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Melitta Bentz는 남편인 휴고와 1897년에 만났다. 그녀는 아들의 학교 수첩에있는 종이를 사용해 커피 필터를 발명했다. 사진=뉴욕타임즈

#커피 필터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자. 일단 ‘핸드드립’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를 즐길 수 없다. 또한 커피를 다 마시고 난 뒤 커피포트와 컵에 커피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어있어 설거지가 오래 걸린다.

찌꺼기와 음료를 분리하지 못해 같은 잔에 넣어 마셔야 했던 시절, 독일 여성 밀리타 벤츠(Melitta Bentz)는 매일 아침 주방에서 이 불편함을 해소할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했다. 하루는 아들의 학교 공책에서 압지를 뜯어내 미리 구멍을 뚫어놓은 놋쇠 통에 붙인 뒤, 그 위에 굵게 간 원두를 올려놓고 아래에는 컵을 받친 상태로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음료는 종이를 통해 컵 속으로 뚝뚝 떨어졌다. 사용한 압지는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됐기 때문에 더 이상 커피 찌꺼기와 씨름할 필요가 없었다. 커피 필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밀리타는 1873년 1월 31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그는 휴고 벤츠와 결혼해 3명의 아이를 가졌다. 커피 필터는 그가 가정주부로 지내던 중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발명해낸 제품이다.

1908년 6월 베를린 임페리얼 특허사무소로부터 커피 필터의 전매특허를 인가받은 후, 벤츠 가족은 집에서 ‘M. Bentz’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손수레를 이용해 커피 필터를 배달했고, 상점 주인이었던 남편은 쇼윈도에서 필터 사용법 시범을 보였다. 훗날 회사 이름은 ‘밀리타 그룹(Melitta Group)’이 된다.

1909년 ‘라이프치히 산업 박람회’에서 제품을 선보인 벤츠 부부는 주방용품 가게 주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곧 커피 필터는 대중적 인기를 끌었으며, 1912년 회사 직원은 8명으로 늘었다. 공장은 계속 커져 드레스덴을 벗어나 독일 북서부 도시 민덴에 자리 잡았다. 뉴욕타임즈는 밀리타 그룹이 아직까지도 이 공장을 사용한다고 전했다.

밀리타는 사내 복지에도 힘썼다. 직원들의 주5일 근무제와, 최대 3주 휴가, 그리고 크리스마스 상여금 제도 등을 도입해 직원들이 일과 개인 생활 간 균형을 맞추게 했다. 또한 그가 만든 ‘밀리타 구호단체(Melitta Aid)’는 지금도 사내 종업원들을 위한 보장기금 역할을 한다. 밀리타 그룹 대변인 본 홀른 씨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직원들은 밀리타 벤츠가 회사의 어머니로서 해냈던 뛰어난 역할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밀리타는 1950년 6월 29일,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밀리타 그룹은 벤츠 부부의 손자들이 운영하며, 4000명 이상을 고용하는 국제 기업이다. 커피 필터 외에도 원두, 커피 기계, 진공청소기 먼지 필터 등을 생산하며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원문: https://www.nytimes.com/2018/09/05/obituaries/melitta-bentz-overlooked.html

자료출처: 밀리타 그룹 웹사이트, A Woman’s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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