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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열린 2018 노들축제 현장에 마련된 ‘우리아가 백(100)구두만들기’ 부스에서 시민들의 참여 모습.

을 날씨가 완연한 9월 서울시청 앞 광장, 2018 노들축제 현장에 있는 ‘우리아가 백(100)구두만들기’ 부스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테이블에 자리 잡은 손님들은 가죽 재료를 가지고 아기구두를 만들고 있었다. 

“나 하나 가져가면 안 될까?” “기부용이라서 가져가시면 안돼요, 손님.” 만든 구두가 퍽 마음에 들었던지, 기부를 위한 아기구두에 눈독 들이는 손님도 더러 보였다.
 
협동조합 ‘염천교수제화거리’의 시작은 서울시 중구보건소와 국민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실시한 민관학 산학협력 프로그램이었다. 2015년부터 해마다 사회공헌 ‘백(100)구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노숙인, 경찰, 소방관 및 취업준비생, 의사, 간호사 등에게 구두를 기증해왔다.
 
반가웠다. 2016년 산학연계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력 덕분이다. 인터뷰에 앞서 개인적 인연을 밝혔다. “여기 있는 카탈로그 제작에 참여했었거든요.” 이시현 감사는 카탈로그를 뒤적이더니 “아 진짜 여기 있네요”라고 반색했다. 약 2년이 흐른 시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근황을 묻듯이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염천교수제화거리 협동조합’은 장인 4명, 컬쳐디자이너 3명 등으로 구성돼 운영되고 있다.

- 협동조합 인가를 받았다고 들었어요. 소개 부탁드릴게요.

협동조합으로 인가를 받은 게 올해 7월이에요. 현재 조합원은 장인 4명, 컬쳐디자이너 3명으로 총 7명이고요. 장인 네 분 중 세 분은 수제화를 만들고, 한 분은 가죽공예를 하세요. 컬쳐디자이너는 교수님이 두 분이 계세요. 2015년부터 진행했던 염천교수제화거리 활성화 프로젝트를 이어오신 분들이에요. 염천교수제화거리를 발굴하신 분들이죠. 여기에 저까지 3명이 컬쳐디자이너예요.

이번 ‘백구두 프로그램’은 2015년부터 4년째 계속 이어오고 있어요. 지난해까지는 ‘염천교 수제화거리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저희가 여기에 참여하는 형식이었어요. 이번 행사 같은 경우는 협동조합을 구성한 만큼 우리 행사로 진행했으면 싶었어요. 협동조합 설립 후 직접 주관하는 첫 행사에요. 직접 기부처를 선정했고, 시민참여형 이벤트로 진행하고 있어요. 첫 행사니 만큼 유니폼도 맞춰 입고 신경도 많이 썼죠.


염천교수제화거리 역사는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경성역(서울역)이 생기고 역 주변에 구두수선 노점상들이 모이면서 수제화거리가 탄생했다. 미군정 시기에는 미군화를 개조해 구두를 만들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1980년대, 수제화거리는 전국 구두 물량 대부분을 공급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2025년 100주년을 맞이한다. 협동조합의 공식 명칭은 ‘서울역수제화사회적협동조합’이다. 서울시는 ‘염천교 구두거리’라는 이름으로 서울미래유산에 지정해 놓았다. 기사에서는 주로 지칭하는 용어인 ‘염천교수제화거리’를 사용했다. 
‘염천교수제화거리’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시작돼 2025년 100주년을 맞이한다.

- 협동조합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최근 주민공모 사업에 선정됐어요. 수제화 공방을 계획 중이에요. 지금 컬쳐디자이너 두 분이 염천교 건물 3~4층에서 ‘염천교문화살롱’을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수제화 공방을 운영하려고 해요. 지금은 공방을 운영할만한 전압이 안 올라와서 공사 중인데, 10월 초부터 공방을 운영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덧붙여 수제화 공장을 운영하는데,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판매도 계획하고 있어요.


- 메이커스페이스 구축 계획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수제화’라는 도심제조업 콘텐츠를 가지고 있잖아요. 메이커스 생태계 안에서 다른 업체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장인들로만 구성된 협동조합이면 쇼핑몰 운영, 공장, 공방운영 정도에 그쳤을 것 같아요. 그런데 컬쳐디자이너가 같이 있잖아요. 아이디어가 많아요. 계속 확장성을 가져가려고 하는 거죠.

메이커스페이스는 3D 모델 파일과 다양한 재료들로 소비자가 원하는 사물을 즉석에서 만들어(printing)낼 수 있는 작업 공간을 뜻한다. 산업발달로 제조업 문턱이 낮아지면서 생겨났다. 메이커 운동은 개인의 취미인 DIY(Do It Yourself) 운동부터 산업 영역까지 아우른다. 제조업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 개인도 최종 완제품을 생산해 내는 '개인 제조업'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 조합원 간 역할은 어떻게 되나요? 청년 조합원으로 활동하시는 것도 눈길이 갑니다.

실질적으로 제품을 만드는 건 장인들이에요. 컬쳐디자이너는 기획, 운영 등을 통해서 장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거죠. 기본적인 역할은 이런데, 서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들은 도와줘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식사도 하고 아이디어 회의도 하고, 생각들을 많이 공유해요.

저 같은 경우는 컬쳐디자이너 한분이 대학에서 진행한 강의를 듣던 수강생이었요. 수강생인 저에게 같이하자고 제안하셔서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원래 다른 청년 2명이 더 있었고 저보다 먼저 했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그만두게 됐죠. 옆에서 많이 배워요. 장인들은 60~70대가 될 때까지 일을 하셨잖아요. 나이가 드셨는데도 젊은 사람과 소통할 자기만의 무언가를 가진 게 너무 멋있어요.

‘염천교수제화거리 협동조합’은 노년층인 장인과 청년층인 컬처디자이너가 협력해 일한다.

- 조합원간 연령대의 폭이 큰데요. 고충은 없나요?

다투기도 많이 다퉈요. 미운정도 많이 들었죠. 이제는 ‘얼른 돈 벌어서 시현이 시집보내줘야지’ 하세요.(웃음) 각자 살아온 이력이 다른데, 이해관계가 다를 때가 당연히 있잖아요. 머리 여섯 개에 발 하나랄까요? 제가 발이에요. 각자 요구들이 있고 그걸 조율하는 역할인거죠. 제가 도와준다고 하는데 오히려 많이 배우고 있어요. 연륜에서 묻어나는 경험이 대단하세요. 장인의 기술과, 컬쳐디자이너의 기획을 동시에 배우는 거죠. 기꺼이 발이 되어드리고 싶어요.


- 장인들이 쌓아온 세월이 엄청난데, 후학에 대한 고민이 있을 듯 합니다.

장인 분들이 모두 60~70대에요. 본인들도 말씀하시는 게, 중간수련생이 없다고 말하세요. 협동조합에 함께하려 했던 장인이 있었어요. 70세가 넘으면서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 결국 함께 하지 못했죠. 지금은 완전 은퇴하셨어요. 지금 40~50대가 있으면 대가 이어질 텐데, 아쉬운 부분이죠. 지금 운영 중인 공방도 향후에 활성화되면 아카데미로 바꿔보고 싶어요.


- 염천교의 5~10년 뒤를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저희가 처음엔 연구프로젝트로 시작했잖아요. 우수 사례로 상도 받았고, 10월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도시재생 컨퍼런스에서 사례 발표도 해요.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은 협동조합 형태까지 갖췄어요. ‘다음은?’을 계속 생각했고 몸으로 부딪혔기 때문인 듯해요. 염천교수제화 거리 앞에 있는 서소문 공원이 최근에 교황청 공식 순례 길로 지정됐어요. 사실 1년 뒤도 잘 모르겠지만 염천교 자체는 문화, 관광이 어우러지는 역사 유물로 남을 것 같아요. 조합원들은 다음 구성원들을 발굴하거나 우리 조합을 이어가는 것을 계속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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