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1월 12일, 미국 중서부 지역에 2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거대 눈보라가 몰아쳤다. 대부분 하교 후 집으로 돌아가던 어린 아이들이었다. 훗날 미국인들이 “스쿨하우스 눈보라”라고 기억하는 이유다.
전혀 눈이 올 것 같지 않은 날씨였다. 뉴욕타임즈(NYT)에 의하면 그 달 평균 온도는 약 4.5℃였으며 점심시간까지만 해도 아침 서리가 녹고 하늘이 맑게 갰다.
그런데 점심 이후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수은주가 약 –30℃까지 뚝 떨어졌고, 바람까지 휘몰아쳤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교사들은 이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교사들은 일찍 수업을 끝마치고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거나 밤새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남아 석탄을 지폈다.
당시 19살이었던 교사 미니 프리먼(Minnie Freeman)은 다른 결정을 내렸다. 그가 있던 네브라스카주 마이라 계곡의 작은 학교는 눈보라를 밤새 견딜 만큼 강하지 않았다. 프리먼은 교실에서 노끈을 찾아 모든 학생들의 몸에 묶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에 둘러 하나로 이어지게 했다. 그리고 문을 나섰다.
위노나 에반스 리브스가 네브라스카주 여성들을 다룬 책에 의하면 프리먼은 아이들에게 “다 함께 살거나 다 함께 죽는다”며 서로 꼭 붙어 있기를 신신당부했다. 화살 같은 눈송이를 뚫으며 험난한 지형을 1마일 걸은 끝에 그들은 다함께 어느 농가에 도착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악천후 속에서 10명이 넘는 학생들을(정확한 숫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살린 용기 있는 교사의 이야기가 미국 전역 언론에 퍼지면서 프리먼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주 교육 위원회는 그에게 금메달을 수여했고, 직접적인 친분이 없는 국민들도 그에게 끝없는 편지와 선물을 보냈다. 심지어 프리먼의 밀랍 흉상이 전국 곳곳에 전시됐다.
그날의 영웅적 행동을 담은 노래도 등장했다. 시카고의 음악출판사 ‘라이온&힐리’는 ‘13명이 구출됐다’ 혹은 ‘네브라스카의 용기있는 아가씨’라는 제목(‘Song of the Great Blizzard 1888, Thirteen Were Saved or Nebraska's Fearless Maid’)의 노래를 제작했다.
미니 프리먼은 1868년 2월 25일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나 1871 네브라스카주로 이사했다. 그의 가족은 네브라스카주에 처음으로 정착한 세대였다. 프리먼은 교사로서의 커리어 이외에도 다양한 정치·사회 활동을 했다. 풀러튼 시정 개선 단체 대표, 네브라스카주를 대표하는 공화당 국가위원회의 첫 여성위원, 여성 단체 연맹의 주 대표 등 각종 영역에 자리를 차지했다.
미니 프리먼은 1943년 11월 1일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10대 신문 중 하나인 ‘시카고트리뷴’은 당시 프리먼의 부고를 알리는 기사에 “1888년 눈 폭풍에서 17명을 살린 구조자(RESCUER OF 17 IN 1888 STORM)”라고 표현했다.
프리먼의 증손녀이자 위스콘신주에 있는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로리 페니 라이트는 학생들에게 항상 프리먼이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그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회는 여성들이 이룬 성과에 대해 충분한 경의를 표하지 않고, 여자 아이들은 항상 이에 대해 염려한다”라며 “나는 그 아이들에게 ‘여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예가 있다’고 얘기해준다”고 덧붙였다.
자료출처:
https://www.omaha.com/weather/blizzard-of-ravaged-the-plains-with-hurricane-like-winds-deadly/article_687162f2-ff65-5b26-93a4-10202c338a82.html
https://www.findagrave.com/memorial/73179124/minnie-mae-penney
https://babel.hathitrust.org/cgi/pt?id=wu.89063864581;view=1up;seq=246;size=50
https://www.neatorama.com/2017/08/18/Nebraskas-Fearless-Maid/
https://www.youtube.com/watch?v=xSzWvYS1a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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