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비영리-영리라는 전통적인 구분 방식이 희미해지고 있다. 풀고자 하는 사회 문제는 더 명확히 하되, 이를 해결해가는 방식에서는 기존에 영리가 가진 효율적인 프로세스(새로운 기술, 창의적인 생각, 빠른 의사결정 등)를 도입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비영리스타트업, 사이드프로젝트, 벤처기부 등 다양한 이름으로 정의되고 있지만 아직은 태동기다. 이러한 움직임을 주시하고, 지원에 나선 중간지원기관들도 최근 2~3년 사이 눈에 띈다. 경계를 넘나드는 공익활동을 선보이는 하이브리드형 개인과 조직,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중간지원기관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봤다.

 


#IT 민주주의 실현에 나서는 ‘DEF(Democracy Earth Foundation)’는 후원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크립토커런시(Cryptocurrency), ICO(Initial Coin Offering, 투자자들로부터 가상화폐를 제공받아 개발자금을 마련하는 것으로 주식의 상장 개념과 유사)와 같이 스스로 수익을 만들어 내거나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DEF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체 수익모델 개발을 적극 고민하고, 영리활동을 통해 조직 운영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 노숙인 지원을 위한 모금 플랫폼을 운영하는 ‘HandUp’은 새로운 기부 방식을 통해 더 효과적인 후원 및 사회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설립자들은 기술의 힘을 이용해 새로운 사회 변화를 추구한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모금 아이디어가 실행되고 있고, 편리성·투명성·정확성을 가지고 모금 및 배분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시NPO지원센터, 아산나눔재단, 다음세대재단, 임팩트투자기관 소풍(SOPOONG), 알트랩 등 5개 기관이 참여한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생태계 구축 벤치마킹 탐방’을 통해 소개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비영리스타트업들의 사례다.       

국내에는 개념조차 낯선 ‘비영리스타트업’이 미국에서는 이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조직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비영리영역 중에서도 자체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한 '기업가적 비영리(Entrepreneurial NGO)'나 '사회적 비즈니스를 가진 비영리(Social Business)'만을 지원 대상으로 하는 GSBI와 같이 특정 비영리 스타트업만을 전문으로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 기관도 존재한다. 

"공익활동에 나서는 이들 돕는 생태계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최근 2~3년 사이 서울시NPO지원센터, 아산나눔재단, 다음세대재단 등 비영리기관을 지원하는 중간지원기관들 사이에서 이러한 활동을 지원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태동기로 과제가 많다.  

대표적인 공유기업으로 통하는 (사)열린옷장 김소령 대표는 서울연구원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비영리분야에서 일할 만한 청년들을 고용하는 경로가 미흡하다. 영리기업과 같이 비영리분야는 인재풀 자체가 넓지 않다"고 말했다. 이의헌 비영리사단법인 점프 대표도 "기존의 비영리분야에 대한 지원은 직접사업이라 개별 기업들이 살아남기에는 괜찮지만, 더 다양한 곳들이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생태계를 만드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산나눔재단의 '파트너십 온' 지원으로 선정된 '우리들의 눈'이 2017년 해외연수 지원으로 방문한 프랑스국립맹학교에서 점자자료를 보고 있다./사진제공=아산나눔재단

지원에 나선 중간지원기관들도 더 많은 활동을 촉진하려면 국내에서도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은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획조정본부장은 “사회문제가 점차 복잡해지고 일상생활과 밀접한 사회 문제가 늘고 있기에, 이제는 규모 있고 공신력 있는 기관만 지원할 게 아니라 작더라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솔루션을 가진 이들을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도 “종의 다양성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든다”며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혁신조직들이 영리든 사회적경제든, 비영리든 더 다양해지기 위해서라도 비영리스타트업과 같은 경계를 허무는 시도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원기관들 연대로 ‘컨베이어벨트’ 지원 시스템 가져야  

그렇다면 건강한 생태계 구축을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디자인. 유연수 

생태계를 지원할 다양한 주체들의 등장이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양석원 열린옷장 사외이사(전 디캠프 팀장)는 “민간에서는 다음 스탭이 필요한데 아직 이들이 긴 실험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며 “기존의 사회공헌을 하는 기업들이 이쪽 영역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적극 나서는 것도 필요하다. 박지훈 아산나눔재단 사회변화교육팀장은 “직접 투자는 여전히 필요한데, 큰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정부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비영리 지원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아산나눔재단 한 관계자는 “스타트업에 비해 비영리가 내는 임팩트의 경우 그 변화 혹은 성과를 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인내자본이 필요하다”며 “이 영역은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한데, 기존에 비영리기관 지원사업들은 인건비 지원보다는 사업지원에 국한되어 있다”며 지원기관들의 유연한 재정 지원과 변화된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기존 중간지원기관들 간의 연대·협력으로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각지대에 있는 이 분야를 지원하는 기관들이 더 많아져 ‘컨베이어벨트’ 같이 초기-중기-장기 등 성장 속도에 맞는 지원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영순 NPO센터 변화지원팀장은 “우리 사업은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초기 단계 사업이라 그 다음 단계를 지원할 기관이 필요하다”며 “우리만으로는 힘들기에 관련 중간지원기관들이 협력해 지원 시스템을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방 대표는 ”기존 중간지원기관뿐 아니라 법, IT 등 다양한 분야와 연대를 넓혀가야 한다“며 ”이러한 시도가 비영리 생태계를 구축하는 체계적인 과정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디자인. 유연수 

그러나 이러한 기관들 간의 협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양 사외이사는 “앞서 생태계를 구축했던 스타트업, 사회적경제의 경험을 봤을 때 유연성이 중요하다”며 “고속도로 잘 깔고 규율 잘 정하고, 각자 역할 분담만 잘하면 자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한데 거기서 운전까지 하려면 혼란이 생긴다. 자율적 운영을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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