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더덕과 바지락으로 풍미를 더한 생태탕 한 그릇

 

날이 몹시 춥다.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시원한 생태탕이 생각나 엊그제 동네 재래시장을 찾았다. 난 그곳에서 장사에 대한 ‘신의 한 수’를 배웠다.

내가 사는 동네의 재래시장 입구에는 두 개의 생선가게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한 곳은 규모도 크고 생선 종류도 많고 값까지 저렴하다. 종업원 수도 많다. 그래서인지 늘 가게 앞에는 생선을 사든 말든 사람들로 북적인다.

“ 갈치 3마리에 만 원!”  장사꾼의 호객행위는 오늘도 싼 가격에 맞춰져 있다.

맞은편 생선가게는 규모가 절반 밖에 안된다. 소규모라서 그런지 값도 싼 편이 아니다. 아들과 엄마 둘이서 가게를 근근이 꾸려간다. 서투르기 짝이 없는 앳된 얼굴을 한 아들은 손님들이 생선에 대해 물을 때마다 제대로 답을 못해 엄마로부터 연신 꾸지람을 듣는다. 가게 앞을 서성이는 손님도 맞은편 가게에 비해 훨씬 적다. 난 건너편 가게에서 생선을 사들고 나올 때마다 궁금했다. 저 작은 가게는 어떻게 버텨 가는 걸까.

그날 생태만큼은 그 작은 가게가 2000~3000원은 비쌌지만 물이 훨씬 좋아 보였다.

“ 탕 끓이시려고? 요즘 생태가 맛있어요. 작은  건 6000원, 큰 건 1만 원!"

“ 큰 걸로 주세요.”

주인은 그중 알이 들었음직한  생태를 골라 도마로 가져가더니 능숙한 솜씨로 내장을 발라내고 토막을 쳐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건넸다. 생선을 손질하면서도 귀는 연신 아들과 손님이 나누는 대화를 향해 열려있었다.

“ 아휴 못살아. 몇 번을 가르쳐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네..”

어수룩한 행동을 할 때마다 마뜩찮게 아들을 대하던 나의 태도가 생각나 잠시 미소 짓다 비닐봉지를 건네받고 나가려는데 주인이 말없이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른다. 그리곤 앞서 걸어가더니 작은 비닐봉지를 꺼내 미더덕, 홍합, 바지락을 한 웅큼 담아 내게 건넸다.

“ 날도 추운데 이것 넣고 탕 맛있게 끓여 드세요.”

아, 비결은 이것이었구나. 작지만 잘 버텨가는 이 생선가게의 생존비법 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난 그 가게를 나오면서 앞으론 조금 비싸도 이곳에서 생선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탕에 넣는 해물이 값으로 치자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해물 한 국자에 내 마음은 어느새 단골손님이 될 마음의 채비를 끝낸 것이다.

숱하게 드나들었어도 기계적으로 생선을 손질해 건네주는 건너편 가게에 비해 그 생선가게 아줌마는 고객이 뭔가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을 줬다.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우리에겐 ‘ 장사의 신’ 이란 책의 저자로 유명한 ‘ 우노 다카시’ 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 우리처럼 작은 이자카야는 재료를 대량으로 사들여 가격을 낮추어 파는 그런 장사는 할 수가 없어. 가격으로 승부하려 했다면 애초에 이길 생각을 말아야지. 그러니 우리 가게가 오래도록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역시 ‘사람의 체온’ 밖에 없다고 생각해. 손님과 따듯함이 느껴지는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손님에게 득이 되는 서비스를 하는 것. 이편이 훨씬 더 손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효과가 있어.”

우리는 어쩌면 제품이나 서비스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파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그 물건에 깃든 이야기에 공감해 지갑을 여는 것은 아닐까. 윤리적 소비를 하고 크라우드 펀딩이 성공을 거두는 비결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대가로 손꼽히는 세스 고딘(Seth Godin)은 이렇게 말했다.

“ 사람들은 단순히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와 이야기 그리고 상품이 나에게 주는 특별한 마법 같은 느낌을 사는 것이다. (People do not buy goods and services. They buy relations, stories and magic.)”

오늘 저녁 메뉴는 생태탕이다. 생선가게 아줌마가 건네준 따뜻한 체온이 담긴 해물 한 국자가 그 맛을 더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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