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협동조합(생협)에 가입된 국내 가구 수가 100만 세대를 넘어선지 오래다. 생협은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친환경 유기농 제품을 유통하는 등 자원의 순환을 주요 철학으로 생활 속에서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생협에 비상이 걸렸다. 플라스틱 쓰레기,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친환경 소비에도 무심코 포함된 쓰레기나 환경문제가 부각되고 있어서다. 생명 가치 존중을 삶속에서 실현하겠다는 생협이 환경문제를 소홀히 다룬 것 아니냐는 자성이다. 대안 마련을 위한 생협의 고민과 논의를 들어본다.

“생협 너 마저···” 쓰레기 만드는 과대포장에 뿔난 조합원들
# 강원도 홍천에 사는 이파람 씨는 최근 한살림 웹사이트에서 주문한 두유 한 박스를 배송 받고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박스 안에는 160ml씩 비닐용기에 소포장된 두유가 5개 묶음으로 다시 비닐포장 돼있다. 기후변화 등으로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컸던 이 씨는 지난 7월 2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지역 맘카페를 통해 ‘마이크로 시위(일상생활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며 소소하게 진행하는 시위 행위)’를 제안했다. 이 씨가 제안한 시위 방식은 생협 물품에서 나온 포장재들 중 재활용이 어려운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모아 메시지와 함께 생협 본사로 보내는 것이었다. 이 씨는 “지구를 살리고 생명을 살린다는 생협 조차 편리함의 가치를 따라가는 것 같아 아쉽다”며 “많은 조합원들이 ‘불편해도 괜찮아’를 외치고 있기에 같이 해법을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생협 포장재가 과하다고 문제제기를 한 이파람 씨가 받은 두유 박스(사진제공. 이파람)

최근 생협에서 판매하는 물품 포장재가 재활용 되지 않고 과도한 쓰레기를 만든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태생 자체가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친환경 유기농제품을 유통하는 등 자원 순환을 주요한 조직 철학으로 내건 곳이 생협인만큼 물품 포장에 환경적인 요소를 더 고려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조합원들의 고민이다.

아이쿱생협 한 조합원은 “생협 물건의 포장재도 대부분 비닐, 플라스틱이라 장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며 “지구에게 미안해서 한두 번 더 쓰고 버리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두레생협 조합원은 웹사이트에 “지금 생협은 친환경적인 상품을 친환경적이지 않은 포장에 담아 파는 기형적인 모습”이라며 “당장 전면적인 전환은 어렵더라도 할 수 있는 품목을 조금씩 늘려 가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포장재 문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환경문제에 대해 생협들이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실천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누구보다도 생협이 정기적으로 포장지 없고 쓰레기 없는 동네장터를 열었으면 좋겠어요. 생협이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과감한 실험들이 아닐까 해요.” -생협 조합원 조 모씨-

생협들 “환경 고려한 포장재, 자원순환 캠페인 등...근본적인 변화 필요”

조합원들의 이러한 문제제기에 생협들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정규호 한살림 정책기획팀장은 “그동안 생협들이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함께 사는 생명세상을 만들고 생활양식을 바꾸자고 조합원들에게 얘기해왔음에도 정말 중요한 문제를 그동안 간과해왔다”며 “편리함만을 추구하던 인류에게 자연이 주는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연합회, 생산자, 조합원 모두 이 부분에 대해 각성하고 함께 지혜를 모아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오귀복 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 상무도 “생협은 근본적으로 친환경 유기농을 위해 시작된 곳이다”며 “소비로 끝나지 않고 생산부터 유통, 소비까지 자원이 순환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관점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생협들은 이전부터 자원순환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벌여왔다. 사진은 아이쿱생협이 진행한 바디버든 줄이기 캠페인

생협들은 일반 업체들에 비해 자원순환에 대한 관심이 일찍부터 높았다. 최현호 두레생협 상무는 "생협들이 장바구니 사용 권장, 매장 내 비닐 사용 자제, 빈병 재사용 운동 등 환경을 위한 생활실천운동을 꾸준히 해왔고, 환경에 영향을 덜 미치는 물품 포장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환경문제가 불거지면서 작은 실천을 넘어 조합원 인식개선, 포장재 전면 개선, 정부 정책 개선 요구 등을 통해 자원순환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자구책 마련에 적극 나서겠다는 분위기다.

아이쿱생협은 생협 내부에서부터 자원순환 구조를 만들고 미세플라스틱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제품 공급을 두고 장기 계획을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세부적으로는 우유곽 수거, 페트 마개 모으기 운동을 페트병 수거까지 확장하는 캠페인을 벌인다. 특히 2017년부터 시작한 ‘바디버든 줄이기 캠페인(생활 속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하고, 화학물질을 꼼꼼하게 따져서 생활하는 캠페인_’은 현재 967명의 조합원이 참여했고 앞으로도 지속할 방침이다.

한살림은 빈병 재사용 운동을 오래전부터 추진해왔다.

한살림은 기존에 추진하는 빈병 재사용 운동을 더 체계화하고 확산한다. 또한 자원순환의 날(9월 6일)을 맞아 캠페인, 토론회 등 자원순환 주간행사를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더 폭넓은 조합원 의견수렴과 공감형성을 위해 200명 규모의 ‘자원순환 열린 정책토론회’를 진행한다.

두레생협은 지난 6월 포장 저감화 TF를 구성하고 플라스틱 포장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포장 부피 저감화, 포장디자인개선 등이 그것이다. 또한 조합원 스스로가 착한자원순환 생활실천운동에 함께할 수 있도록 캠페인화 한다.

두레생협은 몇몇 지역에서 벌크 시범판매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은 두레생협 성산매장
조합원-생산자와 적극 소통·생협 넘어 사회적경제 연대로 해법 찾아가야

생협이 적극적인 행보를 하기에 어려운 이유는 있다. 우선 현재 국내법상 식품 표시, 품질 유지 등을 위해 물품 포장이 필수인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가공식품과 생활용품은 현행법상 포장을 없애는 것이 거의 어렵고, 축산물, 수산물 또한 식품안전과 품질 유지를 위해서는 포장이 꼭 필요하다.

가구 세대의 변화가 곧 소비 패턴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는데 생협이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오 상무는 “사회가 1인 가구, 소가구, 대도시 중심으로 변하고 있지만 생협은 다인 가구, 집밥 중심의 포장이 많다”며 “과대 포장 이면에 사회환경의 변화가 있음을 인식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 변화 등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결국 소비자-생산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내부 소통을 통한 인식 개선이 우선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서순현 울림두레생협 팀장은 “1인 가구, 맞벌이 등의 증가로 소포장, 간편식에 대한 조합원 요구가 늘어나면서 포장재가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며 조합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함을 지적했다.

조합원 이파람 씨는 “소비자들도 당장 바꾸자는 게 아니라 논의 과정에 조합원이 함께 참여하는 등 생활협동조합의 일원으로서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다양한 경험이 모이다 보면 혁신이 이루어질지도 모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포장재는 물건을 생산하는 생산지, 비용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최 상무는 “생산지에서도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포장재에 대한 고민이 많다”며 “다만 비용, 시간 등의 어려움이 있기에 생산단계부터 어떻게 할 건지 서로가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소비자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소통과 연대가 필요하다. 한살림에서 진행한 '자원순환 정책 간담회'

더불어 협동조합이 가지는 강점인 ‘소통’, ‘연대’가 조합원-생산자를 넘어 더 다양한 조직들과의 연대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팀장은 생협을 넘어 사회적경제까지 폭 넓은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활용에 대한 정부 정책이 없는 게 아니라 그게 시장에서 돈이 되느냐 아니냐로 보는 현실이다. 이참에 정부 정책을 다듬어 가는데 사회적경제 영역의 연대가 필요하다.”

오 상무는 “포장재 문제는 정책·산업적 분석과 접근이 필요하기에 당장 해결하기 보다는 소비자들의 자각과 인식변화를 통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두레생협, 아이쿱생협, 한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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