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5세인 박생규 씨는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2011년 사회적경제 재능기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올해로 8년차 프로보노로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ICT 전문가에서 퇴직 후 우연히 인연을 맺은 프로보노 활동이 이제는 그에게 삶의 보람을 선사하는 일이 되었다. 그동안 그가 참여한 프로보노 활동만 해도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8년째 사회적경제 분야에 재능기부 활동을 하는 박생규 프로보노(왼쪽에서 두번째)가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과 프로보노 협약 후 촬영한 사진  

그동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는 올해도 참손길공동체협동조합,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이하 한울배터리) 등에서 프로보노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 그의 지원을 받은 이명원 한울배터리 대표는 박 프로보로를 “인생의 선생님”이라 부른다. 이 대표는 “박 선생님과는 업무 관계로 만났지만 가족에게 얘기 못하는 고민 상담까지 할 정도로 친해졌다”고 말했다. 한울배터리는 배터리, 세탁, 태양광발전사업 3개 분야 사업을 진행하며, 갱생보호대상자 등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설립된 법무부 인가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이곳에서 박 프로보노는 조직관리, 판로확대, 신사업발굴 영역을 지원했다. 올해 한울배터리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고 3명 일자리 지원도 받았다. 사업다각화를 고민하는 기업과 협력 하에 법무부, SK 그룹사에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박 프로보노는 “많은 기관들과 함께 일하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다”며 “프로보노 활동하면서 내가 더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프로보노 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프로보노란?

프로보노는 라틴어로 ‘프로보노 퍼블리코(Probono Publico: 공익을 위하여)’에서 유래된 용어다. 자신의 전문성을 통해 대가없이 낮은 비용으로 공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변호사들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률 서비스로 시작해 현재는 의료·교육·경영·전문기술·예술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됐다. 개인보다는 사회적기업과 같은 조직의 경영능력을 높여 사회적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전문지식과 기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자원봉사활동과는 구분된다. 

재능기부의 가치 (자료출처. 2017 재능기부뱅크 활동 사례집)

 

‘보람’으로 시작해 ‘사명감’으로 발전하는 프로보노 활동  

올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오픈한 전문가와 사회적경제기업을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 '재능기부뱅크'에 올해 등록한 프로보노는 195명이다. 이들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프로보노 활동에 나선 이유를 ‘보람’에서 찾았다. 

“내가 가진 지식으로 타인을 돕고 살리면 좋겠다는 고민에서 다시 나서게 되었어요.”

재능기부뱅크를 통해 올해 사회적기업에 법률자문을 지원한 조은결 변호사는 ‘법무법인 경연’ 소속이다. 조 변호사는 2012년부터 조은문화재단에서 법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프로보노 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조 변호사에게는 두 번째 프로보노 활동인 셈이다. 그는 올해 서울 은평구, 성북구,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는 3개 사회적기업의 법률 자문을 도왔다. 소비자의 부당한 요구에 대한 법률적 대응, 타 업체와 체결한 용역계약으로 인한 분쟁 등이 그가 주로 진행한 자문 내용들이다.

조 변호사는 “법률과 관련된 경우는 사건 발생 후 즉각적인 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계약서 작성을 형식적인 절차로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분쟁이 생겼을 때 제일 중요한 게 계약서인 만큼 그 중요성을 인식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올해 재능기부뱅크를 통해 전문성을 기부해 우수 프로보노로 선정된 프로보노들.
조은결 변호사(맨 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와 전준 변리사(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도 이날 함께 수상했다.  

프로보노 활동이 자신의 새로운 ‘커리어’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전준 변리사는 2012년부터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프로보노 활동을 벌여온 베테랑이다. 그의 전공 분야는 사회적기업의 지식재산권 자문이다. 전 변리사는 “지식재산권은 일반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분야다”며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사회적기업 스스로도 최소한의 지식재산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늘 설명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프로보노 활동의 경험을 살려 최근에는 대한변리사회 내 신설된 공익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사회적경제기업의 요구에 비해 변리 분야 프로보노가 부족하다”며 “보다 많은 변리사들이 폭넓고 깊이 있는 프로보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사업을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프로보노 연계로 숨통 틔우는 사회적경제기업들      

프로보노에게는 재능기부활동이 ‘보람’과 ‘소셜커리어’를 쌓는 기회가 된다면, 사회적경제기업에게는 사업 과정에서 막혔던 부분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는 ‘멘토’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사회적경제기업 상당수가 체계적인 경영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영리사업 경험이 없어 비즈니스 과정에서 필요한 경영·홍보마케팅·재무·법률·인사노무 등의 전문분야에 문제가 발생했을 시에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비용 부담으로 쉽사리 전문가 자문을 받기도 쉽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전문가들과의 연결이 가능한 프로보노 활동은 기업들에게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다. 

애듀툴킷디자인연구소는 올해 툴킷 개발 과정에서의 저작권, 상표 등록과 관련해 프로보노의 도움을 받았다.

2016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으로 사업을 시작한 김성희 애듀툴킷디자인연구소 대표는 재능기부뱅크의 프로보노 지원으로 최근 큰 고비를 넘겼다. 애듀툴킷디자인연구소는 변화하는 교육패러다임에 맞춰 교육생들이 효과적으로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에듀튤킷 등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회사다.

김 대표는 최근 여러 툴킷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저작권의 소유 범위, 상표등록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전문가 자문을 받기에는 비싼 컨설팅비가 부담이었다. 다행히 재능기부뱅크가 전문 변리사를 프로보노로 연계해주면서 애듀툴킷디자인연구소는 현재 개발 중인 상품에 대한 저작권 문제 해결은 물론, 툴킷 제작과 관련된 협업모델별 상품·저작권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립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기업이 가장 힘들 때 프로보노 분들과의 연계가 사업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줬다”며 “지금은 우리가 도움을 받고 있지만 나중에는 우리와 같은 스타트업들에게 도움 주는 프로보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캐치탤런트'는 제조외주용역을 맡길 때의 불안과 불편을 해소하는 온라인 플랫폼 신생 기업이다. 카치탤런트는 지난해  재능기부뱅크를 통해 권영우 프로보노를 소개받았다. 권 프로보노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만 30여년을 근무한 경제전문가다. 현 대표는 "제조업 분야가 워낙 방대하고 현장 지식을 배우기도 어렵다보니 우리 같은 스타트업의 경우 사업 접근이 쉽지 않다"며 "다행히 좋은 멘토를 만나 제조업에서의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우왕좌왕하기 쉬운 창업 초기 단계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멘토를 얻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 평가했다.   

서로에 대한 이해↑, 동반 성장하는 관계로 인식해야 

프로보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물론, 지원을 받는 사회적경제기업들 모두 프로보노 사업이 더 활성화 되려면 단순 재능기부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주체로 인식하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재능기부뱅크를 통해 세무/회계 지원을 받은 예비사회적기업 포토브릿지는 "단순 재능기부가 아닌 기업과 프로보노의 동반 성장이라는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박생규 프로보노는 “전문가라고 가르치려 하기 보다는 더 많이 듣고 현장 기업들에게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며 “늘 그들의 입장에 서서 고민해야 성공여부를 떠나 서로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조언했다. 
 

사진제공.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애듀툴킷디자인연구소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