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비영리-영리라는 전통적인 구분 방식이 희미해지고 있다. 풀고자 하는 사회 문제는 더 명확히 하되, 이를 해결해가는 방식에서는 기존에 영리가 가진 효율적인 프로세스(새로운 기술, 창의적인 생각, 빠른 의사결정 등)를 도입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비영리스타트업, 사이드프로젝트, 벤처기부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정의되고 있지만 아직은 태동기다. 이러한 움직임을 주시하고, 지원에 나선 중간지원기관들도 최근 2~3년 사이 눈에 띈다. 경계를 넘나드는 공익활동을 선보이는 하이브리드형 개인과 조직,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중간지원기관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봤다. 

 


# 윤지성 씨는 물리와 산업공학을 전공하며 연구실에서 사회데이터를 다루는 대학원생이다. 어느 날 ‘블록체인은 분명 암호화폐가 전부가 아니고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인데, 한국에서는 왜 투기 중심으로만 갈까’라는 생각에 이르면서, 고민 한 것이 바로 ‘현물기부’다. 미국의 경우 60% 이상이 현물기부에 참여하지만 국내는 약 14%에 불과하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니, 투명하지 못한 기부 시스템이 문제였다. 블록체인 기술을 현물기부에 적용한 ‘프리즈밍(Prisming)’ 프로젝트는 이러한 고민에서 탄생했다. 프리즈밍은 올해 서울시NPO지원센터의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에 선정돼 임의로 정보를 조작하거나 해킹하기 어려운 데이터 저장 기술인 블록체인을 활용해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현물기부 관리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프리즈밍은 현재 프로토타입 구축을 마치고 내년 2월 정식 오픈을 목표로 함께할 단체를 찾는 중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현물기부에 적용한 ‘프리즈밍'도 서울시NPO지원센터의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에 선정됐다./사진제공=서울시NPO지원센터 

# 서울혁신파크가 개인의 관심사나 문제의식이 어떻게 나의 일, 우리의 일로 이어지는지 실험하는 프로젝트 ‘자업자득 스타트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은 ‘둥지’팀은 ‘거리에서 방황 중인 청소년들은 왜 쉼터를 가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모여 만든 사이드 프로젝트다. 올 4월, 한 기획자가 먼저 온라인에 제안했고, 청소년 쉼터 재직자와 상담 활동가, 디자이너와 개발자 등 총 9명이 참여의사를 밝히며 머리를 맞대었다. 청소년 쉼터에 대한 정보가 가출청소년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고민 하에, 이들은 자신들의 본업을 유지해가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청소년 쉼터 앱을 만들어가고 있다. 

“재밌고 의미있게”...직접 사회문제 해결에 나선 사람들 

‘프리즈밍’, ‘둥지’와 같이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는 개인 및 조직이 늘고 있다.

배영순 서울시NPO지원센터 변화지원팀장은 “최근 흐름을 보면 처음부터 무거운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풀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프로젝트성으로 가볍게 개인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 사회적 의미를 찾고자 공통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이거나, 딱딱하고 무거운 사회문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미있게 풀고자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상당수는 사회진출을 앞둔 대학생이거나 비영리단체 근무 경험자, 또는 기존에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시도를 꿈꾸며 ‘사이드프로젝트’로 결합하는 이들이 주다. ‘진저티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던 3명이 사이드프로젝트였던 스터티모임에서 출발해 연구, 교육, 출판 등의 지식형 사업으로 발전시켜 창업한 사례다. 사업 내용은 비영리 성격을 띠고 있지만, 형태는 주식회사로 운영된다. 서현선 진저티프로젝트 대표는 서울연구원과 진행한 정책리포터 인터뷰에서 "기존의 비영리기관들이 조직 문화 등에서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걸 고려하면 새로운 형태의 비영리기관들이 만들어지는 건 매우 중요한 흐름이다"고 말했다.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정책리포트 <서울시 비영리 스타트업 실태와 청년일자리>에서 서울시 소재 비영리스타트업에 재직 청년 4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비영리스타트업에 참여한 이들 중 65%는 정규직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들이 안정적이었던 직장에서 나와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유는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응답자의 대다수가 ‘자아실현과 사회공헌 등 내적 동기’를 이유로 비영리스타트업에 참여한다고 답했다.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정책리포트 '서울시 비영리 스타트업 실태와 청년일자리'에서 밝힌 '비영리스타트업 태동 배경'

또한 이들의 상당수는 청년층이다. 서울연구원이 서울의 주요 비영리스타트업 5곳(열린옷장, 플리 , 점프, 비영리IT지원센터, 진저티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참여자 대부분이 청년층이다. 최근 프로젝트 지원에 참여하는 이들 다수도 대학생, 또는 청년층이다. 주도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 내재된 가치, 가치와 연결된 일을 함으로써 만족감 등이 주된 참여 이유다. 양석원 열린옷장 사외이사는 “아무래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 기반 사업들이 많다 보니 젊은층의 활동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다루는 분야도 기존의 전통적인 비영리분야보다 훨씬 넓어지고 있다. 

종교, 돌봄, 자선 등 전통적으로 비영리단체들이 다루는 사회문제를 넘어 출판, 컨설팅, 공유경제, 도시재생, 교육, 문화, 반려동물, 블록체인 등 주제나 방식도 다양해졌다. 기존에 다루던 사회문제를 새로운 방식의 사업으로 전개하기도 하지만, 아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도 한다.

서울혁신파크가 지원하는 '자업자득 스타트업'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은 '블록체인포굿소사이어티(B4GS)'는 블록체인을 연구하고 이를 활용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이곳의 공동조직자인 지명근 씨는 "한국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한 선례를 찾았는데, 마땅한 게 없어 우리가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다만 구성원 모두 비영리단체에서 일한 경험도 없고, 사회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 본 전문성이 없어 ‘자업자득 스타트업’을 통해 도움을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혁신파크가 지원하는 '자업자득 스타트업'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은 '블록체인포굿소사이어티(B4GS)'는 3명의 공동조직자들이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지고 블록체인을 활용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혁신파크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사업 방식을 적극 활용하기에 운영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사무실이나 상근 직원을 따로 두지 않거나, 모금 과정에서도 크라우드펀딩 같은 신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물론, 엔젤투자 등 자금원도 다양해지고 있다. 기금 운영에서도 공유경제, 소셜미디어 활용, 멘토링 도입, 기부와 자원봉사, 민간후원, 타 사회단체와 연계 등으로 다각화되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특징을 보인다. 

"성장 경로 보이지 않는다" 어려움 호소

"사업 형태를 결정할 때 협동조합 형태도 고민했지만 결국 비영리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조언 받을 곳이 없었다. 새로운 형태의 비영리사업이라 지원 받을 때도 행정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버려지는 웨딩꽃을 기부하는 비영리단체 플리(FLRY)를 운영하는 김다인 대표의 얘기다.  

사회적경제도, 스타트업에도 속하지 않는 이들을 지원하는 곳이 거의 없다 보니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운 좋게 중간지원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아도 다음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다.  

한 활동가는 “일단 지원을 통해 3개월 간 실험에 성공했지만 그 다음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이 많다”며 “돈 버는 건 자신이 없는데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키려니 지원 경로가 소셜벤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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