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경영학을 전공한 권민정 씨는 평범한 20대 직장인이었다. 여름휴가지에서 당한 사고로 병원에 두 달간 입원했다. 입원 기간, 여러차례 생사를 오가는 이들을 지켜보며 ‘지금 하고 싶은 걸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품 같은 회사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그는 퇴원 후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20대 후반, 이탈리아 밀라노로 떠난 유학생활.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히 동경해온 디자인 마케팅 공부를 시작했다. ‘새로운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떠난 밀라노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 준 시간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업사이클 제품들이 명품제품과 함께 진열되어 있는 걸 봤어요. 학교 과제도 컴퓨터 작업으로 깔끔하게 한 것보다 손으로 직접 만든 것에 점수를 더 주었어요. 대단한 패션쇼 등 행사장에 가지 않아도 저 같은 가난한 유학생도 일상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밀라노였죠.” (권민정 플랜지 플랫폼 대표)

오래된 옷을 더 아끼고, 장인을 더 가치 있게 바라보며, 환경을 생각하고 오래된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패스트패션만 좇던 그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3년 간의 유학생활은 '느림의 미학'과 ‘지속가능한 삶’을 몸소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권민정 플랜지 플랫폼 대표./사진제공=플랜지 플랫폼

‘환경’을 주제로 일상에서 만나는 작가와 시민 

밀라노 유학에서 발견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2016년 ‘플랜지 플랫폼(planG : Eco Social Creative Platform, 이하 플랜지)’을 만들었다. 플랜지는 일상의 공간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전시 및 문화예술, 친환경 브랜드를 개발·확산하는 소셜벤처다. 

플랜지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일상성’이다. 

“업사이클이 뭔지도 모르던 제가 밀라노에서 우연히 새로운 가치에 눈을 떴듯이, 플랜지를 통해 사람들이 일상에서부터 환경 이슈를 경험하고, 버려지는 것과 오래된 가치,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해요. 환경이 중요하다는걸 이론으로는 알지만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하지 않으면 일상에서 체감하기도 행동이 바뀌기도 어려우니까요.” 

플랜지는 가까운 일상에서 전시 등을 한다. 사진은 지난해 '다같이숲'전을 진행한 서대문구사회적경제마을센터 내 카페./사진제공=플랜지 플랫폼

플랜지는 시민들이 전시장 등 특별한 곳에 가지 않아도 가까운 일상공간에서 전시, 마켓, 워크샵 등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획한다. 일명 ‘게릴라전’이다. 지난해 겨울에는 숲을 주제로 한 게릴라미술관 '다같이숲' 전을 서대문구사회적경제마을센터 카페에서 열었다. 숲과 자연, 멸종위기 동물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버려지는 자원으로 작품을 만드는 10명의 작가와 함께했다. 차 한 잔 마시러 왔던 사람들이 깜짝선물처럼 전시를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한 전시회다.

권 대표는 "전시 기간 시민들이 작가의 그림이나 조형물을 보며 잠시나마 숲을 만나고 버려지는 종이를 이용해 만들기 워크샵을 하며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했다"고 말했다. 

게릴라전을 무사히 마쳤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전시를 보지 못한 사람들도 일상에서 숲을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서다. 고민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전시 포스터 일러스트를 프린트해 일회용 마스크를 대신한 패션 마스크를 제작했다. 버려지는 종이로 직접 만들어 쓰는 DIY '다같이숲 바인딩키트'도 그런 고민에서 나온 제품이다.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숲과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작은 고민에서 시작된 실천은 이제 플랜지의 주요 비즈니스모델로 자리 잡았다. 

'다같이전' 후 남은 전시 포스터 일러스트를 프린트해 만든 패션 마스크. /사진제공=플랜지 플랫폼 
버려지는 종이로 만든 팝업숲 카드./사진제공=플랜지 플랫폼 

플랜지는 DIY 제품 제작을 즐겨한다. 다 쓴 우유팩으로 만드는 워크샵 키트, 바다유리로 만드는 액서사리 키트 등 수고롭지만 직접 만들며 환경, 장인정신 등에 대해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초보 사업가에서 '소셜크레이티브 디렉터'로 발전을 꿈꾸며  

플랜지는 2016년 소셜벤처대회를 거쳐 2017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프로젝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지속가능하게 하고 싶다는 고민에서다. 

“아티스트 성향이 더 강하다 보니 사업을 직접 한다는 게 너무 어려워요.”

아직은 초보 사업가지만 ‘소셜크레이티브 디렉터'로 성장하고 싶다는 권 대표는 소외되는 예술가들을 도우면서 시민들과 접점을 만들어가는 사회문제 해결 문화기획자가 되고 싶다고 얘기한다. 

수고롭지만 직접 만들며 환경, 장인정신 등에 대해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DIY 제품 제작을 선호한다./사진제공=플랜지 플랫폼  

“플랜지도 저도 엄청 느려요. 쉬운 방법이 있지만 어떤 가치를 위해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들, 느리지만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들, 효율화는 떨어지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을 알리는 것...주변에서 보면 답답할 수 있지만,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에서 이런 곳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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