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핵심은 지역, 지역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다.’

‘사회적경제’가 지역에 스며들며 주민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역에 뿌리내린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지역이 겪는 사회 문제에서 출발해 해결에 나서고, 이는 지역 내 고용창출로 이어져 가장 작은 단위의 경제를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운넷>은 지역이 가진 특색을 살린 맞춤형 모델로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공동체 회복 등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경제 현장을 찾는다.

그 첫 번째는 성동구편이다. 성동구의 소셜패션, 안심돌봄, 자활 일자리, 마을치과, 뚝도시장 등 성동만의 색깔을 자랑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이야기를 프롤로그 포함 총 7부에 걸쳐 소개한다.

 

이규선 서울성동지역자활센터장. /사진=백선기 에디터

“그동안은 근로 능력이 꽤 있는 사람들이 센터를 찾았어요. 하지만 2015년 복지전달체계가 개편됐어요. 근로능력을 0-100으로 환산할 때, 30-100의 능력이 있는 수급권자들은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로 가고, 0-30의 낮은 근로능력이 있는 이들이 우리 자활센터로 와요. 사실상 근로의욕이 없는 분들이 많죠.”

이규선 서울성동지역자활센터장(이하 ‘성동센터’)이 말하는 ‘자활근로사업이 쉽지 않은 현실적 이유’다. 

지역자활센터는 일할 능력이 있지만 일하지 못하고 있는 차상위계층의 사회·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근로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중 1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자활기업인 ‘성동돌봄센터’를  배출하기도 한 성동센터는 현재 15개의 자활근로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4개가 사회적경제 기업과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센터들은 자활기업을 왕왕 배출하지만, ‘사업단’ 형태로 기존 사회적경제기업과 협력하는 곳은 성동센터가 유일하다.

이규선 성동지역자활센터장은 센터 출범 1년만에 센터장으로 부임해 센터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는 인터뷰 시작 “자활센터들이 자활기업을 내보내기 쉽지 않아진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또 다른 문제를 하나 더 던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문제다. 

“자활 아이템의 고갈도 문제에요. 자활근로사업을 한 지 올해 18년째인데, 식당, 고물상, 세탁소... 할 수 있는 아이템들은 다 시도해봤죠. 근로능력이 높은 사람들도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데, 자활기업이 사업을 유지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센터에서 20-30여 개의 사업체를 독립시켰는데 그 중 살아남은 것은 3개뿐이에요.”

성동지역자활센터는 작년 9월 사회적경제기업들에게 '지역일자리 공유'를 제안하는 설명회를 열었다. /디자인=유연수

“사회적경제 기업과 협력 모델이 돌파구”

“사업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따로 있고, 수급권자들은 보조 작업을 할 수 있는 일종의 하청 구조의 사업 모델을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년 9월에 사회적경제기업들에게 자활센터를 소개하는 설명회를 열었고, 그 중 5군데와 협업해 사업모델을 찾았습니다.” 

성동센터가 자활기업과 사회적경제 기업 사이에서 찾은 교집합은 무엇일까. <점자책 오류 교정·교열/봉제 자투리 천 수거/도시양봉/출판공장 인턴> 총 4개 분야에서 실험이 진행중이다.
 

하나. 점자 책 오류 없이 만들기

모든 사업이 성동구 내에서 이뤄지지만, 센터 1층에 있는 ‘도서 교정·교열 사업장’이 단연 가장 가깝다. 사업장 안에서 참여자 4명의 교정 작업이 한창이다.

“저희는 책을 점자도서로 만들 때 제대로 변환됐는지 검열하고 교정하는 일을 해요. 책을 스캔해 PDF로 변환한 다음 디지털 파일로 다시 변환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난 부분을 교정하는 일입니다.” - 근로자 주민

300페이지 책 1권 교정에 약 3일이 걸린다.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일 듯하다. /사진=백선기 에디터

“PDF를 전자파일로 변환하면 글자가 깨지고, 자간 등이 불규칙하게 변환돼서 하나하나 다 수정해줘야 해요. 책마다 편집 디자인이 다르기 때문에 그 틀에 맞춰서 정리합니다. 완료된 책도 다 같이 회람해서 최대한 오류를 줄이려고 하죠.” - 근로자 주민

이들에게 교정거리를 주는 ‘(주)도서출판 점자’는 장애인의 읽을 권리를 보장하고 독서 영역의 ‘Barrier Free’를 실현하기 위해 점자 도서를 출간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원래 도서출판 점자는 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교정·교열 작업을 맡겼어요. 하지만 정교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죠. 오류가 있으면 누수비용이 들게 마련인데, 자활센터 근로자들이 교정 작업을 배워서 조직적으로 일하면 점자 측은 안정적으로 작업물을 받을 수 있죠.” 

주민과 사회적경제기업 모두의 상생이 된다는 이 센터장의 설명이다.

둘. 성동패션봉제협동조합 자투리원단 처리는 자활근로자가

성동패션봉제협동조합의 자투리원단 배출량은 하루 약 40포대이다. /사진 제공=성동지역자활센터

성동패션봉제협동조합은 각각의 조합원들이 봉제사업을 하고 있는 사업자협동조합이다. 이들이 작업하고 남은 자투리원단을 자활센터의 근로자 2명이 수거해 정해진 장소로 운반하면 수거업체가 이를 한 번에 가지고 간다.

“원래는 각 사업자들이원단수거업체에게 위탁해 자투리원단을 버렸어요. 일반업체에게 맡길 때는 1포대에 5000-6000원 정도의 처리비용이 든대요. 그런데 자활센터 근로자들이 패션봉제협동조합 차원에서 내놓는 자투리원단을 한꺼번에 수거하면 포대 당 3000-4000원으로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협동조합 측은 비용이 절감됩니다.”

이 센터장은 “패션봉제협동조합이 망하지 않는 한 이 사업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라며 웃었다. 

셋, 어반비즈 교육 과정 → 도시양봉가!

'허니앤비즈 사업단' 근로자가 도심양봉장에서 작업 중이다. /사진 제공=성동지역자활센터

도시에 30여 개의 양봉장을 운영해 생산한 꿀을 가공하고 판매하며, 양봉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어반비즈서울’과도 협업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반비즈가 사업 참여자들에게 양봉기술 교육을 해줍니다. 그 비용은 센터가 부담하죠. 총 10명이 어반비즈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현재 5명의 참여자들이 양봉기술을 준전문가 수준으로 습득해서 어반비즈가 갖고 있는 양봉장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양봉기술 습득이 어려운 참여자 5명은 상품에 포장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 센터장은 근로자 고용 형태 외에도 자활근로자가 독립할 방안을 고안 중이다.
 “전문 양봉자 수준으로 기술을 익히면, 참여자들이 독립적으로 양봉장을 운영하고 어반비즈가 이들이 생산한 꿀을 수매하는 단계까지 바라보고 있어요."

# 기업에게도 이로워야 ‘상생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센터장은 양봉사업을 예로 들어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구인 해결이다. 사회적경제기업들 중 인력난을 겪고 있는 곳은 꽤 많다. 이 센터장은 “그들을 자활센터와 연계할 경우, 처음에는 부족하더라도 교육을 통해 괜찮은 인력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어반비즈서울에게 자활센터가 양봉기술교육비용을 지급하고, 인턴파견하는 경우에는 인건비를 지원 자활근로자를 고용하는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에요. 참여자의 일이 늘어 고용으로 이어지기까지 인력 관리 비용을 지원하는 거죠.”

둘째, 기업의 사업 확장 기회가 확대된다. 센터와 기업이 공동 사업투자를 통해 새로운 사업분야를 모색한다.

이 센터장은 “자활사업장 투자로 꿀 채밀(꿀 가공)공장을 만들면 어반비즈가 외부업체에 위탁하던 채밀을 자활 사업단 내에서 직접 진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꿀 가공을 위해 의정부 등 성동구 외부로 꿀을 운반하고 있는 현재에 비해 어반비즈의 꿀 운송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투리원단 수거, 책 스캔본 교정·교열, 양봉에 이은 네 번째 사업단은 ‘도서출판 점자에의 인턴 파견’이다. 파견된 1명의 인턴은 출판공장에서 제본을 맡고 있다. 센터는 모든 사회적기업과의 협업 모델에 인턴 파견을 구상했지만 이는 쉽지 않았고, 도서출판 점자에의 파견도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현재 기업이 원하는 인력과 센터가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이 ‘미스매치’인 것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 그는 “실제 사회적경제영역에 필요한 인력에 비해 자활주민이 할 수 있는 기술수준은 낮다”고 토로했다. 뼈아프지만 현실이다. 

“우리는 책을 제본하는 일을 할 수 있는데, 많은 사회적경제기업들은 디자인에디터를 원하는 격이에요. 폐원단수거사업같은 경우에도 운전능력, 포대자루를 들 힘이 필요하지만 대다수 지역자활센터에는 질병도 있고 나이도 있는(평균 50대 후반) 분들이 많이 오셔서 이마저의 인력도 없는 상황이에요. 보통 센터를 찾는 분들의 60%는 부업이 가능한 정도이고, 나머지 분들은 그보다 한단계 높은 자전거/간편 집 수리가 가능한 분들이에요. 지금 지역사회적경제협업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은 교육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능력이 높은 편인데, 그런 분들은 성동구에 연결된 10명 중 1명 정도에요.”

자활사업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센터 초기보다 투자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이 센터장은 “투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것은 당연,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며 “지자체가 기업의 자활근로자 고용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도 기술력 낮은 자활인력을 고용할 여건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요. 일이 숙달될 때까지 1년 정도 파견하는 자활제도를 개선하고 지자체가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해요. 특히 협업사업을 통해 성동구 내 저소득층을 고용하는 기업들에게 인센티브를 줘서 고용 유인을 만들어줬으면 하죠.

성동지역자활센터는 올해 초부터 지역사회적경제협업사업을 시작해 현재 23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 / 디자인=유연수

“맨땅에 헤딩 대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저소득층 일자리 실험 모델”

이러한 어려움이 있지만 사회적경제기업과의 협력은 저소득층 고용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려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성동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소셜벤처, 사경 영역 단체들이 밀집돼있어요. 하지만 성동구에 소셜벤처들이 100개가(많이) 밀집했다고 해도, 이들이 성동구 주민들을 얼마나 고용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기업은 상품, 고용 무엇으로든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이만큼 많이 모였다고 보여주기식으로 자랑할 것이 아니라, 지역 안의 고용으로 이어져야겠죠.”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근로능력이 낮은 저소득층의 고용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이 센터장의 처방은 사례를 통해 당사자들에게 가능성을 보이고 인식을 바꾸는 것이고, “센터의 ‘지역사회적경제협업사업’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자활센터와 협력해 인력풀을 만들 만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를 위한 지자체의 다양한 지원체계가 만들어졌으면 해요. 우리 사업모델이 그 지역 변화의 시발점이 됐으면 합니다.”
 

이 센터장이 사회적경제 영역과의 협력에 주목하는 것은 자활기업들이 맨땅에 헤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사업아이템을 발굴하지 않아도 이미 특정 분야에서 안정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사회적경제 기업들을 보조하는 거죠. 어차피 자활센터 근로자들은 센터 사업 참여 5년 뒤에는 자립해야만 해요. (교정·교열, 스티커 라벨링, 원단자투리 수거처럼) 그들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발굴하면 ‘일’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자립 후에도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센터장은 참여자들이 근로의욕을 갖게 되는 것도 하나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탁소, 고물상 등 익숙한 아이템이 아니라, 양봉, 책 교정·교열 접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새로움이 참여자들의 의욕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다. 실제 간담회에서 내년에는 양봉 강사로 활동하거나 직접 꿀을 생산해보고 싶다고 말한 참여자도 있었다. 

<자활기업 협업 사례 - 면(麵사)무소가 도시락 배달까지>

센터 자활근로사업단에서 시작해 독립한 자활기업이 기업과 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례도 있다. 주민센터 1층의 ‘면사무소’다. ‘서울지역에 웬 면사무소?’ 의아해 들여다보니 면사무소의 ‘면’은 지역단위 ‘면’이 아니라 음식 ‘면’(麵이)으로 한 끼 식사로 제격인 음식을 팔고 있다. 이들은 예비사회적기업 ‘열두달’과 협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험난한 외식산업에서 살아남기는 취약계층은 물론, 어떤 외식업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취약계층이 운영하는 음식점이 온라인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락 주문 플랫폼 ‘열두달’이 면사무소의 판로 지원에 나선 것이다. 

음식을 만들고 있던 면사무소 근로자에게 주문-조리-배달까지의 과정을 들었다.

“현재 열두달에 제육도시락, 돈가스도시락 2종류의 면사무소 도시락이 등록돼있어요. 야유회, 세미나 등 도시락이 필요한 곳에서 도시락을 주문하면 열두달이 주문내역을 알려줍니다. 약속된 시간에 열두달 측에서 가지러 오고 배달을 해주기 때문에 음식 조리에만 집중하면 된답니다.” 

그렇게 5월부터 현재까지 배달된 면사무소의 도시락은 총 150여 개!

 “키다리협동조합과 ‘발매트 설치’ · 청년 근로자 협업··· 사업 확장 열려있다”

이 센터장의 말대로 사회적경제 영역은 적정 인력을 구하는 것이 항상 화두다. 하지만 그만큼 더 많은 사회적경제기업과의 상생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얘기기도 하다. 

상생의 모델은 앞으로 충분히 더 발굴할 수 있어요. 현재 키다리협동조합과 협력해 학교 현관 발매트를 설치하고 있어요. 그들이 영업을 하면 센터 근로자들이 제작과 설치를 맡습니다. 내년에 정식 사업단으로 추진할 계획인데, 이런 식으로 일을 발굴해보고 있죠. 특히 돌봄영역은 요양보호사, 아이돌봄, 장애활동보조원 어느 분야든 인력난이 심각해서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성동구 ‘지역사회돌봄통합지원센터’와 안심돌봄네트워크 협약을 맺고 요양보호사 일자리, 인건비에 대해 논의하는 중이에요.”

올해 2월부터 자활근로자들이 키다리협동조합과 협력해 5개 학교에 발매트를 설치해왔으며,
내년에는 정식사업단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사진 제공=성동지역자활센터

“만약 노동능력 높은 청년들이 사업단에 참여한다면 소셜벤처와의 협역 영역이 더 다양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어반비즈처럼 사업 인프라를 갖고 있는 소셜벤처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인데, 조사를 통해 협력사업을 발굴해봐야죠.”

센터를 찾는 이들은 저마다 다양한 이유를 안고 있다. 이 센터장은 지역사회적경제협력사업을 통해 파견 기관 취업 이상의 진정한 자립을 꿈꾸고 있다. 그들이 홀로 설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를 지속할 수 있도록 이 성동지역자활센터와 이 센터장의 고민이 깊어간다. 

“폐원단수거사업을 2분이 창업해서 진행할 수 있어요. 점자교정·교열 사업에서도 지금은 한글텍스트만 교정하고 있지만, 점자교정 민간자격등을 취득하면 더 많은 일거리가 생기겠죠. 또 꿀생산 협동조합도 만들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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