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양 1동 향교마을학교에 등교한 가족들이 '전통매듭팔찌'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시울이 어떤 색 할 거야? 톡! 톡! 찍어봐. 파랑이랑 노랑?”

아이들과 부모들이 빙 둘러모여 형형색색 실타래 고르기가 한창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실을 고르고 폴짝폴짝 뛴다. 한창 소파 위에 퍼져있을 시간인 주말 아침 10시, 가양 1동 향교마을학교의 ‘가족과 함께하는 전통공예’ 프로그램이 개강했다. 다섯 가족이 가양 1동 주민센터 안 도란도란도서관 한켠의 강의실에 모였다. 

한복방향제와 전통매듭 열쇠고리 만들기 클래스지만
이날은 참여한 아이들의 낮은 연령대를 고려해
‘메모리와이어’와 ‘날개매듭팔찌 만들기’가 진행됐다. 

“메모리와이어는 구부려도 원래 형태를 기억하고 있어요. 이 와이어에 원하는 색깔의 크리스탈이랑 씨드비즈를 끼워서 팔찌를 만들어보세요.”

공예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구슬 꿰기에 여념이 없다.

“다 만들면 누구 줄거야?”

“제가 할 거에요.”

기자의 질문에 눈은 팔찌에 고정한 채 답만 돌아왔다. 

옆테이블에서는 엄마들이 전통매듭 실을 매만진다.

“선생님, 이 실이 여기로 와야 하나요?” 

클래스 홍보가 덜 된 편임에도 서로 주변에 알려서 함께 참여하게 된 가족들이 많다.

“매듭 공예를 원래 배우고 싶어서 매듭박물관에도 갔었는데 전시만 하고 교육은 없더라고요. 에코맘 프로그램을 같이 했던 언니가 알려줘서 오게 됐어요. 참, 에코맘은 또 안하나요?”

다른 프로그램도 있었던 모양이다. 에코맘은 이날 전통공예 선생님인 ‘그린나래 손아트’ 윤지희 씨가 이전에 마을학교에서 진행했던 천연제품 제작 프로그램이다. 그는 강서구 공예인들이 모여 만든 마을교육공동체 ‘마을에서 놀자’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 아빠 팔에도 들어갈 것 같아!" 아이가 옆 친구에게 만든 팔찌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 재밌으라고 왔는데 오랜만에 이웃들도 만나고 내가 더 재미있게 팔찌 만들어가네요.” 마을학교 첫날, 학생의 소감이다. 
 

지역돌봄의 새로운 모델 실험장이 될 '마을학교'  

이들을 전통공예 수업으로 모이게 한 향교마을학교는 ‘모해교육협동조합(이하 '모해교육')’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모해교육은 ‘학교밖 마을학교 운영'과 '청소년 자립지원'을 주제로  지난 4월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지역의제에 기반한 마을기업 신성장 지원사업(이하 '신성장사업')’에 선정됐다. 신성장사업은 마을기업이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마을을 기반으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모해교육은 이 지원사업을 통해 마을학교를 운영하며 지역돌봄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이들이 만드는 마을학교의 주목적은 교육이 아닌 '돌봄'이다. 최정희 모해교육협동조합 운영팀장은 “마을학교가 필요한 이유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동네와 아이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며 "신성장사업은 마을학교를 실험해보고 주민들에게 이를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최 팀장은 기존에 ‘구’ 단위로 진행돼오던 마을사업들이 ‘동’ 단위로 내려오는 요즘, "돌봄이야말로 동 단위를 연결하는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의제"라고 강조했다. 

최정희 모해교육협동조합 운영팀장

“아이를 케어(care)한다는 건 아침에 깨워주고, 준비물을 챙겨주는 등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잡아주는 일이에요. 강서교육혁신지구 교육복지분과에서 이웃주민이 아이를 깨워주는 사업을 했죠. 이런 실질적인 돌봄은 동을 넘어가서는 이뤄질 수 없어요.”

이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모해교육이 운영했고, 현재 운영 중이거나 만들어질 마을학교는 총 3개다. 가양 1동에는 서울의 유일한 향교 동네라는 특성을 살려 ‘향교마을학교’를 만들었다. 10~11월 5개의 특강을 운영 중이다. 이날 강의는 그 중 하나인 ‘가족과 함께하는 전통공예’다. 이곳에서 강의하고 협력하는 15개 팀은 모두 가양 1동 주민들로 구성돼 있다. 지난 9월에는 화곡권역에 제품 생산-마케팅-판매까지 경제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징검다리마을학교를 운영했다. 8개 프로그램에 총 100여 명 이상의 화곡 주민이 참여하며 성황을 이뤘다. 먹거리와 문화예술을 결합한 바른먹거리마을학교도 김포공항권역에 준비 중이다. 

“학교밖 청소년 자립도 돌봄의 연장, 지역자원 연계 방안 고민 중”

마을학교와 더불어 모해교육이 신성장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또 다른 사업은 ‘학교밖 청소년 자립지원사업’이다. 학교밖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일 또한 돌봄의 연장이라는 생각에서다. 현재 비영리단체 ‘위기청소년선교연합회’, '청소년상담센터'와 협력해 학교밖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지금은 지역 내 위기청소년들이 있는지 파악하고 청소년상담센터의 상담을 통해 이들이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단계예요. 현재 이들에게 각각 어떤 지역자원을 연계해야할지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실험으로 모해교육은 학교밖 청소년들이 직업체험을 통해 진로를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지난 13일 마곡광장에서 열린 미니마을축제에 부스를 마련하고 위기청소년선교연합회 소속 주영광교회의 ‘일진캠프-위기청소년학교밖아이들’의 청소년들이 만든 파우치와 수제비누 등 수공예품을 지역민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마곡광장에서 열린 미니마을축제는 주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네트워킹하는 자리로 올해 6회를 맞았다.
모해교육은 1회부터 축제를 기획하고 참여해왔다.
아래는 학교밖 청소년들이 만든 수제비누와 파우치

최 팀장은 “학교밖 아이들 중 ‘생활공예’에 관심 있고 손재주 있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교회 목사님이 미싱(재봉틀)반을 운영하고 있다"며 "가르쳐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오늘처럼 판로를 마련해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홍보 마케팅 자원과 연계하고, 나아가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려고 해요. 아이들이 만드는 제품의 질을 높여서 상품화할 수 있도록 전문 수공예 협동조합인 바늘땀협동조합, 목화송이협동조합의 컨설팅도 연계하고요. 아이들이 실질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여러 지역자원과 이어주는 것이 모해교육이 청소년자립지원사업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이에요.”

“낯선 사람 따라가는 아이에게, ‘00아 어디가?’ 물을 수 있는 마을 돼야”

모해교육은 학습 위주 아닌 아이들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이다. '뚜벅이 오감체험단' 프로그램을 통해 또래역사체험, 강서구 둘레길 투어, 향교연계 자유학기제 프로그램등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강서구의 역사·인문·사회 과정을 잘 아는 ‘마을강사 양성’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결혼한 맞벌이 부부, 한부모가정도 '애 낳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모해교육 초대 대표인 최 팀장은 둘째 임신 중에도 경영 석사 과정을 마칠 만큼 일과 배움에 열정적이었다. L사의 회계직으로 계속 일해보려 했지만, 결국 둘째를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뒀다. 그는 부부가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으려면 양육과 돌봄을 가정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모해교육을 시작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동단위 마을학교를 바탕으로 한 지역돌봄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 팀장은 “지역의 활동가, 학교, 주민자치회 등 모든 사람들이 연결돼 돌봄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해교육이 하고 있는 ‘지역자원 발굴’ 또한 돌봄 네트워크를 꿈꾸며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과정 중 하나다. 

“모해교육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어요.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각 역할마다 적합한 단체와 개인이 있고, 저는 그 사람들을 잇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최 팀장과 미니마을축제에서 얘기를 나누는 내내 그를 찾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을 일이 너무 많아서 필요한 곳에 다 못가는 게 가장 문제”라는 그는 “그간 마을 일에 많이 참여해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얻었는지 불러주시는 분이 굉장히 많다”며 웃었다.

 

사진. 이우기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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