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 중, 남반구 연합군은 일본 전투기를 탐지해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유럽 전선에 비해 전파 탐지기 활용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때 호주 정부 연구기관에 투입된 여성, 루비 페인-스콧(Ruby Payne-Scott)은 어두운 밤이나 폭풍 속에서도 전파로 멀리 있는 일본 전투기를 찾아내는 데 성공해 연합군 승리에 기여했다.
페인-스콧은 여성으로서는 세계에서 3번째로 물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이다. 그는 1912년 5월 28일 호주 남동부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 태어나 명문 공립학교인 시드니 여자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당시에는 여성은 물론 남성 물리학자도 전공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에 페인-스콧은 교편을 잡았다.
교사직을 그만 두고, 전자제품 회사에 취직해 일하던 중 전쟁이 터졌다.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호주 군대는 물리학자가 필요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전투현장으로 나간 상황이었다. 페인-스콧은 국가 연구기관인 호주연방과학원에 지원해 전파 물리학 분야(radio physics)의 연구원이 될 수 있었다.
1944년 연합군 승리 후 그와 동료들이 연구를 적용할 다른 분야를 찾던 중,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헤이가 기밀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신호왜곡이나 항공기뿐만 아니라 태양에서도 전파 잡음이 생긴다는 가설을 담았다. 몇몇 연합군 측 과학자들 사이에서만 돌던 내용이었다. 시드니 대학교의 클레어 후커 보건의료 인문학 부교수에 의하면 당시 학계는 지구 밖 우주 공간에도 전파를 뿜어내는 물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NYT는 “헤이의 보고서는 페인-스콧이 본격적으로 전파 천문학 영역에 뛰어들게 한 계기가 됐다”고 보도했다. 이후 그는 동료들과 함께 여러 유형의 태양 폭발(태양이 뿜는 전파 에너지가 급증하는 현상)을 발견했으며, 파동 형성 과정을 확대해 알아볼 수 있게 돕는 기계를 개발했다.
페인-스콧의 자서전 작가이자 천문학자인 밀러 고스는 “그의 상사 포지(J.L. Pawsey)는 페인-스콧이 회의 자리에 없으면 종종 최종 결정을 미뤄버릴 정도로 그의 경험과 판단을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당시 공직에 종사하는 여성은 결혼을 하면 일을 그만둬야 했다. 페인-스콧의 동료들은 그가 꼭 필요한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의 결혼 사실을 6년 동안 숨겨줬다. 하지만 1950년 정부 규제기관이 결혼 사실을 알아냈고, 그가 사직하도록 압박했다.
이후 호주연방과학원은 페인-스콧을 계약직 신분으로 다시 채용했지만, 그는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던 1년 뒤 떠났다. 두 아이들을 각각 통계학자와 예술가로 키워낸 그는 1981년 5월 25일, 68세의 나이에 치매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NYT는 페인-스콧에 대해 “전파 천문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분야의 기반을 다지는데 기여했다(helped lay the foundation for a new field of science called radio astronomy)"며 "결혼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균등한 고용 기회와 보상을 박탈당한 사람(as a married woman she was denied equal employment status and compensation)”이라고 전했다.
사진. 뉴욕타임즈
원문: https://www.nytimes.com/2018/08/29/obituaries/ruby-payne-scott-overlooke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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