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에게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으로 잘 알려진 중국 전사 화목란(花木蘭). 그의 설화를 읽으며 자신의 이름도 역사책에 남기를 꿈꾼 당찬 중국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31세의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훗날 중국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로 불린다.
추근(秋瑾)은 청나라 말기인 1875년 11월 8일, 푸젠성 샤먼시의 부유한 관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6세 때부터 오빠와 함께 가정교사로부터 서사를 배우는 등 학문을 익혔다. 또한 어머니 단씨는 당시 여성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잘 오지 않던 승마와 검술 등을 딸이 익히도록 허락했다.
추근은 자라면서 여성이 처한 현실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7세에 울면서 전족(纏足, 여자아이의 발을 묶어 성장하지 못하게 했던 중국 풍습)을 거부했지만 강제로 할 수밖에 없었고, 원치 않던 정략 결혼도 했다. 남편은 중국 후난성 동부 도시 샹탄의 부잣집 아들이었고, 둘 사이에 두 자녀가 있었지만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추근은 결혼을 후회하며 “그 남자는 차라리 동물만 못하다” “나에 대한 태도는 노예보다 못한 대우였다” “내가 꼭 어떤 사람의 아내여야만 된다는 법이 있는가” 등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오빠에게 보냈다.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 등에 대해 각종 연설문과 시에 담기도 했다. 뉴욕타임즈(NYT)는 추근이 “청나라의 숨 막히는 성역할에 대해 시를 쓰곤 했다”며 그의 시 중 “내 몸은 남성들과 어울리지 못하지만, 내 마음은 남성의 것보다 훨씬 용감하다”라는 구절을 인용해 보도했다.
1903년 관직을 얻은 남편을 따라 베이징으로 떠난 후 그는 사회 문제에 이전보다 더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당시 청나라 정부는 내부 관료들의 부패와 외세 압박으로 쇠퇴하는 중이었다. 남편이 관직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돈으로 매수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추근은 가부장적 권위주의·허위의식과 당시 공직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자진과 같은 생각을 가진 여성들과 친하게 지내며 혁명에 대한 서적을 접했다.
NYT에 의하면, 추근은 “남편의 무교양, 지식에 대한 무관심”에 불만이 쌓였고, 부부는 결국 1904년 갈라섰다. 그는 남편과 두 아이들을 떠났고, 갖고 있던 보석을 팔아 여비를 마련해 일본 동경으로 유학했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그는 교외 활동에 더 관심을 가졌다. 자신처럼 개혁적 태도를 가진 중국 친구들과 교류하며 ‘광복회,’ ‘중국혁명동맹회’ 등 당시 정부에 대항하는 비밀 결사단체에 가입도 했다.
1906년 중국으로 돌아온 뒤 이듬해에는 ‘대통학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통학당은 훈련된 청년 혁명가들을 모았던 위장 학교였다. 추근은 여학생들도 입학시켜 군사 훈련을 시켰다. 함께 광복회에 소속됐던 혁명가 서석린과 연계해 의병을 일으킬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서석린이 예정된 봉기일이 되기도 전에 고관 한 명을 암살하면서 체포됐다. 이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추근이 그의 동료라는 사실이 발각됐고, 추근 역시 체포되어 고문당한 뒤 참수형을 당했다.
중국 정부에 대항한 혁명가 17명을 다룬 아라이 도시아키의 저서 ‘반역자’에 의하면 추근이 체포되기 전 동지들은 그에게 도망가라고 권했지만, 그는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간단 말이냐. 혁명은 피를 흘려야 비로소 성공하는 것이다”라며 기꺼이 잡히길 기다렸다.
추근은 서석린, 도성장과 함께 신해혁명(1911년 청을 몰락시키고 중화민국을 세운 혁명)의 기반을 세운 ‘삼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2011년에는 추근의 혁명활동을 담은 영화 ‘경웅여협 : 비밀결사’가 중국에서 제작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서도 다양하게 진행된 바 있다.
자료 출처: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8/obituaries/overlooked-qiu-jin.html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6396&cid=62066&categoryId=62066
石美子. (2005). 청말 추근의 여성해방운동. 중국근현대사연구, 26, 1-21.
구성희. (2005). 근대 중국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 추근(秋瑾)의 리더십. 중국사연구, 39(0), 19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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