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랑 플러스"의 원예치료사 박상명씨가 할머니들과 플랜트박스를 만들고있다.

 서울 거여역에서 꽤나 복잡한 골목을 지나자, 컨테이너 하나 정도 되는 크기의 건물에 경로당 현판이 붙어있다. 삐그덕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머리 하얀 할머니 열 분 가운데 커다란 화분과 흙, 그리고 꽃들이 향긋한 내음을 풍기며 대조를 이룬다. ‘플랜트 박스’(여러 식물을 함께 기를 수 있는 대형 화분) 만들기가 이제 막 시작된 모양이다. 협동조합 ‘원예랑 플러스(이하 원예랑)’에서 나온 원예치료사 박상명씨가 오늘의 강사를 맡아,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어르신들 제가 가져온 식물을 한 번 보여드릴게요. 자 어때요, 예뻐요?” 

경로당 한쪽에 10명의 할머니들이 벽을 등지고 나란히 앉아, 꽃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다. “예쁘네, 아따 이거는 좋은 꽃인디? 진짜 돈 많이 들었겄네.” 

가지런히 모여 있는 꽃은 한눈에 봐도 아주 풍성하다. “저희가 좋은 것 많이 가져왔죠? 그러면 이 많은 식물 중에 뭘 제일 먼저 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한 할머니가 자신 있게 나선다. “아따~ 큰 거를 제일 먼저 심어야지.” 

강사는 손뼉을 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오, 대단해. 어떻게 아셨어요?” 으쓱해 하는 할머니. “우리도 다 식물 키우던 사람들이거든.” 얼굴에는 소녀 같은 미소가 번졌다. 
 
“자 그러면 얘네들을 어떻게 놓으면 좋을지 같이 의논 한 번 해볼게요. 얘를 가운데 놓을까요? 어떤 게 더 예뻐요? 이렇게 붙여줄까?” 할머니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강사도 신났다. 

“그것도 이뻐. 선생님 생각은 어떻게 놔야 좋겄어요?” 열띤 토론이 오가고, 몇 개의 화분이 들렸다 옮겨지길 반복한 뒤, 강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어때요? 괜찮아요?” 

할머니들은 본인들의 안목과 강사의 지도에 찬사를 보낸다. “이뻐요. 선생님이 아주 전문가시네. 합격~ 박수!” 

위치를 정했으니, 이제는 식물을 옮겨 심을 차례였다. “식물은 화분에서 팍! 빼는 게 아니고 마사지를 해줘야 해요. 한 번 해보실래요? 오, 맞아요. 그렇게 해주시는 거예요. 훌륭해요, 너무 훌륭하세요.” 

순식간에 화분을 벗어나는 식물들. 할머니들의 세심한 손길에 강사는 감탄을 연발한다. “근디 야 이름이 뭐여요?” “쟈 이름이 뭐라고 그랬는디? 나도 키웠거든...” “아 이름도 모르고 길렀어?” 

할머니들의 재치에 경로당은 한참동안 웃음바다가 된다. 강사는 친절하게 설명해주고는 이따 다시 물어 볼 것이라며, 기억할 것을 신신당부한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 플랜트 박스가 슬슬 모양새를 갖출 때쯤, 누군가 경로당의 문을 두드렸다. “예~ 아이고 우리 회장님 오시네, 우리 꽃밭 좀 보시오 꽃밭.” 경로당의 회장 할아버지도 그 크기와 아름다움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짐짓 놀란 눈치다. 

“나는 꽃 심는 거라고 해서 시원찮게 생각했거든, 사실은 처음에 온다는 걸 내가 안 한다고, 우리 꽃꽂이 안 한다고 몇 번을 퇴짜를 놨나 몰라.” 만들기에 제일 적극적이던 할머니 한 분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고백을 전한다. “근데 그렇게 했으면 큰일 날 뻔했죠?” 섭외의 어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암만, 큰일 날 뻔봤구먼. 안 했더라면 억울할 뻔했구먼.” 

할머니들의 태도 변화가 큰 뿌듯함을 줬는지, 강사에게서 기쁨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화분의 흙이 넘치지 않게 깔아둔 천을 다듬는 것을 마지막으로, 1시간여의 만들기 과정이 모두 끝났다. 

“아이고 이발까지 해놓으니까 더 예쁘네, 그치? 커트 딱 해놓으니까.” 벌써 자기 손주처럼 화분을 대하는 할머니들이었다. “아가~ 우리하고 잘 살자. 식물은 자꼬 예쁘다고 해야 돼, 이게 말귀를 들어요. 그래서 예쁘다, 예쁘다 해야 돼.” 

가르쳐주지 않아도 중요한 사실을 짚어내는 할머니들 앞에서, 강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다’는 오늘 가장 많이 들은 단어였다. 평소 이 말에 인색했던 기자는 어쩐지 멋쩍어서 좋은 카메라를 가져온 김에 단체 사진을 예쁘게 찍어드리겠노라고 했다. 
 
완성된 플랜트 박스를 가운데 두고 모여선 어르신들. 웃으시라고 하는 말은 필요 없었다. 이미 다들 입 꼬리가 높이 올라가 있었다. 그 모습을 행여 놓칠까 힘차게 여러 번 셔터를 눌렀다. 꽃들도, 할머니들의 웃음도 예뻤다. 봉사를 나온 원예랑의 마음 역시 예뻤다.


 


[인터뷰] 임정희 원예랑 플러스 이사장 “반려식물 키우는 책임과 보람이 삶을 풍요롭게 해” 

 

Q. 원예랑플러스는 어떤 협동조합인가요?
A. 건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원예치료 교육을 수료한 원예치료사들이 함께 만든 협동조합입니다. 모든 연령을 대상으로 원예치료를 진행하고 있어요. 조합원은 여자만 7명인데, 외부 원예치료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때도 있습니다.  

Q. 협동조합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A. 원예치료도 알리고,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취약 계층한테 많은 프로그램 제공하고 싶어 작년 초에 설립했습니다. 설립하기 전에는 협동조합이란 것을 잘 몰랐는데, 모여서 사업 준비를 하다 보니 협동조합이라는 모델이 저희 목표와 취지에 제일 잘 맞겠다 싶더라고요.

Q. 원예치료라는 분야, 원예치료사라는 직업이 조금 생소한데 설명해준다면?
A. 저희는 살아있는 꽃과 식물을 가지고 상담자의 스트레스도 풀고, 또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일을 해요. 우리가 일상에 지칠 때 자연을 많이 찾잖아요? 그러려면 보통 멀리 가야 하는데 시간 내서 찾아가기는 힘드니까, 정말 작은 화분 하나라도 곁에 두고 기뻐할 수 있는 분들을 찾아가 원예활동을 돕고, 치료도 해드리는 거죠.

Q. 어떤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지요?
A.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는 아동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든 연령대를 대상으로 각자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방향이나, 소근육도 좋게 하는 움직임 위주로 짜고 있고요. 어린이나 청소년 같은 경우에는 ‘위 캔 클래스’라고 해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원예활동에서 얻는 성취감을 통해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장애인들 같은 경우는 장애 정도에 맞게 난이도를 조절해서 인지 능력이나 정서 기능을 키워주는 치료를 진행합니다. 일반 성인은 육아나 직장생활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많은 만큼, 이를 해소할 수 있는 힐링 프로그램을 많이 하죠.

Q. 활동은 주로 어디서 하나요? 
A. 송파구에 사무실이 있어 인근의 지역사회를 많이 찾아가요. 특히 저희가 집중하고 있는 거여동, 마천동 일대는 굉장히 낙후된 지역인데요. 경로당 같은 경우에도 아까 보셨겠지만, 쭉 누우면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에요. 이처럼 꽃을 경험하기 힘든 처지에 있는 분들을 많이 찾아가려고 하죠. 가입을 희망하는 동문들이 있어 협동조합이 계속 커지고 있는 만큼, 활동 영역을 계속 넓혀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Q. 활동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A. 프로그램 진행할 곳을 섭외할 때 경로당 같은 경우는 보통 전화로 안 돼요. 직접 방문하면서 접촉을 하거든요. 찾아뵙는 것도 한번 다녀오는 게 아니고 다시 가서 하겠다는 걸 확정을 받고, 언제 한다고 또 공지를 붙여놓고 해야 해요. 잊어버리실 수 있으니까, 그날 꼭 와주시라고 부탁도 하고요. 물론 과정이 힘든 만큼 프로그램을 끝냈을 때 보람도 크긴 하죠.  

Q. 최근 펀딩도 진행했다면서요?
A. ‘은빛 청춘들의 행복 쉼터 만들기’라는 프로젝트였는데요. 꽃보다 아름다운 인생을 사신 어르신들에게 식물들로 행복을 드리자는 취지였어요. 모금은 처음 해봤는데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되게 감사하더라고요. 다음번에는 이번에 진행한 노인분들 외에도 장애인분들, 또 아이들처럼 다양한 취약계층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해서 진행하고 싶어요.

Q. 원예활동이 모든 연령대에 다 좋은 이유는 뭔가요?
A. 식물의 초록색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고, 눈도 밝아지죠.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하는 효과도 있고요. 요새는 ‘반려식물’ 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요. 상대적으로 손이 많이 가고 키우기 어려운 반려동물에 비해서 쉽게 접하실 수 있죠. 특히 식물을 키우거나 가꾸는 과정에서 느끼는 책임과 보람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시죠.
A. 보통 원예치료사들이 하는 프로그램보다 저희만의 특화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오늘 진행한 플랜트 박스 만들기도 어느 정도 그런 프로그램인데요. 큰 플랜트 박스 같이 혼자 하기 힘든 것도 협동조합이니까 함께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었어요. 올해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찾아뵀으니, 내년에는 더 전문성을 갖춰 발전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원예랑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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