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연정 청년허브 센터장

서울의 청년문제를 고민하며 2013년 개소한 ‘서울시 청년허브(이하 청년허브)'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청년허브는 서울시 청년기본조례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연세대학교가 위탁법인이다. 청년허브는 지난 5년 간 ‘청년 위기는 사회 위기’라는 화두를 우리 사회에 끄집어냈다. 서울에 청년정책이 부재하다며 청년을 사회 한 주체로 두고 청년문제를 고민하는 메신저이자 플랫폼 역할을 자임했다. 지난 5년간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청년허브 2기가 시작됐다. 그 중심에 지난해 12월 취임한 안연정 청년허브 센터장이 있다.

그는 2004년 10대들을 위한 문화교육 비영리단체로 출발해 2010년 사회적기업이 된 ‘문화로놀이짱’ 대표 출신이다.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문화로놀이짱’은 폐목재 업사이클링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지금은 문화비축기지로 새 단장한 마포 석유비축기지 내 유휴공간을 ‘명랑에너지발전소'(폐목재들의 공공창고와 공동작업장)에서 '비빌기지'(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10여개 팀들과 함께 ‘소유에서 공유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일상의 필요를 스스로 충족하는 삶을 실천)까지 조성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문화로놀이짱과 비빌기지는 8년 넘게 한 공간을 점유해 유휴지 운동을 펼친 국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사회적기업·도시재생·청년·지역·사회혁신 등 다양한 어젠더가 공존했던 곳으로 지금도 국내외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는다.

지역문화예술 활동가, 사회적기업가로 10년 넘게 활동해온 그의 이력이 서울의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청년허브와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안 센터장은 "지금의 청년문제는 워낙 복잡다단하기에 청년뿐 아니라 다른 세대 및 지역과의 교류와 커뮤니티를 통해 동시대가 함께 지혜를 모으고 해결해가야 한다”며 “청년문제를 고민하는 중간지원조직인 청년허브의 역할 또한 이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비빌기지 등에서 10여 년 간 다양한 세대, 지역과 교류하며 해법을 찾아갔던 경험은 청년허브 운영에 중요한 자산이 될 거라는 생각이다. 그가 청년허브로 자리를 옮긴 이유가 조금 뚜렷해지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서울시 청년허브 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8개월을 보낸 안 센터장에게 청년허브 2기 구상을 들었다.

 

- 지난해 12월 취임했으니 8개월 됐다. 최근 청년허브 공간에 사람도 많아지고 밖으로 표출되는 메시지도 눈에 띈다.

변화를 알아봐주니 반갑다. 지난해 12월 1일 취임 후 2기 방향 수립하고 조직 정비하느라 바빴다. 청년허브 공간도 새 단장을 했다. 그 과정에서 매일매일 공간을 돌봤다. 공간의 활력은 돌보는 만큼 생명력이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 2기의 시작을 여는 센터장이 되었다. 2기의 방향을 잡는데 앞서 1기의 성과가 바탕이 되었을 것 같다. 1기를 진단해본다면.

1기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한 번도 호명된 적이 없었던 ‘청년문제’를 거론했다. 이전까지 ‘청년’의 개념은 다분히 추상적인 세대이자 긍정적인 메시지의 의미로만 존재했던 이름이었다. 2013년 시작한 청년허브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에 처해있는지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사자들이 문제 해결의 전면에 등장 할 수 있는 구조와 경로들을 만들고 지원했다. 지난 1기 동안 1,500여 팀의 청년단체들을 직접 만났다. 청년허브에서 시작한 사업들이 현재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청년활동지원센터’, ‘무중력지대’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청년허브가 운영하는 공유공간

 

- 성과와 더불어 한계는 무엇이라 보나. 서울의 보편적인 청년문제를 다루지는 못한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걸 ‘섬’ 같다고 표현하는 이도 있었는데.

공감한다. 청년들의 문제를 청년 당사자에 집중해서 풀어가다 보니 확산이나 공감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청년 지원이 자칫 청년을 사회적으로 고립된 세대처럼 보이도록 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이 점은 내가 밖에서 바라 본 청년허브의 한계였다.

반면 청년허브에 직접 들어와서 보니 청년허브가 그렇게 큰 조직이 아님에도 서울의 전반 청년 정책 및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것 만해도 벅찼을 것 같다. 즉, 선도적인 아젠다 생산과 사업 실행을 동시에 했던 것인데, 이제 세분화된 지원조직들이 있으니 다시 다음 단계를 위한 아젠다 생산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본다.

 

- 앞서 얘기한 1기 성과와 과제를 바탕으로 잡은 2기의 방향은.

1기 청년허브가 ‘청년문제’ 자체에 집중했다면, 2기는 그 문제들을 확장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첫 번째 확장은 청년문제를 특정 세대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이전과 이후 세대로 확장하는 것이다. 청년이 될 세대와 이미 청년을 지난 세대, 모두 청년 문제에 공감하고 이해하고, 지지하고 응원해야 한다.

두 번째 확장은 지역의 확장이다. 청년문제가 세대적으로 고립되면 안 된다. 청년허브는 서울시 산하 단체지만, 서울의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서울에만 한정하지 않길 바란다. 청년들이 자기 삶의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 곧 ‘서울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라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간·아시아 도시와의 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다. 청년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사실, 그래야만 할 정도로 절박하다.

세 번째 확장은 ‘투자’이다. 1기 서울의 청년정책이 ‘보장’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이제 청년허브는 ‘생산력’을 키워드로 한 청년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활동들을 인큐베이팅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도시의 활력이자 성장 동력이 되는 청년들이, 십년 후 서울의 미래를 상상하는 기반을 만들겠다. 일자리와 생존이란 프레임에서 벗어나 생활과 문화, 그리고 자산을 공유하고 만들어가는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청년허브 1-2기 비전 및 주요사업 (자료제공. 청년허브)

 

- 실제 어떤 사업들로 구현되는 건가.

앞으로 가정, 직장 등 전통적인 커뮤니티를 넘어 제3의 사회적 관계를 맺는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가 활성화 될 거라고 본다. 청년허브는 지난 5년 간 1500여팀의 커뮤니티들을 지원했다.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우정을 나누고, 동료를 만들고,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을 공유하며 숙련하는 커뮤니티들이 늘어나고 활성화될 것이다. 이런 커뮤니티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연구하고 좋은 모델을 만들어가려한다.

‘청년업’이라는 직업실험을 한다. 4차 산업혁명, 저성장시대, 취업난, 양극화 등을 창의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시도와 실험을 지원하려한다. 올해는 가업을 잇거나, 부업이 모여 일이 된 사례, 덕질이 일이되게 하는 실험들을 인큐베이팅한다.

국내외 교류 사업도 펼친다. 국내의 경우 ‘서울을 떠나 살 수 있을까’를 화두로 다른 지역과 교류할 생각이다. 보통 지역으로 가려 할 때 현실적인 고민들을 많이 한다. 도태되고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 또는 연고가 없다는 고민들이다. 청년허브가 여러 지역에 그런 인적네트워크를 시스템화 시킨다면 어떨까. 청년들이 지역살이 경험을 통해 기존 경로와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간다. 서울의 청년들과 지역살이를 함께 할 지역 커뮤니티들을 지원하여 만나고, 함께 일하고, 인연을 만들어 가고, 새로운 형태의 삶을 꿈꾸는 교류사업을 할 생각이다.

아시아 교류를 추진한다. 도시와 청년을 주제로 활동하는 서울을 포함한 아시아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준비 중이다. 이제 도시문제는 글로벌 이슈가 되어버렸고, 아시아가 연대하여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글로벌한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연대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러한 활동들이 서울로 모일 수 있도록 하는 단계별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30년 서울’을 주제로 한 N개의 공론장을 연다. 이 공론의 장에서는 지속가능한 서울의 비전을 만드는 공론의 장도 있고, 개인의 삶의 아젠다가 사회적 아젠다로 연결, 확장되는 공론의 장도 있을 것이다.

 

- 과제가 많은데, 본인의 과거 경험(지역문화예술 활동가, 사회적기업가)이 앞서 얘기한 사업들을 구현하는데 어떤 시너지를 낼 거라 보나.

나는 이전에 ‘청년’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당사자였고, 지금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들을 지원할 수 있는 세대가 되었다. 나는 청년들에게 사회적 지지와 응원이 얼마나 절실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8년 간 지냈던 석유비축기지 내 ‘문화로놀이짱’과 ‘비빌기지’는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문화예술, 민관협력, 지역협력, 사회혁신, 주민자치 등 다양한 영역의 경험이 함축된 공간이었다. 이렇게 ‘하나의 공간’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축적’이란 것을 배웠다. 그 공간은 다음세대로 이어지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갔는데, 나는 내가 ‘성공한 활동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모든 활동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활동을 전개하면서 스스로 선택하고 주도적으로 결정했다.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티의 힘, 생산력, 일과 삶의 조화, 자치력과 시민력, 자립과 지속가능성이란 키워드가 나의 변화와 성장 동력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청년들이 이런 경험들을 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에서 살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의미 있는 자산이 되게 할 것인지, 청년허브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내가 풀어야할 숙제이다.

청년허브에서 진행한 청년참 반상회

 

- 개인적으로 5년 후 청년허브를 통한 도시 서울의 미래를 그려본다면.

청년허브를 통해 만나 본 청년들은 경쟁과 각자도생의 사회를 거부하고 커뮤니티 내에서 삶의 다양한 경로들을 만들고자 했다. 경제·문화적 격차가 점점 커지고 취업난 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한다. 반면 실패하면 끝이라는 공포가 청년들을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나는 5년 후 도시 서울의 청년들이 ‘실패하면 끝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도시가 되었음 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 5년 간 청년허브는 안전한 실패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시도와 실험을 적극적으로 지원, 육성할 것이다.

앞으로 청년과 관련한 지표는 점점 더 암울해지겠지만 청년허브가 만나는 서울의 청년들이 우리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받고 활력을 만들어내어 도시 서울의 미래, 나의 미래가 되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청년허브가 생긴 지 이제 5년이 지났다. 2기,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이 5년의 결과가 지금 당장 모든 청년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고 본다. 당연한 얘기인데, 주변에서 보면 벌써부터 ‘결과’에 대해 조급해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프랑스에 미씨옹 로칼이라는 조직이 있다. 청년들의 일자리와 자율성을 목표로 1982년에 행정 명령을 기반으로 출범됐고, 현재는 프랑스 전역에 400개가 넘는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가적 단위의 네트워크이다. 미씨옹 로칼이 출범될 당시, 그들은 이 조직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일시적’인 것이 2018년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청년문제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이제 5년이 지났을 뿐이다.

 

사진제공. 서울시 청년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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