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고 최형철 교장이 MRSM 타이핑 학생들을 위해 환영 인사를 하고 있다.

# 지난 2014년 1월, 서울시 학교협동조합 추진단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말레이시아는 50년의 학교협동조합 역사를 가진 나라다. 추진단은 벤치마킹을 위해 3박 4일 동안 교육부, 세리 푸테리 중고교(Sekolah Menegah Seri Puteri)의 학교협동조합, 정부 산하 협동조합진흥원이라 할 수 있는 MCSC(Malysia Co-operative Societies Comission), 협동조합연합회의 앙카사(Ankasa) 등을 방문해 이들이 학교협동조합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는지 배웠다.
  
4년 반이 흐른 지난달 31일. 이번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말레이시아 협동조합학교 MRSM 타이핑(Maktab Rendah Sains Mara Taiping)에서 온 19명의 학생과 교사들은 서울 삼각산고에 들러 한국 학교협동조합을 엿봤다. MRSM 타이핑은 말레이시아 타이핑 시에 있는 과학 기숙학교다.

이날 삼각산고 학생들이 학교 협동조합이 하는 일을 영어로 소개했다.

"한국 학교협동조합이 궁금해서 왔어요!"

삼각산고와 MRSM 타이핑 학교협동조합 학생들의 교류 현장. 학교는 한창 축제 기간이라 여기저기 알록달록하게 꾸며 있었고 고소한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이날 오전 진로교육실에는 학생과 교사 등 약 40명이 모였다. 이들은 서로의 학교 협동조합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삼각산고 발표를 맡은 조합원 이재경 학생은 “삼각산고 협동조합은 2014년 설립됐고, 조합원은 현재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 주민 등 270명으로 구성돼 있다”며 “조합원 일부가 동아리 ‘2scoop’을 구성해 학교 학생들과 함께하는 축제, 프로젝트 등을 주최한다”고 소개했다. 발표를 맡았던 다른 학생들은 학교 축제 ‘늘품제,’ 아트페어, 스타트업페스티벌, ‘나도선생님’ 프로젝트(학생들이 직접 수업안을 만들고 수업을 진행하는 프로젝트) 등 학교협동조합이 지원하는 각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했다.

MRSM 타이핑은 영상을 준비해 왔다. MRSM 타이핑의 학교협동조합은 제품을 팔 뿐만 아니라 세탁소, 홈스테이 서비스, 도서전시회 등을 운영하고 ‘언어 주간,’ ‘운동의 날’ 등을 기념한 다양한 축제를 연다. 학교협동조합 이사이자 교사인 완 로하니 하룬(Wan Rohani Harun)은 “MRSM 타이핑의 학교협동조합은 1983년부터 시작해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며 기숙학교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발표를 들은 이재경 학생은 “말레이시아 학교 협동조합을 보니 다양한 활동을 많이 펼치던데, 우리도 이를 본받아서 더 수익성을 높이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계성고로 자리를 옮기기 전, 말레이시아 학생들이 삼각산고 학생들이 마련한 놀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모든 발표가 끝난 후, 말레이시아 학생들이 한국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학교 기념품과 머그컵 등 선물을 가방에 담아 전달했다. 이제는 한국 학생들이 준비해 놓은 놀이 프로그램을 즐길 차례. 야외로 나간 학생들은 한데 섞여 즐겁게 게임을 하며 화창한 날씨를 즐겼다. 프로그램 준비에 참가한 학생은 “삼각산고 학생들이 특별히 MRSM 타이핑 학생들을 위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한 게임”이라고 말했다.

"와...." 말레이시아 학생이 실수해 머리 위로 물이 쏟아지자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깔깔거렸다.
  
말레이시아 학생들은 삼각산고를 거쳐 계성고, 길음중도 방문해 각 학교의 학교협동조합을 둘러봤다. 4박 5일 동안 한국의 학교협동조합을 만나고 여행한 이들은 8월 4일 귀국했다.

MRSM 타이핑 학생들은 계성고(왼쪽)와 길음중을 방문해 급식을 먹고 한국 학생들과 아시안게임, K-POP 등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 서울학교협동조합협의회 장이수 대표는 "학생들은 헤어짐이 아쉬워 사진을 찍고 이메일 주소까지 교환했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정부 주도로 학교협동조합 양성한다

말레이시아는 50년의 학교협동조합 역사를 가진 나라다. 1953년 학교협동조합 설립을 허가하는 결의안이 채택됐고, 1968년 정부가 주도해 9개 학교에서 시범적으로 학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2015년 기준 2,333개의 학교협동조합이 설립되어 운영 중이며, 학생조합원은 전체 조합원 수 중 28%를 차지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MCSC(Malaysian Cooperative Societies' Commision), CCM(Co-operative College of Malaysia), 앙카사(ANGKASA) 등 세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해 전국 협동조합과 관련된 역할을 분담한다. MCSC는 말레이시아 협동조합의 등록이나 관리 및 감독을 하는 협동조합 진흥원이며, CCM은 협동조합 교육 콘텐츠를 생산하고, 협동조합을 훈련시키는 협동조합 대학이다. 앙카사는 협동조합 전국연합회다. 학교 협동조합은 이 중 앙카사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는다. 앙카사는 학교협동조합에 일반 가격보다 15~30% 저렴한 가격에 물품을 공급하며, 교육 서비스를 지원한다.
  
말레이시아의 학교협동조합들은 매점 운영뿐만 아니라 수학여행, 세탁소, 지역 관광 등 다양한 사업을 주도한다. 교과서로만으로 배울 수 없는 살아 있는 경제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말레이시아 교육부가 학교협동조합 운영을 장려하는 이유다.

Box Interview 
MRSM 타이핑은 말레이시아 타이핑 시에 있는 과학 기숙 학교다. 특이하게도 이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이 학교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약 600명의 전교생이 조합원인 학교협동조합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MRSM 타이핑 학생이자 이사회에 소속된 무함마드 탈하 빈 아미누딘(Muhammad Talhah Bin Aminudin)과 얘기를 나눴다.

MRSM 타이핑의 무함마드 탈하 빈 아미누딘(Muhammad Talhah Bin Aminudin)은 학교협동조합의 조합원이자 이사회의 구성원이다.

Q. 조합원과 이사회는 어떻게 구성되나요?
A. 전교생이 입학하자마자 학교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됩니다. 선생님들도 조합원입니다. 그리고 그중 1학년 10명과 선생님 5분이 이사회를 결성하지요.
  
Q. 출자금 외에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기도 하나요?
A. 국가가 주도해서 학교협동조합 운영을 장려하긴 하지만, 직접 주는 보조금은 없습니다. 금전 지원보다는 교육 지원을 많이 해줍니다. 예를 들어 앙카사가 재정 관리하는 법, 협동조합 조직을 운영하는 법 등에 대해 가르쳐주지요.
  
Q. 협동조합 운영 전반에 대한 교육은 어떻게 받나요?
A. 이사회 구성원들은 선배들로부터 교육을 받습니다. 전년도에 학교협동조합을 운영했던 2학년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제품 홍보 방법, 수익 관리 방법 등을 가르쳐줍니다. 선생님들은 따로 훈련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 프로그램에 참가하고요.
    
Q. 한국 학교협동조합을 보며 주목할 만한 점이라고 느낀 게 있나요?
A. 생협 매장이 작긴 하지만 주로 건강한 먹거리를 판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품들도 진열장에 무척 가지런히 배열돼 있더군요. 그리고 삼각산고 협동조합의 경우,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협동조합의 가치에 대해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던 게 인상 깊었습니다.
    
Q. 수익으로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A. 기본적으로 학교 협동조합을 위해 쓰이고, 일정 부분은 학교 운영비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수익의 10%는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돌려줍니다. 학생들이 바로 조합의 주주이므로, 배당금을 주주에게 나눠주는 건 당연하죠.
  
Q. MRSM 타이핑 학교 협동조합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점이 있나요?
A. 우리 학교 협동조합은 학교 자체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마 협동조합이 없었다면 학교가 지금의 모습만큼 자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학교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사실이 바로 자랑할 만한 점입니다.


학교 협동조합계의 루키, 한국

삼각산고 사회적협동조합 매점 내부

한국에는 2013년 구로구 영림중학교 학교협동조합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72개, 서울에는 24개의 학교 협동조합이 있다. 학생, 학부모, 교직원,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필요한 사업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한다. 매점, 창업 연계 사업, 방과 후 학교 등을 대표적인 예다. 특히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전국 최초로 학교협동조합지원센터를 운영 중이다.
  
학교협동조합전문가인 서울학교협동조합협의회 장이수 대표는 “학교협동조합의 목표는 학생 조합원들 대상으로 민주 시민에 대해 교육하고, 생활에 기반한 실제 경제를 가르치며,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것 등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프로그램을 주도했던 장 대표는 “이번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경제가 지속적으로 확산, 성장하기 위해선 ‘청소년 사회적경제인’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학교협동조합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확대하는 미래 인재 양성의 장을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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