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주부들이 형형색색 주방용품은 별로 선호하지 않거든요. 화이트나 블랙 톤으로 깔끔한 느낌이었으면 한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거죠.”
‘경기도주식회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은아 대표는 사무실에 전시된 상품들을 테이블 위에 펼쳐냈다. 도마의 색깔을 바꾸고 와인병의 디자인을 개선하고 각티슈의 제품명을 바꾸는 등 그동안 해왔던 활동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설명했다. 한마디로 경기도 내 중소기업이나 사회적경제 기업에서 만든 우수한 제품에 경쟁력을 더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경기도주식회사(이하 GGD)는 경기도, 경기도중소기업연합회 등 지역 경제 주체들이 공동 출자해 지난 2016년 11월 설립했다. 지역 단체와 중소기업이 서로 도우며 상생하는 새로운 공유 시장 경제 모델을 구축한다는 목표로 출범했다. 김 대표는 “도가 중소기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선택한 실험적 모델로, 지자체와 주식회사라는 이질적 요소가 결합한 사례는 전국에서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시장 트렌드?소비자 심리 분석해 제품에 반영하는 현장 전문가
설립과 함께 선임된 김 대표는 앞서 디자인 전문 잡지 ‘디자인하우스’와 대기업 외식업체 ‘CJ푸드빌’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일했다. ‘리빙페어’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등 잡지 속 콘텐츠를 사업화하고 ‘뚜레쥬르’ ‘빕스’ ‘투썸플레이스’ 등 CJ 외식 브랜드를 개선하는 등 작업을 맡았다. 소비자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해 시장에 내놓을 만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그가 전문적으로 해왔던 일이자, GGD에 가장 필요한 일이었다.
김 대표는 “시장 트렌드를 분석하고 소비자의 심리를 연구했던 현장에서 경험이 GGD의 사업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이전에는 대기업의 상품이었다면 지금은 중소기업의 제품을 마케팅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해왔던 일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경기도에서 마케팅 지원사업을 시작한 것은 도내 12만 3000개에 이르는 중소 제조기업이 있다는 데서 출발했다. 의류?봉제, 식품, 생활용품, 뷰티용품, 디지털 제품 등 다양한 물건을 만들고, 원재료를 가공해 유통하는 소규모 제조업체가 대다수다. 서울이 도시화하면서 옮겨온 경우도 있고, 서울과 가까워 처음부터 경기도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12만개 제조기업 중 95% 소규모…‘다품종 소량생산’ 소비 트렌드에 적합
문제는 12만 3000개 제조기업 중 95%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라는 점이다. 김 대표는 “실제 기업 대표들을 만나보면 5인 미만 소공인인 경우가 많다”며 “규모가 작다 보니 대부분 인력이 제조에 집중할 뿐 마케팅?홍보에는 힘을 쏟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제조하는 사람들은 생산에만 몰입하고, 팔아주는 일을 대신 맡는 것이 GGD의 역할인 셈이다.
김 대표는 “중소기업이 가진 역량이 트렌드와 취향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적합하다”고 내다봤다. “소비자들의 욕구가 세분화하고 다양해지면서 일부 기업에서 대량으로 만든 소품종보다는 여러 기업들의 다품종 생산 방식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금은 소비자가 무언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스스로 직접 만들어내는 시대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마트 같은 곳에 가보면 상품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라고 느껴요.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제품을 충분히 유통한다면 훨씬 더 다양해질 거예요. 더구나 이제 온라인으로 소비의 중심이 변화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 시장을 넓힐 수도 있어요. 좋은 제품에 적절한 마케팅만 더해준다면, 중소기업 중 진짜들은 점점 두각을 나타낼 거라 봅니다.”
직접 제작한 ‘라이프클락’ 2만개 판매, 공정무역X로컬푸드 결합한 제품도 출시
GGD가 도내 중소기업과 협업하는 방식은 크게 3가지다. 기존에 있던 제품의 디자인과 품질을 개선하는 ‘큐레이션 by GGD’가 대표적이다. 직접 상품을 개발하는 ‘크리에이티드 by GGD’를 통해서는 시계형 재난안전키트 ‘라이프클락’을 내놓기도 했다. 도내 우수 중소기업 18곳이 협업해 재난 발생 시 필요한 구호용품과 교육 자료 등을 넣어 만든 제품으로, 지난해 8월 출시 이후 2만개 넘게 판매했다. 유명 디자이너?브랜드와 협업하는 ‘콜라보레이션 by GGD’도 있다.
최근 4번째 방식이 추가됐는데 공정무역 제품과 경기도내 지역 생산물을 결합한 ‘페어트레이드 by GGD’다. 도에서 지난달 29일부터 2주간 진행한 공정무역 캠페인 주간 ‘포트 나이트’를 맞아 ‘로컬-페어트레이드’ 상품으로 ‘페어데이 캐슈두유’와 ‘이퀄 초콜릿 오곡크런치’를 선보였다. 베트남 농부가 생산한 캐슈넛에 파주·오산 지역 농부가 키운 콩을 더하거나, 페루 농부가 생산한 초콜릿에 양평 농민이 재배한 곡물을 결합한 식이다.
김 대표는 “공정무역이라고 하면 좋은 제품이라는 건 알겠는데, 너무 멀게 느껴져 사고 싶다는 매력이 덜하다는 단점이 있었다”며 “소비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지역의 좋은 식재료와 연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농산물이 많아 공정무역 제품과 접목시켰다”고 말했다.
현재 GGD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 안테나숍, 경기 시흥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 내 바라지마켓 등에 오프라인 매장을 내고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다. GGD홈페이지와 네이버 스토어팜, 신한카드 올댓쇼핑 등 온라인 판매처에서도 ‘GGD’ 마크가 붙은 각양각색의 제품을 판매 중이다.
“GGD는 너무 소규모라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을 수 없던 소공인들을 지원해요. 작은 기업이라도 이들이 가진 스토리를 발굴해내고 감춰진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려주는 것이죠. 지금은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보여도 나중에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사진제공. 경기도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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