루아침에 운명이 바뀐 ‘뭉치’가 거리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정 그 자체다. 공동 연출을 맡은 이춘백 감독은 “어두운 소재라 관람이 두렵다는 분들도 계신데, ‘언더독’은 유쾌하고 행복한 영화”라며 “관객들이 개들을 통해 스스로 삶을 성취하는 과정의 행복과 희망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지난 15일 열린 ‘언더독’ 쇼케이스에서 최근 벌어진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의 유기견 안락사 논란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유기견이 버려진 존재이지만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고, 그것은 인간에게 달려있음을 말하고 싶었다”며 “화려한 조명의 펫샵에서 팔리는 강아지들이 어떤 경로로 왔는지 떠올려보고, 대신 유기견 입양을 고려한다면 이들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지난 15일 서울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점에서 열린 '언더독' 쇼케이스에 참여한 오성윤, 이춘백 감독, 배우 도경수, 박소담, 이준혁(왼쪽부터)의 모습.

사실 ‘언더독(under dog)’은 개싸움에서 밑에 깔린 개를 뜻하는 표현으로,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일컫는다. 이번 작품에서는 ‘사회적 약자, 소외된 존재’라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사실 상업?대형?실사 작품 위주의 한국 영화판에서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고, 흥행 보장도 확실하지 않은 애니메이션 장르를 만드는 건 스스로 ‘언더독이 되겠다’ 선언하는 것일지 모른다.  

실제 오성윤 감독은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을 입증하고 2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다음 장편 영화를 내놓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오랜 준비과정을 거쳐 내놓은 ‘언더독’에서는 ‘선녹음-후작화’ 방식, 2D 배경에 3D 캐릭터, 한국화 기법의 미장센 등을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재확인시켰다.

공교롭게 ‘언더독’이 개봉하는 시점이 할리우드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사 디즈니의 신작 ‘주먹왕 랄프2’와 겹쳐 대결하는 구도가 됐다. 지난 3일 개봉한 ‘주먹왕 랄프2’는 이미 140만 관객을 넘어서며 흥행 중이다. ‘언더독’이 거대 자본이 들어간 디즈니는 물론 여타 상업 영화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이춘백 감독의 말처럼 “언제나 반란을 꿈꾸는 ‘언더독’이 ‘탑독’이 되기”를 함께 응원하고 싶다. 배우 도경수, 박소담, 박철민, 이준혁 등 목소리 출연.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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