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 가까이에 큰 도서관이 하나 생겼다. 규모가 크다보니 어린이도서관이 따로 있는데, 이곳에 실내 미끄럼틀이 설치됐다. 최근 공간에 파격을 주는 시도가 많으니, 기존의 딱딱하고 지루한 독서문화에 변화를 주기 위한 시도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미끄럼틀은 얼마 되지 않아 폐쇄됐다. 책 읽는데 방해가 된다는 민원이 많다는 게 도서관측 설명이다. 

미세먼지가 많거나, 추운 겨울이면 마땅히 갈 곳 없던 아이들과 부모들은 미끄럼틀 폐쇄를 아쉬워했다. 그 이후 어린이도서관은 ‘도서관은 실내놀이터가 아니다’라는 안내지로 도배돼고, 미끄럼틀에는 '수리 중'이라는 문구가 붙여졌다. 도서관은 다시 조용해졌다. 대신 아이가 내는 작은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작은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 이들의 의견도 존중돼야 마땅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 한켠에 뭔지 모를 아쉬움이 쌓였다. 

아쉬움은 어디서 기인한 걸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페이스북 친구인 김성원 생활기술과놀이멋짓연구소장의 글을 읽고 무릎을 탁 쳤다. “본질적으로 판타지의 공간이어야 하는 ‘놀이터’와 상상과 생각을 담는 ‘책’은 아이들의 상상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궁합이 잘 맞는다. 아직 우리의 관념 속에 도서관은 아이들의 소란이 허락되지 않는 정숙과 고요의 공간이다. 하지만 미래의 어린이 도서관들은 보다 활기차고 다소 시끄럽지만 재미난 놀이터를 닮은 공간이 될 듯하다.” “책 읽는 방식에까지 정숙함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다고 지적한 박혜원 히든북 대표의 의견도 상기됐다.
 
여러 해외 사례는 '조용히 책만 보는 도서관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사가현 다케오시의 공공도서관 내 어린이도서관에서는 자유롭게 책을 읽고 간단한 음료와 간식을 먹을 수 있다. 아이가 울어도 신경 쓰지 않고 엄마들이 편하게 이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 외에도 독서캠핑, 요리체험, 성소수자들의 위한 공간 마련 등 다양한 형태로 도서관은 진화되고 있다. 

독서률을 높이기 위한 시도는 다양해지지만 독서율은 더 떨어지는 시대. 조용하고 정숙한 도서관만이 정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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