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핵심은 지역, 지역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다.’

‘사회적경제’가 지역에 스며들며 주민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역에 뿌리내린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지역이 겪는 사회 문제에서 출발해 해결에 나서고, 이는 지역 내 고용창출로 이어져 가장 작은 단위의 경제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운넷>은 지역이 가진 특색을 살린 맞춤형 모델로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공동체 회복 등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경제 현장을 찾는다.

그 첫 번째는 성동구편이다. 성동구의 소셜패션, 안심돌봄, 자활 일자리, 마을치과, 뚝도시장 등 성동만의 색깔을 자랑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이야기를 프롤로그 포함 총 7부에 걸쳐 소개한다.

건강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2014년 4월 출범해
같은해 10월 건강한마을치과의원의 문을 열었다.

‘건강한 주민이 건강한 마을을 만든다.’ 

건강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문종찬, 이하 건강의료사협)의 철학은 간단하지만 명확하다. 서울 성동구 지역을 기반으로 2013년 12월 창립총회를 열어 이듬해 4월 법인을 설립한 건강의료사협은 5년이 지난 현재 1200명 조합원이 가입한 단체로 성장했다. 

설립부터 운영, 성장 과정을 함께해온 문종찬 건강의료사협 이사장은 “공익을 목적으로 지역주민과 조합원, 의료인이 협력해 의료기관 운영, 건강증진 활동을 통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주요 목표”라고 밝혔다. 건강의료사협은 법인을 세운 뒤 2014년 10월 성동구 행당동에 ‘건강한마을치과의원’을 개원해 지역 일선에서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지역 활동가+의료 전문가 의기투합해 ‘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성동구 지역에서 노동 운동을 하던 문종찬 이사장은
지역사회와 힘을 모아 건강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시작했다.

의료분야의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는 성동구에서 주민운동, 노동운동을 하던 두 단체가 지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같이 해보기로 의기투합하면서다. 당시 구에 있던 장애인치과에서 위탁 운영을 할 업체를 찾았고, 보건 의료 민간단체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에서 지역 사회와 함께 신청하기 위해 지역 단체에 연락을 해오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기존 업체의 계약이 연장되면서 장애인치과 위탁 운영은 못하게 됐지만, ‘내친김에 우리끼리라도 해보자’라는 의견이 모이면서 건강의료사협이 탄생했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해온 문 이사장을 비롯해 자활센터, 주민회 등 지역 활동가들과 치의학과 교수, 치위생과 교수, 보건의료 관련 단체 관계자 등이 모여 협동조합 설립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문 이사장은 “지역 활동가 출신 절반, 의료 계통 출신 절반인데, 작은 부분에서 이견이 있기도 했지만 운영 철학과 진료하는 방식 등 큰 틀에서 인식이 같았다”며 “서로 잘 모르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합 설립 초기부터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와 협력하면서 다른 진료 과목보다 먼저 치과의 문을 열었다.

‘예방 진료?주치의 프로그램’ 내세운 건강한마을치과 행당동에 개원

건강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건간한마을치과를 개원해
지역사회 건강에 기여한다./디자인=유연수

건강의료사협이 운영하는 건강한마을치과는 ‘예방 진료 우선’과 ‘주치의 프로그램 운영’이라는 크게 두 측면에서 일반 의료업과 차이가 있다. 

환자가 진료를 받기 전에 질병을 예방할 수 있도록 교육과 상담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구강검진, 문진을 통해 환자의 구강 상태와 습관을 파악해 구강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주치의 프로그램도 예방 진료의 연장선인 셈이다.

“주치의 프로그램은 치면세균막, 치간칫솔 출혈지수 등 구강검사를 시행하고, 의사와의 문진을 통해 ‘맞춤 진료’을 하는 거예요. 일상에서 어떻게 관리하라고 교육을 한다거나, 치료가 필요하면 환자와 진료 계획을 함께 짜는 것이죠. 환자에 따라 6개월 이후, 빠른 시일 내 등 각각 다른 때 방문하라고 결정하죠. 검사, 상담, 교육을 하는데 1명당 40분~1시간 정도로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현재 이 프로그램이 잘 안착되는 데 가장 힘쓰고 있어요.”

현재 건강한마을치과에는 원장 1명과 치위생사 3명 등이 근무 중이다. 주치의 프로그램 안착에 가장 어려운 점은 ‘인력 부족’이다. 환자들에게 필요한 진료는 다른 치과와 마찬가지로 하면서 주치의 프로그램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문 이사장은 “건강의료사협은 진료할 때 무엇보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중시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주치의 프로그램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인력을 확보해 전면 도입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조합원 1200명, 진료 권하기보다 예방?교육에 집중해 전체적 비용↓

건강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조합원을 모아
여러 혜택을 제공하고, 조합원 내 활동을 장려한다./디자인=유연수

현재 건강의료사협에 가입한 사람은 1200여 명이다. 조합원이 되려면 기본교육을 이수한 뒤 출자금 5만원을 내고 가입서를 제출하면 된다. 조합원이 되면 건강한의료사협의 구성원으로 치과운영과정에 참여 가능하고, 투표 등 조합원으로 권리도 행사할 수 있다. 조합원이 치과를 이용하면 치료받을 때마다 진료비를 낸다. 건강보험으로 정해진 치료의 경우 다른 치과와 진료비가 같지만, 비급여 항목의 경우 조합원에게 10% 할인해 제공한다.

문 이사장은 “임플란트 한두 개 진료비 정도는 다른 치과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비용은 저렴하다”며 “‘치아를 빼고 어떤 치료를 하라’고 권하기보다는 ‘굳이 치료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이렇게 관리하라’고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은 주로 성동구 주민들이다. 초기에는 건강의료사협의 설립 취지에 동의해 성동구에 살지는 않지만 좋은 뜻에 동참하기 위해 가입한 이들도 많았다. 최근 가입한 조합원은 인터넷에서 ‘믿을만한 치과’를 검색하다가 온 환자, 우연히 이용하러 왔다가 진료에 만족해 치과에서 가입을 권하면 조합원이 되는 경우다.
  
지난 5년간의 건강한마을치과의 성과에 대해 묻자 문 이사장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는데, ‘대체로 친절하고 과한 진료를 권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답변이 많았다”며 “확실히 과잉 진료가 없다는 부분은 환자들께서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이어 문 이사장은 “사회적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지 모르고 방문했던 환자 80~90%가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을 보면, 진료 만족도가 높다고 본다”는 생각을 밝혔다.

“조합원 스스로 건강 돌보고, 지역사회 건강까지 고민하도록”

건강한마을치과의원은 예방 중심 진료와 주치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치과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운영됐을 때의 장점은 무엇일까. 문 이사장은 “환자가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때 개별로 하면 높은 가격, 진료의 질 문제 등이 있으니 여러 이용자들이 뭉쳐 ‘소비자협동조합’ 방식으로 구매해보자는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단순히 소비자들의 ‘집단 구매’라는 의미를 넘어서 의료사협에서는 일반 병원에서 하기 어려운 예방 진료, 주치의 프로그램 등을 시행할 수 있거든요. 조합원들이 스스로 건강을 돌보고, 나아가 지역사회의 건강까지 함께 고민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의사, 치위생사 등 의료인들도 각자의 생산자 협동조합을 꾸려 자신의 의료행위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만족을 가지는 등 한발 더 나아간 생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강의료사협이 하는 또 다른 주요 활동은 ‘지역사회와 소통’이다.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구강 관련 강좌를 열거나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성동희망나눔 노인작업장 등에 방문해 장애인, 노인 등 취약계층의 구강 관리 및 교육을 진행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치과에서 직업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도 뿌듯한 활동 중 하나다. 한 사람은 치과 체어에 누워 환자 역할을, 다른 사람은 의사 역할을 하는 것인데, 참여한 아이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조합원들이 건강걷기, 몸살림운동, 생활발효교실 등 ‘소모임 활동’을 하도록 지원도 한다. 문 이사장은 “병원 운영 말고 소모임 같은 조합원 내부 활동이 잘 운영됐으면 하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소모임, 봉사동아리가 잘 운영되는 은평구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사례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살림의료사협은 규모도 크고 안정성이 있는데, 무엇보다 ‘여성주의’라는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조합과 병원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부럽다”고 덧붙였다.

사회적기금 등 재정지원 필요…“지역 단체들 연대한 ‘관계망’ 구축 중요”

지난 3월 열린 건강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제4차 대의원총회.
조합원들이 치과 운영에 의견을 내고 자율적, 민주적으로 운영한다.

1200명 조합원과 지역사회의 응원이 있지만, 건강의료사협의 재정은 아직 적자다. 치과 문을 열 때 차입한 비용이 아직 남아있는 탓이다. 문 이사장은 “지금 당장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재정적 문제”라며 “장기적으로 조합원이 늘어 출자금 자체가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사회적기금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활동은 민간의 자발적인 힘만으로는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재무제표를 보고 평가하는데, 사실 사회적협동조합에 일반 기업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그 문턱을 넘기란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사회적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항목이 필요하고, 금융권에서 사회적경제 조직을 보는 기준 자체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청년들을 교육해 양성하고, 실제 인재가 필요한 조직에 지원하는 정책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단순히 지원금을 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조성하고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민간 차원에서는 ‘단체 간의 연대’를 강조했다. 문 이사장은 “지역사회가 변화하려면 여러 단체들이 퍼즐 조각 맞춰지듯이 사업적으로 더 긴밀히 연결돼야 사업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면서 “단체를 연결해줄 사회적경제지원센터 같은 허브 기능이 더 단단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1차적으로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에서 출발했어요. 2차적으로는 지역사회의 건강까지 생각해야 하는데, 이제 그 고민을 해야 할 때죠. 앞으로 중요한 건 지역 내 ‘관계망’을 만드는 일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 건강의료사협 조합원이 다른 단체에 속했다면, 단체 간에 이롭게 엮이는 일이 필요한 거죠. 지금은 다들 자기 일에 몰두하느라 바쁘지만, 지역사회 여러 단체들이 힘을 모은다면 변화를 이끌어낼 에너지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사진제공. 건강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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