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 다양한 문화자원이 모여있는 곳을 꼽으라면 종로구는 단연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전통건축물이 밀집한 인사동, 북촌, 서촌을 중심으로 미술, 공예, 음악 등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구내 극장도 150여 개에 달한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부터는 평일 저녁, 주말에 종로 내 갤러리, 극장, 공연장을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다. 이제는 좀 더 특색있는 문화예술을 만나고 싶다면? ‘종로구 문예투어리즘’에 주목하자. 종로구의 사회적경제기업들이 문화자원에 색다름을 한 방울 더했다. 이는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픈 외국인에게도, 서구화된 한국에 살고있는 현대인들에게도 매력적인 체험으로 다가온다.

 

지난 2일 '종로구 문예투어리즘 성과보고회'에서 참여기업들이 트립 진행 영상을 보고 있다. /사진=홍은혜 인턴 기자

지난 2일 종로구 ‘문화공간 온’에 ‘여행 좀 다닌다’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숙박 공유 서비스 플랫폼 ‘애어비앤비’ 홍보팀과 ‘종로사회적경제네트워크 사회적협동조합’의 사회적경제기업 8곳이 모였다. 서울시 지역특화사업 일환인 시범사업으로 종로구의 풍부한 문화자원 체험상품을 내놓은 ‘종로구 문예투어리즘(이하 ‘문예투어리즘’)’의 참여기업들이 그 성과와 개선점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문예투어리즘은 서울시 지역특화사업의 일환으로 올 7월부터 11월까지 시범사업으로 진행됐다. △모차르트마술피리 △부암뮤직소사이어티 △공연자협동조합 신 △팀플레이예술기획  △서울패션공예협동조합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좋은우리술협동조합 △한국차문화협동조합 총 8개의 사회적경제기업들이 보유한 문화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자원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에어비앤비 ‘트립’을 통해 선보였다. 트립 서비스는 호스트(host)가 지역 자원을 활용해 자신의 취미, 기술, 전문 지식을 공유하는 서비스다. 고객들이 정해진 시간, 장소에서 열리는 체험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당초 기업들은 지속가능성과 수익성을 고려해 한국문화 체험 수요가 큰 외국인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서울에 관광 ‘핫플레이스’들은 많지만 이국적인 상점과 음식점으로 가득한 곳에서 진정으로 한국의 현지문화를 접할 수 있느냐는 별개라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듣고 보고 만들고 마시는’ 문예투어리즘이 탄생했다.
 

눈과 귀의 즐거움, 전통의 진수 ‘승무’ ‘국악’ ‘사자춤’부터 동서양 사로잡은 K-pop과 논버벌 연극

모차르트마술피리의 K-pop 연주공연. 다음 트립부터는 음향과 무대시설을 고려해 장소를 변경할 예정이다.
사진제공=종로사회적경제생태계조성사업단

김화숙 ‘모차르트마술피리’ 대표는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콘텐츠를 고민하다 K-pop을 접목하고 그들에게 익숙할 수 있는 클래식에 우리 국악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국악 버전으로 편곡한 방탄소년단 등 K-pop가수의 노래를 가야금, 해금 등 국악기와 서양 현악기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모차르트마술피리는 음악교육, 공연을 통해 클래식 아티스트의 활동 지평을 넓히는 기업이다.
 

부암뮤직소사이어티는 클래식 음악을 다양한 장르와 융합한 예술공연을 기획한다. /사진제공=종로사회적경제생태계조성사업단

‘부암뮤직소사이어티(이하 ’부암뮤직‘)’는 국악에 부암동의 전통 요소들이 한 데 어우러지는 공연을 기획했다. 신형금 부암뮤직 대표는 “옛 향기 물씬 풍기는 골목에 자리한 전통 한옥에서 인왕산을 마주한 전경을 감상하며 듣는 전통 국악”이 감상 포인트라고 소개했다. 이어 “다른 곳에서도 접할 수 있는 전통문화도 좋지만,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어 ‘민속 굿’을 활용한 트립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공연자협동조합 신'의 트립 참여객이 사자춤에 참여하고 있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조지훈 시인의 ‘승무’를 읽으면 사뿐한 춤사위가 상상된다. ‘공연자협동조합 신’은 전통춤의 진수로 승무를 선보인다. 또, 관객이 직접 탈을 쓰고 참여하는 사자춤을 통해 체험 요소도 놓치지 않는다.  “대학로 극장을 통해 공연해오면서 고객 반응이 가장 좋았던 두 가지를 결합했다”는 이철진 대표는 “전통춤이 연극과 뮤지컬에 비해 비인기 분야이지만 외국인에게는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비언어극)이라 경쟁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팀플레이예술기획'은 <메세지>라는 넌버벌 현대극 시나리오를 직접 만들고 공연한다. 조성준 대표는 “보통 넌버벌 연극은 화려한 퍼포먼스 위주로 진행되는데, 스토리가 탄탄한 한국의 드라마성과 코미디를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퍼포먼스를 줄이고 스토리텔링에 집중했다”고 소개했다.
 

전통 속 숨은 내 취향은? 한복·악세서리 만들고 차·전통주 맛보기

문예투어리즘 트립의 매력 중 하나는 실용적인 나만의 물건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개와 산호초를 활용해 악세서리를 만드는 트립을 진행한 김상실 서울패션공예협동조합(이하 ‘서울패션공예’) 이사장은 “재료만 있으면 실생활에서 계속 활용할 수 있는 공예기술을 익힐 수 있어서 참여객들이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서울패션공예협동조합의 ‘Life's a Gem: Korean Jewelry Making’ 트립에서는 비교적 쉽게 고급 디자인 악세서리를 만들 수 있고, 자개에 얽힌 얘기도 들을 수 있다.

‘봉제 장인의 한복 허리치마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한 이강호 ‘창신숭인 도시재생협동조합(이하 ’창신숭인‘)’ 대리는 “창신동 봉제마을에서 10년 이상 봉제작업을 하신 장인들이 자부심을 못느끼는 것이 안타까워 외국인에게 한복 만들기를 가르쳐주도록 연계했다”고 말했다. 

창신 봉제명인과 '한복 허리치마 원데이 클래스' 참여객들.
/사진 제공=종로사회적경제생태계조성사업단

기업들이 아이템과 콘셉트를 다듬는 과정에서 ‘웃고’의 트립 전문가 이상천 컨설턴트가 활약했다. 창신숭신의 이 대리는 “짧은 원데이 클래스 안에 완성할 수 있는 한복만들기를 위해 속치마를 생략하고 몸에 맞춘 겉치마를 만드는 것으로 간소화했다”며 “이 과정에서 컨설팅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전문점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전통주’와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트립도 있다. 익숙하고 찾기 쉬운 소주와 막걸리 외의 다른 전통술을 맛보고 싶다면 ‘좋은우리술협동조합(이하 ’좋은우리술‘)’이 운영하는 운니사랑방에 다함께 모여 영세 양조장이 만드는 전통주를 마시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최성은 좋은우리술협동조합 이사장은 “트립에 외국인 커플이 참여해 ‘한국 술문화’가 매우 재미있다며 전통주를 사가기도 했다”며 “직접 증류식 막걸리를 짜보는 체험도 구상 중”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차문화협동조합’은 오리지널 티를 직접 우리고 테스팅하는 체험을 기획했다.
한국 차 뿐 아니라 우롱차, 보이차 등 대만, 중국의 차를 포함한 동양의 차문화를 접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도 분명 매력적” 자생으로 트립 상품 이어가는 기업들

8개의 트립 운영 결과, 외국인은 물론이고 참여한 한국인들의 평도 긍정적이다. 익숙하지만 막상 접할 기회가 적은 우리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즐기는 것이 충분히 경쟁력있다는 평이다. 시범사업 트립은 영어로 진행됐지만 좋은우리술협동조합 등은 긍정적인 내국인 반응에 힘입어 한국어 트립상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에어비앤비 플랫폼을 활용해 트립 형태의 상품을 기획한 것에 대한 기업들의 반응도 좋다. 김상실 서울패션공예 이사장은 “트립이라는 상품으로 고객과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처음 알았는데 유용하다”고 전했고, 이철진 공예인협동조합 신 대표는 “한국문화 체험을 원하되 플랫폼이 없어서 접하지 못했던 외국인들에게 접근성이 높아졌다”고 평했다.

서울패션공예협동조합의 보석공예 명인이 악세서리 제작 클래스를 진행한다.
사진제공=종로사회적경제생태계조성사업단

참여한 기업들은 모두 개별적으로 트립을 이어가거나 내년도 문예투어리즘에 참여하려는 계획을 갖고있다. ‘사업 이후에도 참여 기업들이 자생적으로 상품을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8개 사업 중 절반만 유지돼도 성공’이라는 초기 전망을 고려하면 희망찬 출발이다. 이후 기업들이 운영하는 트립은 에어비앤비 홈을 통해 날짜와 시간을 확인한 후 예약할 수 있다.

기업들은 이후 트립에서는 ‘민속 굿, 막걸리 주조 체험, 더 높은 퀄리티의 한복 제작 등 더 욕심나는 컨텐츠를 담되 합리적인 트립 단가를 설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내년 시범사업으로 마포구 버전의 문예투어리즘도 논의 중이다.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영업모델을 찾기 위한 종로구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시도가 시민에게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정당한 대가를 부여하는 시작일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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