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책을 하나 냈어요. 제목이 ‘일이 모두의 놀이가 되게 하라’입니다. 이 제목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에서 따온 겁니다. “먹고사는 것이 그대의 직업이 되게 하지 마라, 그대의 놀이가 되게 하라.” 

이 제목 보고 어떤 분이 그러대요. 

“일을 즐겨라, 일을 놀이처럼 하라 그러는데 그건 하기 좋은 말이다. 모든 건 기본이 중요하다. 일을 배울 때는 힘들고 고통스럽게 배워야 한다. 힘들고 고통스럽게 배우고 나서야 일을 즐길 수 있다.” 

맞는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내가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합니다. 그럼 제목을 왜 이렇게 정했냐? ‘일은 힘들게 배워라!’ ‘일이 그대의 눈물이 되게 하라’ 이렇게 제목을 정하면 책이 팔리겠어요?

그리고 일을 억지로 힘들게 하면 자기가 소모돼서 오래 못해요. 스티브 잡스도 그랬죠. “인생에 가장 큰 낭비는 뭐냐?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일을 하는 데 보내는 시간”이라고 했죠. 그래서 인생에 성공하려면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거나 둘 중에 하나에요. 

"도파민이 분비되는 열정의 18개월은 남녀 사이에 미칠 듯 한 감정을 샘솟게 한다. 계속 도파민이 분비되면 사람의 심장에 무리가 온다. 수명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도파민의 분비를 중단시킨다.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고 나면 그 대신 옥시토신이 생성된다. 애착과 안정감을 강화시켜주는 호르몬이다."
일을 시작할 때는 도파민이 분비되어야 프로페셔널이 되고,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옥시토신이 분비되어야 합니다. 미친 듯이 집중해야 제대로 배울 수 있고, 배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실패와 실수를 견딜 수 있기 땜에 그래요. 사랑하는 감정이 감정노동인가요? 아니잖아요. 서로의 자아를 상승시켜주는 관계죠. 일도 그래요. 나는 교육의 본질이 사랑하는 일을 찾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일,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사랑하는 일을 하거나, 하는 일을 사랑하거나, 서로 존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랑하는 일을 하면 그 일이 나를 상승시켜 줍니다. 노동은 경제 행위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활동 시간의 대부분,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문제는 조직이죠. 조직이 마음으로 일하는 공간이 아니면 그곳은 환멸의 공간이 됩니다. 대체 무엇이 직장생활을 무덤으로 만드는 것일까요? 외적 원인은 변명하게 하고, 억압적인 조직은 무덤으로 만듭니다. 내적 원인은 일과 사랑, 일과 취미의 분리가 무덤을 만듭니다.

어떻게 하면 직장이 사랑의 무덤이 되고, 조직이 신뢰의 무덤이 되는 비극을 피할 수 있을까요? 

핵심은 일을 대하는 가치 판단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일을 하거나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 
신뢰할 만한 사람과 일을 하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을 신뢰할 것! 
구성원 간의 옥시토신 분비가 충분할 정도의 적당한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을 유지할 것! 
인간에 대한 존중을 우선으로 하는 일자리, 사람을 성장시켜 주는 직장, 행복한 일, 행복한 경제를 추구하는 새로운 흐름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소셜벤쳐,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그런 도전의 대표적인 흐름입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