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핵심은 지역, 지역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다.’ 

‘사회적경제’가 지역에 스며들며 주민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역에 뿌리내린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지역이 겪는 사회 문제에서 출발해 해결에 나서고, 이는 지역 내 고용창출로 이어져 가장 작은 단위의 경제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운넷>은 지역이 가진 특색을 살린 맞춤형 모델로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공동체 회복 등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경제 현장을 찾는다. 

그 첫 번째는 성동구편이다. 성동구의 소셜패션, 안심돌봄, 자활 일자리, 마을치과, 뚝도시장 등 성동만의 색깔을 자랑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이야기를 프롤로그 포함 총 7부에 걸쳐 소개한다.

성동구 내의 봉제 사업체 중 대부분은 10인 미만의 소규모다.

길가에 전시된 옷들 중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이 가격에 팔아도 이윤이 남는다면 소매와 도매 이전 단계에 있는 봉제작업자들은 도대체 얼마의 보수를 받을까. 이미 중국, 인도네시아 등 인건비 낮은 국가로 의류봉제 산업이 이전했다하니, 재봉틀 돌리는 손에 힘이 빠질 만하다. 봉제기술인들의 임금이 소비자 가격의 1%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나온 지 한참이다. 서울 성동구, 봉제 산업 침체 문제를 지역 내 패션 당사자들의 협동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움직임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다. 특히 한국패션사회적협동조합(이하 ‘패션사협’)은 2015년 서울시 사회적경제특구사업을 통해 ‘소셜패션(social fashion)’을 실현하고 있다.  

소셜 패션의 핵심은 '생존'이다

신만수 한국패션사협 이사장은 “봉제 산업 같은 서민산업이 무너지는 것은 곧 서민경제가 무너지는 것”이라며 “소셜패션의 가장 큰 목적은 지역의 패션산업 관계자들이 협력을 통해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수소셜패션프로젝트 로고

2015년 패션사협은 소셜 패션 당사자들을 잇는 중간지원 조직의 역할을 자임하고 성동협동사회경제추진단, 성동여성인력개발센터와 같은 복지기관 관계자 등 11명이 모여 출발, 현재 성동구 소셜 패션의 역사를 이끌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하죠. 이게 안 될 때였어요. 당사자들에게 협동해보자 했죠. ‘변해야 겠다’고 마음먹을 계기를 만들자고요.”

서울시 예비특구사업을 통해 본격 진행한 소셜 패션이 방점을 찍은 것은 봉제소공인, 디자이너, 유통 세 주체의 연대였다. 

봉제소공인들은 주문자가 만들어준 설계도에 따라 하청 생산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방식으로 작업해왔다. 10인 이내의 작은 소규모 사업체가 많다 보니 스스로 유통이나 마케팅을 실행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OEM 구조는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문제로 성장발목을 잡았다. 패션사협은 세 주체의 협력을 통해 OEM 방식에서 한발 나간 ‘제조업자개발생산(ODM, Original Design Manufacturer)’ 방식으로 전환을 꾀했다. 단순 하청이 아닌, 디자인을 직접 하는 개발기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디자인=유연수 디자이너

봉제소공인, 협동조합으로 뭉쳐 공동문제 논의자리 마련하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봉제소공인 조직화를 위해 주체들을 만나고 모으는 것이었다. 

“지역 내 봉제소공인들은 문제를 고민할 시간이 없거나 문제를 알아도 해결할 방법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일단 모일 테이블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죠. 패션사협에서 지역의 봉제소공인 현황을 조사하고 ‘패션봉제 소공인 만남의 날’ 등을 기획해 이들이 모여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성동구 패션봉제 소공인 만남의 날'을 통해 봉제소공인이 다함께 만나 소통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사진 제공=한국패션사회적협동조합

나아가 더 조직적인 협동을 이어가기 위해 봉제소공인의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했다. 2015년 말 금호2가동 임대주택(래미안하이리버)과 한양여대 청실홍실산학센터에 마을공방을 열고 '의류패션기술인(기초봉제교육)‘을 진행해 경력단절여성 봉제인을 양성했다. 이들은 협동조합 설립 교육과 지원을 통해 ‘물레마실협동조합’과 ‘꿈한타래협동조합’으로 발돋움했다. 기존 30년 이상 베테랑 봉제인들을 인큐베이팅해 ‘성동패션봉제협동조합’이 설립됐고, ‘나눔봉제협동조합’은 자발적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논의를 통해 실, 원부자재를 공동구매해 단가를 낮추고 자투리 폐원단을 공동으로 수거해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런 작은 문제부터 함께 해결해보는 것에서 당사자들이 협동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어요. 지난 7월에는 4개 봉제인 협동조합들이 모여 사단법인 ‘성동패션봉제인연합회’를 만들었어요. 지금 성동구 지원으로 왕십리에 봉제사업장을 만들고 봉제관련 교육과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그릇' 즉 소통의 구조가 생기고 필요한 지원이 이뤄지게 된 것 자체가 큰 변화인 거죠."

현재 성동패션봉제인연합회는 왕십리에 봉제특화거리를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공모전(발굴)-패션학교(교육)-소셜패션쇼(도약) 진행, ‘소셜패션 디자이너’ 양성 시도

패션사협이 주목한 것은 소공인 뿐 아니라 디자이너와의 협업이다. 상생을 위한 사회적 의식을 갖추고 다양한 아이디로 색다른 콘텐츠를 접목하는 청년 디자이너를 육성을 시작한 것이다. ‘성수 사회적경제 패션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 2016년 7월 시작한 ‘성수소셜패션프로젝트’다. 
 

'현장패션학교 잇다(위)'를 거친 청년 디자이너의 작품이 2016년 11월 소셜패션쇼 런웨이 무대에 올랐다(아래).
사진=성수소셜패션프로젝트 페이스북

먼저 <소셜 패션디자인공모전>을 통해 청년 디자이너를 발굴했다. 신 이사장은 "디자인을 꿈꾸지만 재봉틀을 한 번도 한 만져본 청년들에게 봉제 공장 현실을 알리고 디자인하는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공모전에서 1차로 선정된 50여 명의 디자이너들은 <현장패션학교 ‘잇다’>에서 디자인 기초강의와 사회적경제 방식 협업, 도시재생, 지속가능한 디자인 등 특강을 들었다. 시니어 디자이너들이 멘토링을 맡아 청년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 구체화를 돕고 실제 시장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약 2달 간의 멘토링과 중간심사를 거쳐 탄생한 디자인들을 <소셜패션쇼>에서 선보였다. 

"소셜패션쇼에 참여한 디자이너들 몇몇도 포함해 청년 디자이너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했어요. ‘아트그라운드 협동조합’이 만들어져 공동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지금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셜 패션디자인공모전의 주제는?

'성수, 현장이 패션이 되다'의 테마로 열려 △수제화 장인, 서울숲, 봉제현장, 소셜벤처거리 등 성수 지역의 특징을 살린 패션 디자인 △사회문제를 제기하거나 해결에 기여하는 패션의 두 분야로 모집했다. 

 봉제소공인-청년 디자이너 공동 상품 제작+온·오프라인 유통채널 고민

신 이사장은 “이후 1년에 7,8회 소셜패션 생태계 당사자들의 모임을 가져 청년 디자이너와 봉제인 협동조합이 소통할 수 있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며 “이를 통해 공동으로 브랜드와 제품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청년 디자이너 풀과 유통 플랫폼을 보유한 소셜패션 브랜드 ‘라잇루트’와 협력을 꾀했다.

"잉여원단으로 패션소품과 의류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봉제 사업자 협동조합들이 잉여원단(헌 원단이 아닌 남은 원단)을 제공하고 청년 디자이너들이 협업해 제품을 디자인하면 지역 내 소공인과 함께 만드는 협업구조를 만들었죠.

‘떳다할매’도 함께 참여했어요. 떳다 할매는 뜨개와 원예 등을 접목해 낙후된 성수동 골목길 도시재생을 목표하고, 동네 어르신 친구맺기 등 노-노 커뮤니티케어를 수행하는 사업단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은 크라우드 펀딩과 오프라인 장터를 통해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패션사협 사무실 내에는 소셜패션 프로젝트로 탄생한 원단 업사이클링 패션소품들이 비치돼 있다.
사진=홍은혜 인턴기자

청년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포트폴리오를 만들 기회를 얻고, 봉제소공인들은 일감 부족 문제를 해결하며, 기존 봉제사업자 협동조합들은 잉여원단을 처리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각각 주체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이 맞물려 해결되는 상생 구조였던 것이다. 

이 정도면 성공 아닐까. 하지만 신 이사장은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연대가 필요한 세 번째 부분인 ‘유통’의 한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유통과 마케팅은 한 기업이나 업체가 하기 어려워 다양한 관계성이 확보돼야 해요. 분야 전문가들과 협력해야 하는데 패션사협이 이를 하기에는 인프라와 환경, 관계를 구축하는 데 무리가 있어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했죠.”

신 이사장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뭉친 이들에게는 전문적인 교육, 인프라, 유통 프로세스가 꼭 필요해요. 하지만 유통과 경영 전문가들은 보통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철저히 이익이 돼야 협업하고, 사회적경제 영역과 진정한 ‘협동’을 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이 두 부분을 잇기 위해 정부가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이어 “그 방식은 전문가 영역도 처음부터 출자금을 내고 공동의 책임을 맡아 공(共)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분석하면서 “이 과정은 모일 공간을 짓거나 공장 설문조사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가 현장에 한 발짝 더 깊이 들어와 이해하는 구체적 노력(디테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이사장은 "소셜패션은 한국패션사회적협동조합의 정체성이며 걸어온 길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디자인=유연수 디자이너

“지역 내 봉제산업 당사자 ‘관계 맺음’으로 구체적인 ‘상품’ 나와야”

패션사협은 이런 한계에도 매력적인 ‘상품’ 경쟁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소비자들이 선택할 만한 ‘사회적가치’가 담겨있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작으로 현재 ‘소셜패션 트레이닝복’을 자체브랜드로 준비하고 있다. 

“트레이닝복은 봉제소공인들이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어서 봉제소공인 협동조합에 지속적으로 일감을 연계할 수 있고, 노인, 장애인, 빅사이즈 체형 등 패션소외층도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어요.”

오마이컴퍼니에서 펀딩 중인 소셜패션 트레이닝복 소개 이미지

트레이닝복 디자인은 세계적인 디자인 대회인 ‘망고 패션 어워드(MANGO FHSHION AWARDS)’에서 2009년 대상을 수상한 이진윤 디자이너가 맡았다. 현재 디자인을 마치고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오마이컴퍼니’에서 오는 11월 25일까지 펀딩을 진행하고 있으며 목표금액을 달성할 시 제작을 시작한다. 소셜패션을 실현할 수 있는 상품을 고민하고 시장에 선보이는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지역의 소셜 패션 모델을 정립하고자 한 패션사협의 여정은 당사자인 봉제인과 디자이너 현황을 조사하고 발굴하는 것에서 시작해, 교육을 통해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을 협동조합으로 조직한 후, 그들의 협업을 이끌어가는 과정이었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로 인해 확실히 지역 내 봉제 산업이 살아나고 소셜패션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신 이사장은 물리적인 ‘성과’ 측면에서는 단호하게 자평했다. 그러면서도 지역 내 협업이 견고해져야 한다는 방향성에 대해 믿음을 보였다. 

“다만 패션사협은 현장과 부닥치고 좌충우돌하면서 작은 실험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산업을 둘러싼 지역 내 이해관계자들, 주민들이 ‘관계맺음’을 통해 협동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그 방향성을 충분히 검증했고, 지역 내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봐요. 소셜패션이 완전히 자리잡기 위해 사회 전체의 관심과 공감대로 이어졌으면 하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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