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인 민지(가명)는 지난해까지 한 번도 학원에 다닌 적 없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 혼자 공부해야 하는 민지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가정 형편 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민지도 공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민지가 사는 동네인 중랑구 신내동에 새로 문을 연 ‘잉쿱아이학원’이 민지에게 무료 수업을 제공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소외계층 영어교육 무료로 제공하는 사회공헌형 학원

잉쿱아이학원은 국내 최초 사회공헌형 학원을 표방하며 지난 4월 중랑구 신내동에 문을 열었다. 기존의 학원은 과목당 10만~20만 원 내외의 학원비를 내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공짜 강의’를 해준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원 문턱을 넘기 힘든 학생들이 대상이다.

잉쿱아이학원은 국내 최초 사회공헌형 학원을 표방한다. 사진 왼쪽부터 김영정 잉쿱영어교육협동조합 이사, 잉쿱아이학원 센터장, 안미하 이사장, 조경현 교육담당 이사.

한창희 잉쿱아이학원 센터장은 “영어, 국어,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일반 학원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일주일 중 3일은 일반 학생들을, 나머지 2일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을 가르친다”며 기존 학원과 차이를 설명했다.

요일을 나눈 건 저소득층 학생 상당수가 맞춤학습이 필요해서다. 학생 선발은 주로 중랑구 교육센터와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추천받고 학원에서 최종 면담 후 지원 대상을 결정한다. 한 센터장은 “성적이 좋지 않아도 학습 동기나 열의가 높은 학생을 위주로 선발한다”고 말했다.

개원 초기라 무료교육을 받는 수강생은 현재 한 명이다. 선발한 학생과 직접 1:1 영어 교습을 진행하는 한 센터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이라고 해서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만 마음의 상처가 있는 경우가 많아 교육내용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마음도 함께 어루만져 주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엄마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시작한 잉쿱은 2012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후 지역아동센터 등 영어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에게 무료교육을 제공해왔다.

 

원장제 없애고 강사 일자리, 배려계층 무료교육,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 마련

잉쿱아이학원은 잉쿱영어교육협동조합(이하 잉쿱)이 운영한다. 잉쿱은 2012년 설립됐다. 10년 이상 미국에서 살다 온 엄마들과 영어교사 출신 경력단절 여성들이 영어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재능기부를 해오다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2012년 12월에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초기에는 잉쿱의 활동에 공감하는 공공기관, 기업들의 펀딩이나 개인 후원으로 사업을 유지했다. 소셜벤처파트너스서울 투자 협력처 선정,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주최 크라우드펀딩대회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상 수상, 현대자동차 정무구재단의 H-온드림 펠러우 선정 등 잉쿱의 미션에 공감하는 곳들이 늘면서 수상과 지원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원사업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다. 무료 강의를 요청하는 곳은 늘어갔고, 영어강사를 지원하는 이도 줄을 이었다. 이를 뒷받침할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이 절실했다.

중랑구 신내동에 1호점을 낸 잉쿱아이학원 내부

잉쿱아이학원은 그런 고민에서 탄생했다. 실력있는 강사들에게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에게는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기존 사설학원의 시스템을 탈피하는 공익학원 모델을 고민했다. 그 시작은 원장 체계를 없애는 것부터다.

안미하 잉쿱영어교육협동조합 이사장은 “일반 학원은 원장이 수익금의 많은 부분을 가져가는 구조”라며 “우리는 협동조합에 맞게 따로 원장을 두지 않고, 수익금을 엄마 강사들의 안정적인 고용과 저소득층 무료 교육, 법인의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 마련에 재분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잉쿱아이학원이 별도의 외부 지원 없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무료교육이 가능한 것도 이 같은 수익 분배 철학 덕이다.

 

차별 없는 교육 위해 제2, 3의 잉쿱아이학원 계획

잉쿱아이학원 성공의 관건은 ‘강사들의 전문성’이라는 게 잉쿱의 고민이다. 무료교육이라 해서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허투루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 잉쿱은 1년에 한 번 영어강사 육성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강사 양성에 힘을 쏟는다. 잉쿱의 경영진 또한 베테랑 강사들로만 구성되었다. 15년 간 미국에 체류한 안미하 이사장은 미국의 시니어아카데미에서 오랫동안 자원봉사교육을 맡았고 한국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장본인이다. 김영정 이사는 국내에서 교육학을, 영국에서 관광학을 각각 전공하고 영어교육회사에서 강사를 거쳐 지국장까지 역임한 교육 전문가다.

잉쿱아이학원의 한창희 센터장 또한 20년 간 유명학원 운영으로 잔뼈가 굵은 전문가다. 평소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육에 관심이 많던 한 센터장은 우연히 지하철에서 본 협동조합 광고에 공감해 영어 무료교육을 제공하는 잉쿱에 문을 두드렸다. 학원 운영자를 찾던 잉쿱에게는 천군만마가 나타난 것. 한 센터장은 곧장 1호점 개원에 결합했다.

잉쿱영어교육협동조합은 전문성 있는 강사 양성을 위해 매년 영어강사 육성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잉쿱아이학원은 지난 4월 개원 후 현재 10명의 일반 학생과 1명의 무료교육 학생이 등록해 수업을 받고 있다. 개원 초기라 과제도 많다. 조경현 교육담당 이사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무료로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상처를 받거나, 학생들 간 분리가 역차별을 불러올 수 있기에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잉쿱은 1호점 운영이 안정되는 데로 제2, 제3의 잉쿱아이학원도 계획 중이다. 더불어 지난해부터 메르세데스-벤츠 지원으로  3년 간 진행하는 중장기 영어지원프로젝트를 통해 소외지역의 6개 기관(4개 학교, 2개 보육원)에 영어강사 파견사업도 지속할 예정이다.

“지난 6년 간 수백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영어교육을 해보니 옆에서 조금만 도와줘도 학교 교육을 따라가고 실력이 확 느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잉쿱아이학원이 잘 되어서 우리 사회가 책임지지 못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차별 없는 꿈, 공정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잉쿱의 노력은 이제 막 첫 걸음을 떼었을 뿐이다.

 

사진제공. 잉쿱영어교육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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