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리동의 옛모습을 책자에서 보여주고 있는 오세명 해설가 /사진=홍은혜 인턴기자.

“오늘 본 공덕동과 염리동의 골목을 정식 마을여행 때도 그대로 볼 수 있을까요?”

공덕동과 염리동의 마을기업 팸투어에서 해설가가 한숨을 쉰다. 

‘팸투어’란 정식 투어상품이 출시되기 전 관련자들을 초청해 피드백을 받고 개선점을 찾고자 하는 사전답사여행이다. 기대로 가득할 것 같은 사전답사에서 해설자가 이런 걱정을 내비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곳곳에 부는 재개발 바람을 마포구도 빗겨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공덕동은 무려 4개의 지하철노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다. 연남동, 망원동 등 이른바 ‘핫플레이스’들이 떠오르면서 집값 상승률은 강남 3구를 넘어섰다.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물결 속 속절없이 와해되고 있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마포구 내에서 고개를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중 공덕동과 염리동에서 주민공간과 자치를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은 돋보인다. ‘10000걸음 속 숨겨진 마을 만나기’라는 슬로건을 내 건 ‘마포만보 마을여행’은 마포지역의 역사, 문화, 경제 등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다. 그 중 ‘더불어염리’ 코스는 공덕동과 염리동 지역 내 소통을 이어가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회적경제단체와 기업들을 만날 수 있는 코스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카페), 솔트카페 등이다. 

<오세명 해설가- Box interview>

- 투어를 직접 기획했다. 무엇을 담으려 했나요? 

▶아현 뉴타운 개발로 높은 빌딩과 아파트촌으로 변해가는 도심 속에서 옛 도심 마을의 골목길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 모습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 참여자들이 어떤 점에 집중해 투어에 참여했으면 하나요?

▶신도시, 뉴타운개발로 시끄러운 서울 도심에서도 이렇게 호젓하고 조용한 동네가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현재 진행되는 개발에서 조금 떨어져서 40,50여 년 전 우리가 살아온 모습을 기억하고, 속도조절이라는 측면에서 도시를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모습도 많이 달라졌음을 확인하기 바라요. 과거에 사진과 기억에는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오며 가며 서로 부딪치고 만났지만, 오늘날 골목에는 사람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마을 주민이 어떻게 어디서 만나야 하는가를 고민 했으면 좋겠습니다. 

 

'국유지가 ‘시민의 것’일 수는 없을까?' 

투어를 시작한 공덕역 1번 출구 부근은 오피스타운과 아파트가 들어선 영락없는 회색도시.  경의선을 따라 조성된 푸른 숲길 사이에 ‘경의선공유지’와는 대조적이다. 비오고 캄캄한 날씨. 공유지 내부 소규모 공간들은 노란색, 분홍색 다채롭지만 날씨 탓인지 어딘가 휑하다. 수작업·문화예술 공간, 마켓 등은 왜 ‘공유지’일까. 

“여기는 국공유지다. 경의선이 지하로 내려가면서 지상 철로를 따라 경의선숲길이 조성됐고 주변이 개발돼 상권이 발달했다. 늘장협동조합은 2013년에 서울시와 계약해 경의선공유지에서 3년 간 시민 장터를 운영했었다. 하지만 계약 기간이 만료 후, 부지를 관리하는 철도시설공단이 이랜드와 역세권 개발 협약을 체결하면서 늘장을 닫고 퇴거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에 장터를 운영하던 시민들과 늘장은 행정관료와 대기업이 국유지 개발을 결정하고 시민들은 그대로 수용하는 방식에 의문을 던지고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을 시작했다.” -오세명 해설가

미어캣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활동가가 “사실상 저희는 공유지를 무단점유하고 있는 셈”이라고 운을 뗐다.

“국공유지도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죠. 공유지는 어느 누가 소유하는 개념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사용하는 공유재(Commoms)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공간은 여러분도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런 이유에서 공유지를 26번째 자치구로 선언했다. 구민들은 포장마차, 노점 등의 사업을 하다 재개발로 인해 쫓겨난 도시난민들이다. 카페, 공방, 포차, 플리마켓, 수작업·문화예술 공간 등 이들이 옮겨온 생업들이 공유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다양한 시민장터, 문화클래스, 행사가 열린다.

이 날도 한켠의 문화플랫폼 공간에서 장애인이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행사인 ‘마이스토리텔링’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사진=홍은혜 인턴기자

“치솟는 임대료에 밀려났지만 지역공동체 인큐베이터 역할 하고파”

빗줄기가 굵어졌다. 커피방앗간 ‘빈스서울’이 있는 길목에 가득 퍼진 원두 볶는 냄새를 겨우 뿌리치고 도착한 다음 행선지는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이하 나무그늘)이 운영하는 카페. 

따뜻한 모과차를 마시며 정종현(멍구) 이사장의 얘기를 들었다. 달달한 협동조합 운영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무그늘은 2011년 마포구의 내에 재개발 이슈가 떠올랐을 때 지역의 어려움을 사회단체들과 주민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시작했어요. 주민과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보니 카페를 선택했죠.”

나무그늘협동조합원들의 이름패가 출입문 위에 붙어있다.
나무그늘카페는 점심에 비건카레 등 식사류를 판매하고, 저녁에는 바(Bar)로 운영된다.

정 이사장은 “나무그늘이 지역 공동체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카페에서 젬베, 생활도자기 등 취미클래스를 열고 인근 상인들의 장사 노하우와 삶 이야기를 듣는 강의를 여는 등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해요. 조합원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도 카페를 개방하고 있죠. 아이를 육아하는 조합원들이 ‘소금꽃마을마더센터’라는 독립 협동조합을 만들어내기도 했어요.” 

지역 주민들의 입소문을 타고 10명의 초기멤버에서 220여 명의 조합원 규모로 성장한 나무그늘은 1/n정신을 중시한다. “조합원들이 나무그늘을 내 가게로, 내가 소비자이자 운영주체”로 여기게 하겠다는 것. 가능한 많은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총회도 1주일 내내 열린다. 조합원들이 아무 때나 들러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과 소통의 장을 만들고 싶었던 나무그늘조차 재개발로 인해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밀려났다.

나무그늘카페 내부에 마련한 동네 아이들을 위한 쉼터.
사진=홍은혜 인턴기자

“원래는 주거지와 근접한 골목 1층에 있어서 아이들과 주민들의 접근성이 높았어요. 하지만 임대인이 5년 만에(계약갱신기간) 월세를 50% 올려달라고 했고 높은 월세에 현재 자리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사 후 아이들의 위해 마련한 공간도 협소해지고 대로변 2층이라 아이들이 놀러오기 쉽지 않은 위치”라고 토로하는 그의 얼굴이 씁쓸하다. 

나무그늘은 이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36.6°c사회적협동조합(의료),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문화예술)과 함께 TF(Task Force)를 구성하고 ‘시민 자산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시민들이 임대료 걱정 없이 공유건물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현재 시민소유의 자산이 필요함을 공론화하고, 공동건물 확보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있는 단계입니다.”
 

염리동 사랑방 ‘솔트카페’, ‘소금정신’으로 수익은 마을에 환원

여정의 마무리는 마을기업 ‘솔트카페’. 카페 입간판을 보고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염리동주민센터였다. 주민센터 2층에 입주해있는 솔트카페는 2011년 인증받은 마을기업 중 살아남은 유일한 마을기업이다. 주민들에게 솔트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공간만이 아니다. 

“우리는 소금의 판로이자 주민을 위한 공간이에요. 임대료와 인건비를 뺀 추가수익은 이사들이 이익금으로 가져가는 것 없이 모두 마을사업과 복지에 환원하고 있답니다.” 42년 간 염리동에 산 이성재 대표이사의 소개다.

염리동(鹽里洞).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조선시대부터 소금상업이 발달한 동네.

마포나루는 큰 소금선박이 정박하는 무역항이었다. 염리동에는 소금상인들이 자리잡고 살았고 소금창고도 많았다. 현재 소금마차가 지나던 소금길은 개발로 인해 거의 사라지고 염리동주민센터 부근에 일부 남아있다.

염리동 소금길 골목. 말이 끄는 소금마차가 통행하기 편하도록 정비된 조선시대 골목의 형태가 남아있다.
사진 제공=마포만보

갈등이 생기면 얼굴을 맞대고 이를 해결할 장소가 필요하다. 솔트카페는 재개발 이슈가 불거졌을 때 ‘화합의 장’ 역할을 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찬반 간 갈등의 골이 깊었어요. 카페를 통해 주민 간 대화와 교류가 이뤄졌고, 현재는 갈등이 많이 치유된 상태에요.” 

카페에서 재개발에 대한 뜬소문이 아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설명회를 열고, 영업시간 외에 공간도 개방하는 등 주민들이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공간이 이 곳이었다.  

솔트카페 내부 /사진=홍은혜 인턴 기자

"재개발은 현재 진행 중."

마포만보 마을투어는 재개발의 중심지를 밟는다. 마을투어는 ‘남의 동네를 내 동네로, 나아가 모두의 동네로 만드는 공감’ 여행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녔던 골목들이 하나하나 역사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공동체는 다 옛날이야기고 지역 커뮤니티는 와해 된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지역 공동체를 이어나가는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 혹시 우리 동네에도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공감만세를 통해 투어에 참여한 김명란 씨는 투어에 꽤 만족한 듯하다. 그는 투어 설문지에 어떤 피드백을 적었을까.

투어가 끝난 뒤에도 마포만보와 공감만세 관계자들은 솔트카페를 떠나지 않았다. 고민 가득한 얼굴로 나누는 이야기를 슬쩍 들어보니, 고객이 즐길만한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콘텐츠 간 조율을 고민하는 듯하다. 

오늘 만난 마을공동체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들이 만든 대화의 장을 통해 주민 교류 공간을 지킬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 ‘마포 주민주도형 여행플랫폼 구축사업단’은 마포구와 마포구고용복지지원센터가 서울시와 함께 작년 10월에 시작한 상향적·협력적 일자리창출사업의 일환이다. 마포에 새로운 관광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 ‘마포만보’는 16명의 활동가들이 마포 일대의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경제 이야기를 발굴해 마을여행 프로그램으로 기획하고 해설한다. 더불어염리를 포함해 총 15개의 프로그램이 있다.

* 더불어염리 코스 (2시간) : 11월 투어 개시
: 경의선 숲길 -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 염리동 소금골 – 더빵(지역화폐모아) - 솔트카페

* 문의 : 070-4235-0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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