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를 앞두고 연습실에서 안무를 맞춰보고 있는 걸그룹 '플로어스'

칼군무와 폭발적인 가창력, 조각 같은 외모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어설프다고 느낄는지도 모른다. 성북구 정릉동 지하 1층.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정면에 큰 거울이 붙여진 연습실 공간이 보인다. 바로 옆엔 기획사 대표가 머무는 사무공간이 있고 한켠에는 쉼터 공간인 작은 소파가 놓여있다. 이 모든 것이 그다지 넓지 않은 원룸 즉 하나의 방 안에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들에겐 꿈이 있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점점 나아지는 성장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드디어 국내 최초로 사회적기업이 길러낸 걸그룹이 등장한다. 사회의 아픔을 노래로 치유하겠다는 당찬 도전장을 내민 걸그룹 '플로어스'를 연습실에서 만났다. 

 

플로어스는 4인조 걸그룹이다. 왼쪽부터 정지송, 이수현,김진현,진혜정

       정지송, 이수현(예명: 수화), 김진현, 진혜정 4명은 모두 20대다. "너무 늦었다는 나이에 시작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들의 답은 쿨하다. "늦게 시작한 만큼 간절함이 있고 철이 들었다."

플로어스가 제작 중인 첫 앨범 주제는 ‘학교폭력’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 이들은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작사자에게 전달했다. 10대를 갓 벗어난 그들이 그때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수현(예명:수화)씨를 포함해 멤버 4인 모두 학교 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경험 있다고 털어놓았다.

수화: 제가 겪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요. 그 기억이 아직 남아있고 결국 전학을 갔어요. 제겐 아픈 기억입니다. 길거리에서 가방을 뒤집어엎고 돈이 있나 없나 추궁을 당했고 제 주변에 아이들이 오지 못하게 막기도 했어요. 선생님도 이런 사실을 알고 계셨을 텐데 모른척하셨죠. 엄마가 경찰을 부른다고 하니 그제서야 그 애 부모님이 사과했어요.

나머지 셋 모두 주변에서 친구들이 겪는 모습을 봤고 방관자로서만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는 마음이 그득했다.

혜정 : 지켜만 봤어요. 지금에라도 못 도와줘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요. 한 마디라도 말을 먼저 건네고 '괜찮니?'라고 물어봐 줬더라면 큰 힘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너는 알까? 다가올 내일이 두려워 잠 못 이루는 밤을..

내일 아침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이 맘을..

항상 묻고 싶었어.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내가 용기가 없어 달라질 수 없었던 건지

아무 일도 아닌 척, 아프지도 않은 척할 수밖에 없어 눈물만 나잖아...“

--- 수화씨가 작사자에게 건넨 ‘너에게 하고 싶은 말 ’ 중에서

 

플로어스 버스킹 공연(사진제공: 플로어스)

걸그룹 플로어스는 "20대들의 꿈에 대해, 현실에 처한 고민과 방황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싶다"며 "우리의 목소리로 노래하면 묵직하고 어려운 주제도 더 공감을 얻을 수 있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했다.

최초의 사회적기업이 배출한 걸그룹이라는 자부심도 강했다. 플로어스는 사회적기업 기획사인 엶엔터테인먼트(대표 이철우) 소속이다. 회사는 조금은 걱정이 될법한 미래에 대해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떨쳐내게 도와준다. 그 힘은 다름아닌 '신뢰'였다.

지송 : 다른 멤버들과 달리 전 중학교 때부터 기획사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어요. 표준 계약서를 쓴다고 해놓고 뒤단에 말도 안 되는 첨부 사항들이 많았어요. 레슨비라면서 6개월에 300만 원을 내라 했는데 어느 날 회사에 나가보니 연습실에 짐이 다 싸져 있는 거에요. 그때 알았죠. 사기구나 진작 나왔어야 하는 건데... .

이철우 대표와 플로어스. 멤버들은 "대표와 연습생이라는 수직관계가 아니라 격의 없이 지내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좋다"고 설명했다.

엶엔터테인먼트는 어떤 금전적인 요구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매주 보컬 트레이너와 안무가가 그들의 부족함을 메워주고 있었다. 세계 무대를 겨냥해 영어와 일어 등 외국어 공부도 착실히 해나가고 있다.

혜정 : 다른 회사랑 다르게 상업적이지 않게 보여 좋았어요. 다른 회사는 어떤 분야에 몇 명을 뽑는다. 나이, 키, 몸무게 딱 이렇게만 나와 있어요. 여긴 그보다 우린 어떤 회사이고 어떤 이상을 추구하는 지 공고문에 상세히 나와 있어 믿음이 갔어요. 1시간에 걸친 면접에도 어떤 분야에 가치를 두는지, 왜 노래를 하려고 하는지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수화 : 연습생 시절 예전 기획사에서 데뷔는 뒷전이고 행사를 자꾸 돌려 중간에 나왔어요. 데뷔조에 있던 다른 언니들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자주 입으라 해서 힘들어했고요.

엶엔터테인먼트는 성형을 지양한다. 외면에 치중하기보다 내공의 단단함을 길러간다. 노래를 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도록 수화를 배우는 것도 플로어스의 남다른 점이다.

넷 중 리더는 진현 씨다. 그는 사회복지와 심리학을 전공했다. 멤버들 사이에 사소한 것일지라도 갈등이 생기면 다같이 불러 놓고 대화로 풀어간다.

리더 진현

“ 매일 같이 연습 일지를 써요. 리더니까 동생들이 물어올 때마다 제가 잘 답변해줘야 하니까요. 사회복지를 전공한 저는 특히 아동에 관심이 많아 가정에서 빚어지고 있는 방임과 학대 문제도 다뤄보고 싶은 주제입니다.”

이때 동물병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혜정 씨가 옆에서 거든다.

“ 동물도 생명인데 강아지 공장은 없어져야 해요. 로봇이 아니잖아요. 그들도 누군가에겐 가족인데요. 더불어 점점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는 멸종 위기 동물을 주제로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을 해서 캠페인 펼쳤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플로어스는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에 좋은 가치들이 만개하였으면 좋겠다' 는 뜻을 담고 있다. 사회적기업들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을 노래로 풀어내 전파력을 높이겠다는 미션을 품고 있다.

그들은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평창 동계 올림픽때 강릉에서 버스킹 공연도 했고 젊음의 거리 홍대 앞 등지에서 매월 2~3회 공연을 연다. 이달에는 뮤직비디오 제작과 10월에는 쇼케이스 준비 일정이 잡혀있다. 데뷔는 11월로 예정돼 있다.

'노래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플로어스 멤버 4인

그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힘들 때마다 음악을 듣고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고.. 그 느낌 그대로 자신들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걸그룹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 다들 늦었다고 하는 나이에 시작해 여기까지 왔어요. 꼭 성공하고 싶어요. 뭔가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할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가 해냈듯이 당신도 할 수 있다고요...”

사진. 이우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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