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영 나영 두리 둥실 돌고요~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상사랑이로구나~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임 그리워 운다~.”

서울 광진구 한 가정집에서 가야금 소리와 민요 '너영나영' 가락이 흘러나온다. 80대 노부부가 마주앉아 짧고 줄이 7개인 특이한 모습의 개량 가야금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아니, 그 줄이 아니라 이 줄하고 이 줄이여, 이 양반아” 짓궂은 아내의 핀잔에 남편은 웃으며 줄을 고쳐 잡는다. 

2년 전에 허리를 다친 뒤로 밖에 나가서 활동하기 어렵다는 아내는 “선생님이 유치원생 가르치듯 자세히 알려주니 하기 쉽네”하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남편 또한 ”몸이 불편해 밖에 못 다니고 집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같이 노래도 하니 좋지“하며 웃는다. 

지난 14일 노부부의 집에서 펼쳐진 작은 국악놀이는 ‘사단법인 한국아동국악교육협회(이하  협회)’가 진행한 재가노인 정서돌봄 프로그램이다. 노인들은 집으로 방문한 정서돌봄 교육 강사와 함께 민요와 국악 가사를 개사하고 북, 가야금 등을 이용해 개사한 노래를 직접 부르며 정서적 안정감을 느낀다. 
 

재가 정서돌봄 프로그램 & 노인 맞춤 교구 개발··· 3개월간 4가구 시범서비스 시행

한국아동국악교육협회의 전송배 대표(왼쪽)와 김진선 정서돌봄사업단장. 협회는 아동, 재외동포, 노인을 대상으로 국악공연을 열고 '더늠국악 평생교육원'을 운영하는 등 국악교육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한다.

한국아동국악교육협회는 2009년부터 사회공헌사업을 통해 국악을 활용한 정서돌봄을 이어오고 있다. 노인복지관, 지역아동센터, 병원, 장애인복지관 등을 방문해 이동이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공연을 진행하는 ‘찾아가는 사랑의 음악회’가 대표적인 활동이다. 2016년부터는 광진구 사회적경제특구 사업을 통해 결성된 <돌봄클러스터>에 참여해 지역 내 노인가정으로 1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 국악을 활용한 정서돌봄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다.

“시설로 찾아가는 사랑의 음악회가 1회성 공연으로 그치는 게 안타까웠어요. 광진구 돌봄클러스터는 재가돌봄을 시행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체계화된 정서돌봄 프로그램도 부족할뿐더러, 노인이 활용하기 좋은 교구와 교재도 없었어요. 프로그램에 필요한 시각물을 A4용지에 인쇄해서 파일에 끼워두는 수준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어르신들이 관리하기도 어렵고 소장 가치도 떨어졌죠.” -전송배 한국아동국악교육협회 대표

협회는 이러한 고민을 하던 중,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사회적경제 돌봄 협업 콘텐츠 개발 지원사업-신규 돌봄 콘텐츠 개발’ 사업에 선정되면서 정서돌봄 프로그램을 정비해갔다. 교재인 자료집과 노래 가사판 등 교구를 만들고, 노인이 연주하기 편하도록 가야금을 개량한 것이다. 

사업 과정에서 협회는 전문가와 국악사 장인을 만나는 것은 물론, 가야금 공장을 직접 찾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탄생한 ‘누리가야금’은 기존 11현에서 7현으로 현이 줄어들고, 길이도 짧아진 모습이다. 

협회가 개량한 '누리가야금'.

“손 소근육이 불편하고 시력이 낮은 노인들은 현이 많은 가야금을 다루기 어렵고, 크고 무거운 가야금은 강사들이 운반하기 어려워서 현을 줄이고 크기를 작게 했어요. 이 때 줄이 짧아지면 소리가 높아지기 마련인데, 몸통의 나무 두께를 조절해 기존 가야금과 소리를 비슷하게 유지하는 것에 집중했지요.”  -김진현 협회 정서돌봄사업단 단장-  

프로그램의 내용 면에서도 완성도를 높였다. 김 단장은 “정서돌봄 서비스를 통해 만나는 어르신 중에 치매 어르신이 많아 회상과 인지 활동이 중요하다”며 “프로그램 앞부분에 어르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회상활동을 주로 진행하고, 뒷부분에는 음악을 활용해 인지를 강화할 수 있는 ‘뇌건강 음악놀이 인지 프로그램’을 보강했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돌봄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강사도 양성했다. 이는 기존에 협회가 정서돌봄사업 차원에서 해오던 ‘활동가 양성’의 심화과정으로 16차에 걸쳐 진행됐다. 김 단장은 “새로 개발한 프로그램과 교구, 악기 활용 방법을 숙지하며 국악놀이 정서돌봄을 진행할 수 있는 강사를 키우기 위한 교육 과정”이라며 “워크북 활용 방안에 대한 지도 책자도 곧 완성을 앞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협회가 제작한 정서돌봄 활동자료집. 김 단장은 "어르신들의 회상 활동으로 채워지는 자료집이 작은 자서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날 광진구에서 가야금 연주 프로그램을 진행한 서지희 강사는 “이번 프로그램 보강으로 활동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좋다”며 “노인 분들의 신체·정신적 상황마다 적합한 활동이 다른데, 교구와 교재가 마련돼 있으면 그때 그때 적절하게 활동을 바꿀 수 있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이렇게 완성된 프로그램으로 11월 말부터 12월 셋째 주까지 광진구 내 4개 가구에 가구당 6번씩 시범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 막바지에 접어든 현재 참여한 어르신들은 프로그램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한다는 것이 관계기관의 설명이다. 
 

“지역내 5개 돌봄전문기업·조직 뭉쳤다··· '정서돌봄' 포함한 통합돌봄 서비스 구축할 것”

협회가 프로그램을 이처럼 구체화 하는 데는 지역구 내 돌봄 전문기업인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의 도움이 컸다. 도우누리는 2008년 자활공동체로 출발해 지역 내 재가장기요양, 돌봄종합서비스, 시설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지정 1호 돌봄 전문 사회적기업이다. 

“도우누리는 많은 재가돌봄서비스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요. 도우누리의 서비스 이용자 풀을 활용해 시범서비스를 실시할 대표 유형 4가구를 선정할 수 있었어요. 요양사 분들은 시범서비스에 직접 참관하고 이용자들과 사업단 사이의 소통의 매개 역할을 해주셨죠. 현장 반응을 수렴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 전 대표.

협회는 정서돌봄 확산을 위해 국악놀이 프로그램을 꾸준히 발전시켜갈 계획이다.

그간의 정서돌봄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협회는 지난 10월, 인스케어, 복지유니온, 광진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도우누리와 함께 광진구의 통합돌봄서비스를 담당할 협동조합 ‘돌봄플러스’를 만들었다. 협회는 통합돌봄 서비스에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보강한 콘텐츠를 적용할 계획이다.

전 대표는 정서돌봄이 자리잡기 위해 필요한 지원으로 ‘정서돌봄에 대한 홍보’와 ‘지역사회 통합돌봄 바우처 도입’을 꼽았다. 그는 “의식주 관련 불편을 해소하는 돌봄서비스 수요는 크지만,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 정서적 돌봄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부족하다”며 “홍보로 정서돌봄의 중요성을 알리고, 정서돌봄을 포함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바우처를 도입해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체적 불편함 뿐 아니라 노화 과정에서 겪는 불안함 등 정서적인 이유로도 외부 생활을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요양원보다 노인들이 지내오던 집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재가서비스가 중요한 이유죠. 마음의 건강이 몸 건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마음부터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돌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김 단장.

한국아동교악교육협회가 재가 정서돌봄 서비스를 계속해나가는 이유다. 

 

※‘사회적경제 돌봄 협업 콘텐츠 개발 지원사업’은?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신규 돌봄서비스 개발과 개선/발전 전략 모색을 돕기 위해 2018년 10월부터 12월 말까지 사업비를 지원하는 시범사업이다.

주요 사업으로 ①신규 돌봄 콘텐츠 개발 ②실증지역 기반 돌봄 사업모델 개발 ③마을기업 협업모델 개발의 3가지 유형에 총 5개의 시범사업이 진행됐다.

이 중 ‘신규 돌봄 콘텐츠 개발 유형’의 목적은 사회적경제기업들이 기술협업 및 정보교류를 통해 새로운 내용이나 형식의 제품•서비스를 개발하고 활용 가능성을 살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진. 백상훈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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