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 오래된 무덤 위에 여성의 몸이 누워있다. 그 위에는 흰 야생 꽃이 뿌려져 있는데, 벗은 몸이 죽은 것 같지만 동시에 몸에서 꽃이 자라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 사진은 쿠바 출신 미국 예술가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의 작품 ‘실루에타(Silueta)’ 시리즈 중 하나인 ‘야굴 이미지(Imagen de Yagul)’이다. 성적 대상화된 여성 누드 이미지가 아니라, 대지와 결합한 채 자연에 소속된 신체를 표현했다. 뉴욕타임즈는 멘디에타의 예술을 두고 “때때로 격렬하고 여성주의적이며, 주로 날것 그대로였다”고 평가했다.

멘디에타의 작품 '실루에타(Silueta)' 시리즈 중 하나인 '야굴 이미지(Imagen de Yagul).' 촬영장소는 멕시코 자포텍 부족의 오래된 무덤이다.

멘디에타는 1948년 11월 18일 쿠바 수도 하바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혁명을 이끌었던 피델 카스트로 정권에 저항하는 정치가였다. 신변의 위협을 느꼈던 그는 1961년 ‘피터팬 작전(Operation Pedro Pan)’을 통해 멘디에타와 언니 라켈린을 미국으로 보냈다. 피터팬 작전은 교회와 정부가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카스트로 독재 정권을 피해 아이들을 쿠바에서 내보내는 비밀 프로그램이었다. 두 자매는 5년 후에야 어머니를, 18년 후에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타지에서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던 멘디에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고향을 잃었다는 상처를 안고 지냈다. 그는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 예술에 의지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1966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하게 됐다.

1972년 석사 학위를 받고 순수미술 석사 과정을 밟던 중, 간호학과 학생 사라 오튼스가 학교에서 강간·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분노한 멘디에타는 자신의 아파트에 학생들과 교수들을 초대했다. 초대된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마주한 건 하반신이 피에 물들어고 옷이 벗겨진 채로 거실 테이블에 엎드려있는 멘디에타의 모습이었다. 그는 사건에 대해 경찰이 서술한 대로 장면을 꾸며 끔찍한 범죄를 행위예술로 비난했다. 소 피와 자신의 집을 활용해 사건 장면을 재구성했으며, 1시간 동안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멘디에타는 아파트 전시를 통해 자신의 신체가 작품 속 대상으로서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깨달았고, 본격적으로 몸을 예술에 활용한다. 그가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200여개의 작품으로 제작했던 실루에타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다. 멘디에타는 시리즈의 각 작품에서 직접 땅에 누워 주변 나뭇잎, 가지 등과 섞인 자신의 모습 혹은 땅에 찍힌 신체 자국을 촬영했다.

시리즈 제작 장소는 멕시코와 미국 아이오와를 넘나들었다. 뉴욕타임즈는 멘디에타의 발언을 인용해 “자연에서 실루에타 시리즈를 만들며 옛 고향(쿠바)과 새로운 생활터전(미국)을 이을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지금 살고 있는 곳의 문화가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뿌리와 문화적 정체성은 쿠바의 유산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아나 멘디에타의 인터뷰 영상. 영상 속 그는 "나는 자연 환경 속에 조형물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사진 출처: 헤이워드 갤러리 전시회 예고 영상 유투브 캡쳐)

멘디에타는 1980년에는 존 시몬 구겐하임 재단 펠로십을 수상, 미국국립예술기금에서 연구비를 받고 1983년에는 로마상까지 수상하는 등 예술가로서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1979년 열었던 개인 전시회에서 미니멀리즘 조각가 칼 안드레를 만나 1985년 결혼한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8일 자신의 아파트 34층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살인죄로 기소됐고, 지나가던 행인이 그들이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지만 법원은 증거불충분으로 안드레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NYT에 따르면 멘디에타의 작품들은 최근 몇 년간 재조명되고 있다. “멘디에타는 관람자들이 성별, 인종, 혹은 다른 사회적 요인들과 상관없이, 남들과 공유하는 인간성으로 작품과 연결되길 격려했다”고 NYT는 전한다. 

자료출처:
https://www.nytimes.com/2018/09/19/obituaries/ana-mendieta-overlooked.html
https://www.theartstory.org/artist-mendieta-ana-artworks.htm
https://www.theartstory.org/artist-mendieta-ana-life-and-legacy.htm
https://www.guggenheim.org/artwork/artist/ana-mendieta
https://www.flashartonline.com/2014/01/ana-mendieta-traces-hayward-gallery-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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