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사회적경제의 화두 중 하나는 ‘금융’이다. 정부의 사회적경제 활성화 의지는 2월 8일 정부의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이하 2?8방안) 발표로 구체화됐으며,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금융의 역할, 혹은 금융생태계 구축은 지금까지도 사회적경제 종사자들에게 주요한 관심사이자 과제다. 민간 분야에서도 화답했다. 세계 경제의 대안으로 제기되는 ‘임팩트 금융’을 계기로 관련 인사들을 국내에 초대해 각국의 사례를 공유하는가 하면, ‘임팩트금융국가자문위원회(NAB)’가 출범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개인의 이윤 추구가 기본 가치인 시장경제에서 꽃으로 여기는 ‘금융’이 협력과 상생,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에 두는 사회적경제에서 어떻게 기능해야 할지 우려 또한 적지 않다.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주최로 지난 11월 2~3일 열린 ‘2018 사회적경제 활동가 대회’는 그간 각 지역에서 추진돼온 ‘사회적 금융’에 대한 여러 성공사례와 활동가들의 고민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전국 150여 명의 사회적경제 활동가가 참여해 공동체 가치에서 금융의 역할과 효과적 활용에 대한 방안을 함께 고민했다. 세종시 신협 중앙연수원에서 열린 대회 현장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난 11월 2~3일 세종시 신협 중앙연수원에서 열린 ‘2018 사회적경제 활동가 대회’

21세기는 ‘자본연대’의 시대...“우리 손으로, 문제 진단에서 해결까지”

민간 분야의 다양한 활동가들은 상생과 협력, 호혜와 공동체의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적경제를 발전시켜왔다. 그 성장 과정에서 법률에 기반한 ‘제도화’는 당연한 희망사항이지만, 역설적으로 제도화는 관 주도의 '기성화'라는 또 다른 우려를 동반한다. 바로 이 점에서 사회적경제 분야의 ‘금융’에 대한 고민도 출발했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문보경 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자본연대’를 역설했다.  

그는 ‘자본연대’를 “공동의 필요와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 및 조직들이 출자 및 출연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문 이사는 민간주도의 자본연대 흐름과 주요 현황을 제시하면서 “금융의 형성 과정에서부터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직접 조성에 참여하며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좋아진 금융환경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금융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보경 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

적재적소(適材適所).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는 전략은 현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전제돼야 성공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 분야의 생리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자금 공급을 위해서는 ‘사회 가치’라고 하는 기존 금융시장에는 없는 기준이 필요하다.  

문 상임이사는 “‘금융전문성’ 습득을 전제로 전문 운영기관을 직접 설립하고 기존의 사회적경제에 이해가 높은 협력파트너와 동등한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며 “사회적경제 성장 단계를 고려한 자금조달 체계는 있으나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충족되지 않는 사회적경제의 자금 수요 때문에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사례1. 허술한 시스템을 대신한다...단단한 신뢰 '전국주민협동연합회의 자조금융'

주제발표 후에는 국내 사회적경제 내 자금수요 해결 경험 사례와 새로운 시도들을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첫 사례로는 전국주민협동연합회의 자조금융 경험이 소개됐다. 지역주민협동은 지역의 저소득 주민들이 중심이 돼 출자금을 조성하고 긴급하게 생활자금이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신용으로 대출하여 어려움에 처한 조합원을 협동으로 돕는 자조운동이다.  

사례 발표에 나선 유유미 전국주민협동연합회 사무국장은 발표 내내 자신들의 자조금융이 ‘허술하기 짝이 없음’을 강조했다. 대출 대상을 선정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방법을 만들고 운영하는데도 특별한 시스템이 없는 허술함이 문제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유유미 전국주민협동연합회 사무국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0여 년간 빈민 밀집지역에서 조직되어온 주민운동이 지역자활센터를 거쳐  주민협동회로 성장하면서 이룬 성과는 눈부셨다. 전국에서 조합수 37개, 조합원 7,000여명, 대출금 누계 60여억 원, 출자금 40억 원, 총 대출자 8,064명의 신용사업 실적을 쌓고 튼튼하게 운영되고 있다. 3년 간 1400명의 조합원이 협동하여 만든 공제기금 4,000만원으로 117명의 조합원에게 의료비 2,900만원을 지원한 실적은 사회적금융 영역에서 새롭게 만들어가는 지속성장의 가능성이라고 유 사무국장은 강조했다.  

중앙에 기금을 모아 조합원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조직 전반에 대한 신용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한 것이나, 체계를 정비하고 시민자본으로서의 역할과 비전을 설명하는 바탕에는 주민과 밀착해 얻어낸 단단한 신뢰가 깔려 있었다. 유 사무국장은 발표를 갈무리하며 “우리 돈이 갖는 힘”을 힘주어 말했다.

사례2. 실험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기금사업 본격화!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공제사업단'

김선영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공제사업단 팀장

두번째 사례 발표에 나선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의 공제사업단은 2014년 한국수출입은행이 기부한 1억 원을 종자돈으로 조심스럽게 대출사업을 시도한 사례다. 사업 5년차를 맞는 현재, 공제사업은 기금 규모 47억 원, 공제회원 수 200여 개, 누적 대출 규모 57억 원으로 성장했다.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공제사업단 김선영 팀장은 "과연 제대로 될까? 종자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신뢰할 수 있는 기업들을 제대로 선별해 낼 수 있을까? 등 시도하지 않았다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결코 할 수 없었을 일"이라며 "향후로는 별도 재단으로 독립해 본격적인 기금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사례3. 국내 최초 사회적금융 도매기금...'사회가치연대기금 추진단'

이날 행사에서는 정부의 2?8방안으로 시작된 국내 최초의 사회적금융 도매기금 출범 과정과 계획에 대한 소개도 진행됐다.

김영식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발기인회 간사는 “사회연대기금은 최종 위험을 부담하고 사회가치를 고려한 차별화 가치 부여(Pricing)를 적용하는 국내 최초의 사회적금융 도매기금”이라며 “사회적경제조직에 인내자본 공급이 기금의 핵심사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식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발기인회 간사

3,000억 원 규모의 민관 매칭 펀드로 조성되는 사회연대기금은 출범과 함께 국내 사회적경제 생태계의 최대 자금 자원으로 기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김 간사는 이달 내 재단 설립 및 창립총회를 마치고 연내 출범식이 있을 것을 예고했다. 

사례4. 마중물 넘어 금융 사각지대 사회안전망으로...'서울시민공제조합' 설립하는 서울시사회적경제네트워크,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서울시는 사회적경제 기업과 사회주택, 에너지전환 등 사회적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장기, 저리 융자 중심의 사회투자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투자기금만으로는 사회적경제 기업의 자금 수요와 사회적경제를 비롯한 제3섹터 종사자들의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지난 6년 간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4대 공유자원망(공동사업망·인재양성·사회적금융·판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올해에는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보다 자조적으로 공유자산 조성을 위한 혁신적인 사업 제안을 내놓았다. 바로 ‘(가칭) 범제3섹터 서울시민공제조합’(이하 시민공제조합)이다. 

신재민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 기획전략실장

서울시사회적경제네트워크,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시민공제조합 설립을 통해 기업뿐 아니라 구성원 개인의 금융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한다. 특히, 기업구성원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 등 노동취약층(대리운전자, 프리랜서IT기술자, 방문교사 등)의 사회안전망 보완재 역할, 영세 공제조합 간 연계 협력을 통한 규모화, 공제 사업의 다각화 등을 도모함으로써 민간 자조금융 성장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생태계 자체의 활성화를 넘어서 사회적가치 실현에 직접 기능하고 작동하는 공제조합 설립사업은 한층 본질에 다가선 사업제안으로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환영받고 있다. 

이날 사례 발표자로 나선 신재민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 기획전략실장은 “11월부터 설문조사를 시작으로 시민공제조합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향후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며 “시민공제조합은 사회적경제 구성원들과 노동취약층을 위한 구체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공제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연간 사회적경제에서 지불하는 이행보증보험료가 5억6천만 원 정도로 추정된다. 우리은행, 서울보증보험이 현재 독점취급하고 있지만, 건설 및 전기공제 등 약 30개 공제조합은 독자 상품으로 취급 중”이라며 “앞으로 만들어진 시민공제조합에서 이러한 이행보증보험을 취급하게 된다면 자조금융 성장의 지렛대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례5. 당당한 사회적경제의 일원임을 선언한 '신협' 

이번 활동가 대회에서 가장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선 조직이 바로 ‘신협’이다. 행사 장소를 신협중앙연수원으로 제공하는가 하면, 활동가대회에 50여명의 임직원을 참여시켜, 자신들이 사회적경제 구성원의 일원임을 대내외에 공언했다. 

정복수 신용협동조합 중앙회 차장

발표자로 나선 신용협동조합 중앙회 정복수 차장은 “6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신협은 그 탄생에서부터 사회경제적 가치를 품고 협동조합 정신으로 출발했고, 당시의 설립자들을 1세대 활동가들”이라고 말했다.  정 차장은 “그간 권위주의 정부 체제에서의 어려움, IMF 구제금융 사태 등 시련을 겪으며, 제도권 금융에 편입되어 변질된 신협을 다시 변화시키려 노력 중”이라며 “협동조합 정신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자산 총액 88조 원에 60조 원의 대출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신협이 사회적경제의 일원으로 적극 나서주는 것은 사회적경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 차장은 2013년 시작해 2018년 3월 현재 총 81건 70억 원의 대출을 실행하고 있는 동작신협의 ‘사회적경제 융자사업’을 비롯해 북서울신협의 ‘가치지향금융 사업’, 주민신협의 ‘사회적경제 네트워크사업’ 등을 구체적인 예로 제시했다.

사회적경제기업가들은 이날 자금수요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들을 함께 논의했다.

특히 북서울신협의 '가치지향금융 사업'은 한양대 등 4개 대학교에 키다리은행을 결성하고 대학생들의 자조기금 조성 지원, 공동육아 대출 및 주택협동조합에 금융지원을 하는 게 골자다. 주민신협의 '사회적경제 네트워크 사업'은 주민신협이 직접 참여해 의료생활협동조합 등 일반협동조합을 만들고 이들 조직의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정 차장은 “이런 단위 신협의 사례들을 전체 신협조직에 확산하고 이를 사회적경제 생태계 전반에 확대하기 위해 136개의 사회적금융 거점 신협을 지정,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쏟아지는 비를 막아줄 우산이 되어주지는 못하지만, 그 비를 같이 맞아주며 곁에 있겠다”는 말로 신협의 다짐을 대신했다.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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