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매캐너는 벨기에의 해방을 위해 2년간 영국 정보기관에서 일하며 독일군을 염탐했다. 결혼 전 이름은 마르타 마틸드 크나쾰트(Marthe Mathilde Cnockaert)이다.

“나는 여성이라 군사가 될 수 없었기에, 스파이가 되어 나라를 지켰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스파이 마르타 매케나 (Marthe McKenna)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한 말이다. 그는 독일 육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군인들이 흘리는 기밀 정보를 영국 정보기관에 넘겼다.

메케나는 1892년 10월 벨기에 웨스트로베크 시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겐트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도중 독일이 벨기에를 침범해서 그는 공부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독일군이 집을 불태워버린 탓에, 그와 가족은 루셀라르 시로 이사 갔다.

그곳 독일 육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중 매케나는 영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비밀 요원이 되라는 제안을 받았다. 뉴욕타임즈(NYT)는 그가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독일군을 몰아내고 싶다는 생각에 승낙했다고 전했다. 훗날 회고록에서 그는 “내가 사랑하는 이 땅에 들끓는 혐오스러운 기계들을 무찌르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1915년부터 약 2년간 스파이로 지내면서 매케나는 병원으로 이송된 연합군 포로들을 탈출시키고, 독일군의 움직임을 암호 메시지로 영국군에 전달하고, 심지어는 독일 측 기밀 정보를 얻기 위해 독일 병사로 변장했다. NYT는 “매케나의 간호술은 그가 간첩임을 숨기는데 완벽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매케나는 간호술과 다양한 언어 사용 능력을 인정받아 독일이 전쟁 공로자에게 수여하는 철십자 훈장(Iron Cross)까지 받았다.

간첩활동이 탄로 난 건 그가 독일 무기들이 비축된 곳을 알아내 폭파시킨 후였다. 독일군들이 폭파 장소에서 이니셜이 박힌 손목시계를 찾아 그 주인이 매케나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간첩 행위에 대한 처벌은 보통 사형이었지만, 매케나는 무공 훈장을 받은 간호사였기 때문에 처벌은 투옥으로 끝났다.

역사학자들은 마르타의 회고록을 그의 남편이 대필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종전 후, 매케나는 자신의 간첩 활동을 담은 회고록 ‘나는 스파이였다!(I Was a Spy!)’를 출간했다. 초판부터 20만 권이 팔렸으며, 책을 극찬하는 신문·잡지 기사들이 쏟아졌다. 당시 NYT는 책에 대해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흥분되고 아슬아슬하다”고 평했다.

회고록은 1933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됐으며, 매케나 부부는 이후 12권의 간첩 소설을 출간했다. 그 중 하나는 1937년 영화 ‘창을 든 스파이(Lancer Spy)’ 제작에도 영감을 줬다. 책과 영화들은 영국에서 매케나를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매케나의 마지막은 혼자였다. 남편은 1950년 다른 여자와 살기 위해 떠났고, 자식은 없었다. 매케나는 1966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야기는 영국에서 유명했지만 정작 고향 벨기에에서는 거의 잊어졌다. 2000년에 들어서야 회고록 ‘나는 간첩이었다!’가 벨기에의 3개 공식 언어 중 하나인 네덜란드어로 처음 번역됐다.

회고록의 많은 부분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역사학자 길버트 코게는 “몇몇 사건들은 함께 간첩활동을 하던 이모의 이야기도 섞여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NYT는 처칠의 말을 빌려 “모든 사건이 사실이라고 보증할 수는 없지만, 그의 삶, 모의, 모험에 대한 주된 기술은 의심할 여지없이 진실하다”고 전했다.

원문: https://www.nytimes.com/2018/09/12/obituaries/marthe-mckenna-overlooked.html
자료출처: http://inspirationalwomenofww1.blogspot.com/2014/01/marthe-mathilde-cnockaert-inspirational.html ,
https://www.history.com/news/10-spies-who-arent-household-n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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