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서울 쿱투어'에서 오창민 성북신나협동조합 이사가 이들이 운영하는 청년공간 '무중력지대'를 소개했다.
무중력지대는 '다양한 사회적 중력(취업, 결혼, 학업 등)으로부터 벗어나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 여러분, 협동조합이 뭔지 아세요? 
- 네!
- 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오창민 협동조합성북신나 이사의 물음에 ‘신나는 서울 쿱(COOP)투어(이하 쿱투어)’에 참여한 20여 명의 사람들이 대답 대신 와-하고 멋쩍게 웃어버렸다.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지 올해로 5년째. 1만 여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지만 여전히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답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땐, 실제로 보는 것이 일면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오로라의 정의를 아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그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달 14일 숭실대학생협 학생조합원, 청소년의숲사회적협동조합(이하 청소년의숲) 학생들, 고등학생 등이 쿱투어에 참여해 협동조합의 3곳의 자치를 살펴봤다.

투어에 앞서 이슬아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이하 센터) 매니저는 “청소년들과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성북구의 협동조합을 널리 알리고, 대학생들과 성북구 지역주민들이 협동조합을 직접 운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투어를 준비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김종원 경희대 생협 이사장은 “고등학생들이 학업에 바쁘겠지만 오늘 협동조합 방문을 통해 어떻게 서로 돕고 사는지 직접 보고, 또 어떤 것을 새로이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 다른 곳에서 실천했으면 한다”고 격려했다.
 

대학교 구성원들의 자치 ‘대학생협’, 학내 복지 책임진다

쿱투어의 첫 번째 여정은 경희대학교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경희대생협).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박주석 경희대생협 이사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어 “대학에서는 학생자치가 일정 부분 가능하다"며 "하지만 중·고등학생은 입시라는 상황과 피교육자라는 규범 때문에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구성하는 경험을 하기 어려운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경희대생협은 대학생협 중에서도 특히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고 한다. 2017년 12월 31일 기준 경희대생협의 총 12,731명 조합원 중 학생이 12,177명으로 내부 이사회와 상설위원회의 의사결정에서 학생의 목소리가 큰 편이다. 

박주석 경희대생협 이사는 “대학생에게 캠퍼스 생활은 높은 등록금, 주거비, 물가로 인한 생존의 문제”라며 “학교 학생들이 더 나은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복사실, 학생식당, 기념품점 등 여러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협의 역할을 소개했다. 

생협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은 매점, 카페, 유학원, 안경점부터 전자기기매장까지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각종 생협장학금을 지급하고 PB상품 제작, 명절귀향버스,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생협식탁’ 등 다양한 편의서비스를 제공한다. 

경희대생협이 운영하는 학생식당의 메뉴. 학생의 선호를 반영한 메뉴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생협은 식당사업팀을 따로 꾸려 운영하고 있는 학생식당은 점심시간 학생들의 발길로 붐빈다. 메뉴 안내 위 벽에 ‘생협보양식의 날’과 ‘생협웰빙도시락’을 소개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박 이사는 "생협에서 영양사와 조리사 등 인력을 모두 직접 고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점식 식사 이후에는 경희대 내 편의시설과 생협 운영 매장을 직접 둘러보고 쿱투어에서 제공한 쿠폰으로 상품을 구매했다.

학내 서점에서 쿠폰으로 구매한 책. 생협은 ‘반값쿠폰’으로 조합원들이 필수교양 교재를 싸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숭실대 생협에서 CI(Corporate Identity, 기업 로고)를 활용한 생협 마케팅을 맡고 있는 박종범 씨는 “경희대 생협 운영 매장에는 CI가 눈에 띄는 곳에 많이 부착되어 있어 생협이 운영하는 곳임을 잘 알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협, 뭐하는 곳인가요?>
대학생협은 주로 조합원들이 서점, 식당, 카페, 문구점 등 학내 복지시설을 직접 운영한다. 교수, 학생, 직원 등 대학의 구성원들은 모두 조합원이 될 수 있다. 학내복지에 필요한 물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발생한 수익은 지역사회와 학교 구성원들의 복지 향상에 재투자한다.     - 김진아 한국대학생활협동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 이사장

대학생협은 어떻게 물품을 저렴하게 입점할 수 있을까?
전국 35개 대학생협 중 29개가 '대학생협연합회'를 구성하고 필요한 물품을 공동구매한다. 연합회는 개별 협동조합이 혼자 하기 어려운 경제지원사업, 대정부사업(입법활동), 국제교류사업, 타 대학 생협 설립 지원 등의 일을 한다.

 

개인 존중으로 커나가는 협동조합, 성북신나의 무중력지대

다음 행선지는 협동조합성북신나(이하 성북신나)가 운영하는 공간 ‘무중력지대’이다. 이곳은 밀레니얼 세대들이 사회경제적인 중력(장애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유공간이다. 서울 6개의 구에서 공간을 운영하는데 각 구의 위탁 운영 법인에 따라 공간의 특성과 운영 지향점이 다르다. 무중력지대는 도시재생, 청년활동, 지역재생에 방점을 두고 있다. 커뮤니티 홀, 세미나실 등에서 청년이 시민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진행한다.

이 날 무중력지대에는 도시문제의 본질을 살펴보는 ‘도시의 행간읽기’, 청소년들이 성북 마을을 탐색하고 콘텐츠를 생산해보는 ‘청소년 메이커 캠프’ 등 이들이 진행한 활동에 대한 자료집이 비치돼 있었다. 청년들이 모여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판을 벌려주는 이들은 어떻게 사업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공간의 취지에 맞는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팀, 개인들과 협업한다. 성북신나에서 단독으로 기획하는 콘텐츠는 거의 없다. 홈페이지에서 상시 신청을 받고 있고, 협업하기로 한 팀에 금전적(200만원), 물리적(공간) 지원을 한다.” - 오 이사

성북신나에 창업 초기 어려운 점을 묻고 있는 배정은 숭실대학교 학생.
초기 자금 어려움에 지역 시니어 8명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오 이사에게 개인을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성북신나의 고민이 묻어났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조합원들의 관계가 끈끈할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우리는 굉장히 드라이하다. 7시 이후에는 얼굴 맞댈 일 없는 비즈니스다. 하지만 성북신나의 조직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등과 안전을 통한 ‘개인 존중’이다. 한 개인이 충분히 존중받는 환경에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창의력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어 그는 “성북신나의 자치는 개인과 단체가 함께 성장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맡으면 된다. 개인이 조직생활 동안 얻고 배운 게 없다면 개인은 조직을 위해 희생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성북신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커리어를 쌓는 과정 자체가 성북신나의 성장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식당, 여행, 동아리..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청소년 ‘자치활동’의 숲

경희대생협과 성북신나가 청년들의 자치활동이라면, 청소년들이 주체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한 협동조합도 있다. 성북구의 ‘청소년의숲사회적협동조합(15년 조직, 17년 인가, 조합원 7명)’이다. 방과 후, 주말엔 청소년의숲을 찾는 학생들은 학교의 틀 안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기획활동과 놀이, 교육을 진행한다. 

청소년의숲의 자치활동은 단순한 '활동'이 아니다. 누군가가 체험하고 배우라고 준비해준 판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부터 실행, 결과까지 모든 과정을 밟는다. 중학생 14명으로 이루어진 자치공동체인 ‘청년부엌공동체 아지트틴스’에서는 직접 만든 목공제품과 요리를 팔아 돈을 벌고 여행을 준비한다. 예산 수립, 기획, 문제해결 등 모든 과정은 자치회의에서 이루어진다. 자치공동체를 1년 이상 경험한 고등학생들은 IoT, 디자인, 사회적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진로를 탐색하고 분야 경험을 쌓는 진로동아리를 조직하고 있다. 

청소년의숲 사회적경제동아리 Argo가 운영하는 ‘청소년식당 두시간’의 간판. 디자인동아리원이 직접 디자인했다.
사진=청소년의숲 제공

사회적경제동아리 Argo에서는 매월 첫째, 셋째 주 토요일 12시부터 2시에 ‘청소년식당 두시간’을 운영한다. 메뉴개발부터 회계, 조리까지 청소년들이 직접 맡아 운영하여 지역공동체에 식사를 제공해 사회적경제활동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이 외에도 ‘세계 청소년의 날’ 축제를 기념하여 플래시몹(flashmob) 영상 제작, 그래피티(graffiti),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신희경 청소년의숲 이사장은 “우리 아이들은 일을 참 잘합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을 잘한다는 것이고, 현재의 다음 단계와 필요한 것을 알고 계획할 줄 안다는 것이죠”라고 소개했다. 

 

청소년의숲을 둘러보고 난 후에는 협동조합들이 직접 준비한 체험 클래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예인 협동조합 ‘힐링필링’과 은반지를 만들고, 퍽퍽한 식빵 같은 인생에 달콤한 잼을 처방해주는 ‘잼있는인생’과 함께 잼을 만들어봤다. 

수공예인들이 모인 '힐링필링'협동조합에게 은세공 방법을 듣고 은반지를 만드는 중이다.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 철판 같았던 은 조각에 열을 가했다 식혀 구부리고, 땜질을 한다.
그 다음 동그란 틀에 넣어 두들기고 원하는 문구를 새겨 넣으면 하나밖에 없는 반지가 탄생한다. 
협동조합 '잼있는인생'과 함께한 잼만들기. 이들은 퍽퍽한 인생에 재미를 주기 위해 잼을 만든다.

 

오늘 만난 협동조합의 모습은 존중받는 개인이 모여 모두가 누릴 일을 직접 만들어내며 공동체와 자신을 동시에 성장시키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협동조합을 통해 대학생이 먹고, 구매하고, 빌리는 것들, 청년들이 마음껏 일을 만들고 실패해볼 수 있는 공간, 지역 청소년들의 도전이 일궈지고 있다. 

박종범 숭실대생협 조합원은 “협동조합은 공기처럼 생활 속에 너무 많이 녹아 있어서 오히려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그는 “오늘 하루동안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다양한 분들을 만나보니 에너지가 대단한 것 같다.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쿱투어 참여자의 소감

 

오는 11월 17일에 예정된 다음 쿱투어는 학교협동조합 관계자들이 다녀오게 된다. 투어를 주관한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는 내년에도 투어를 지속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관련 문의는 센터 성장지원팀(070-4168-8536)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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