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바늘방석에 맨살로 앉은 것처럼 괴로웠습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현실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오랜 시간 일했지만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고, 부딪힐수록 깎여나가는 부분은 더욱더 뾰족하고 날카로워 질 뿐이었습니다. 나이에 맞게 주어지는 책임감 또한 무거웠습니다. 목이 옭조여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 한국인 최초의 우주 비행사 이소연 박사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딱 10년 전인 2008년 4월 8일부터 11일간 우주를 비행하며 무려 18가지의 기초과학 실험 임무를 진행하고 귀환하였죠.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는 475번째, 여성으로서는 49번째 우주인입니다. 2명의 아시아계 미국인을 포함하여 4번째 아시아 여성 우주인이기도 하지요. 우주로부터의 귀환 이후 국가는 그녀의 영웅적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만 골몰하였습니다. 후속 연구나 체계적인 지원이 없었음은 물론이고요. 4년 동안 강연, 전시 등 523회에 이르는 홍보성 대외 일정만 소화하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이소연 박사는 항공 우주연구원에 사표를 쓰고 경영학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런 그녀에게 먹튀냐, 국가 프로젝트의 희생자냐는 덫은 이때 씌워졌습니다.

이 박사가 강연 중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존감이 끝도 없이 추락하고, 한국을 좀 떠나있어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때 해외 출장을 가느라 비행기를 탔는데, 늘 반복적으로 듣던 비행 안전수칙 하나에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어요. 그전까지는 한 번도 주의 깊게 들어본 적이 없던 그 안내문 하나에 말이에요.”

‘만약 비상용 산소마스크가 머리 위로부터 떨어지는 경우 자신의 마스크를 먼저 착용하십시오. 이는 가족이나 다른 승객을 도우려다가 자신이 먼저 정신을 잃거나 사망하게 될 위험성을 최소화합니다. 자신이 먼저 착용해야 다른 사람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제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먼저 나의 안전을 확보하고 나서 누구를 돕더라도 도왔어야 하는 거죠. 그때 제 현실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연구원과 조국을 뒤로하고 유학길을 떠났습니다.

저도 이때 전율을 느꼈습니다. 아마 이 박사가 느낀 것과 같은 감정이었을 겁니다. 저도 온갖 스트레스 속에서 현실도피를 생각하며 안으로 침잠하고 있었거든요. 우리는 대부분 자신을 버리고 다른 이의 생명을 구하는 사례들에서 숭고함을 이야기합니다. 분명 살신성인은 미덕입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이타적 행동을 강요하는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자신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비상용 산소마스크를 쓰는 순서에 대한 안내는 선로에 서 있는 두 그룹 중 하나를 선택적으로 살려야 하는 트롤리 딜레마와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악의를 갖지 않는 한 타인의 죽음에 직접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그것이 얼마나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건 속 깊은 윤리적 논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훨씬 단순한 문제이지요. 함수가 아니라 덧셈 뺄셈의 문제입니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이 먼저 산소 마스크를 써야한다는 것은 모두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불확실성을 단계적으로 제거해나가는 일입니다. 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면 내 정신의 건강, 육체의 건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기에, 우리는 죄책감을 덜어내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한 상태로 너희를 돌보겠다는 의지가 전제로 깔리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조금은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고 자신에게 더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궁극적으로 그것이 건강하게 남을 도울 수 있는 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제 살에 박힌 가시부터 빼내기로 했습니다. 어깨 위의 짐짝들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조금 이기적이어도 됩니다. 조금 제멋대로여도 됩니다. 오늘은 우선 당신의 건강과 안녕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행쇼!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