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소비 만능시대. 쉽게 사고 버리는 탓에 지구는 온갖 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폐기물도 잘 활용하면 소중한 자원이 된다. 쓰임을 다해 버려진 물건들에 새 숨을 불어넣는 신기한 새 활용 세상을 소개한다.

에코파티메아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새활용(업사이클) 디자인 브랜드다. 아름다운가게에 뿌리를 두고 2007년 탄생했다. 전국 110여 개의 아름다운가게 매장에서 쓰임을 다해 폐기용으로 분류된 물건들을 가져와 생명을 연장시킨다.

지난해 사용한 원재료는 총 2830kg. 소파 가죽, 가죽 재킷, 자투리 어닝(차광막), 데님, 양복바지, 셔츠 등 그 출처도 다양하다. 이들은 지난 10여 년간 인형, 필통, 가방, 카드지갑, 파우치 등 100여 종의 제품으로 재탄생했다.  

 

세상을 향한 외침.. 환경을 지켜주세요.

에코파티메아리 마스코트 인형 '릴라'씨의 다양한 모습들

대표적인 상품은 에코파티메아리의 마스코트 인형 '릴라'씨다. 고릴라 형상을 한 마스코트 인형 릴라씨에는 에코파티메아리가 세상에 던지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았다. 환경과 나눔이다. 지금보다 환경이 더 깨끗해질 수 있다면 멸종 위기에 놓인 고릴라들이 웃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릴라씨의 팔이 유난히 길다. 그 긴 팔로 소외된 이웃을 품어주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2007년 침팬치의 어머니로 불리는 제인구달 박사가 아름다운가게 매장을 방문해 릴라씨와 볼을 맞댄 모습.(사진제공=아름다운가게)

 

"릴라 씨는 주로 어린이 티셔츠를 활용해 만듭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부모님들의 인식이 내 자녀에게만큼은 예쁘고 새로운 것을 입혀주길 선호하다 보니 다른 애가 입던 옷을 잘 사 입히지 않아요. 그래서 기증품 중 아동 티셔츠가 잘 안 팔립니다. 아동 티셔츠는 천연소재가 많고 색감도 밝아 인형 만들기에 적합합니다.” - 신나리 에코파티메아리 팀장

 

“ 기증자들의 마음이 고맙고 소중했다”

47년 동안 가방을 만들어온 장인 황용진 씨.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 2 층에 자리 잡은 에코파티메아리 매장을 방문하면 제품 전시·판매장 뒤편으로 큰 공방이 보인다. 이 공방에는 47년 동안 우직하게 가방만 만들어온 가방 제작의 달인 황용진 씨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다.

황 씨의 손을 거치면 웬만한 것은 다 되살아난다. 아직 새활용이란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인 12년 전부터 폐현수막을 활용한 가방을 선보였다. 

"외국인들이 한글문양이 들어간 가방을 좋아했어요. 12년 전 인사동에 아름다운가게 매장이 있던 시절 숄더백을 12~13만 원에 팔았는데 제법 인기가 있었죠. 그런데 기증품 가운데도 훼손됐거나 너무 유행이 지나 팔 수 없는 물건들이 버려질 처지인 거예요. 기증해주신 분들의 마음이 너무 고맙고 소중해 하나라도 더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황용진 씨

새 원단이 아닌 이미 쓰인 소재로 물건을 만든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황 씨는 “ 힘들어 하청을 줘봤는데 엉망으로 만들어 놔 그만두었다”고 털어놓았다.

공방 선반에 새생명을 기다리고 있는 폐자원들이 쌓여있다.

 

"새 원단으로 만들 때보다 공정이 5배나 더 늘어나요. 새 원단 갖고 십수 년 가방을 만들어온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적응하기 쉽지 않아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무늬만 새활용은 사절... 원칙에 충실 

디자이너의 상상력과 재단사들의 기술력이 더해져 에코파티메아리는 보다 다양한 폐자원을 소재로 한 제품을 개발했다. 기존에 가죽과 데님 위주의 소재에서 2016년에는 햇빛과 비바람을 가리는 차광막의 소재인 ‘어닝’을 활용해 생활방수와 탈변색 방지를 강화한 6가지 제품을 만들었다. 2017년에는 대형천막을 만들 때 사용되는 '타폴린'이란 소재를 활용해 다양한 의류 소품을 개발했다.

신나리 에코파티메아리 팀장

 

“제작 과정에서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을 끼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수작업은 기본이고 재단할 때 공간 활용을 잘해 버려지는 조각들을 최소화합니다. 접착제인 본드 사용을 최소화하고 일회용품을 한 번이라도 더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가령 철형 (일정한 패턴으로 가죽을 자를 때 쓰는 칼)은 보통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다시 만들어 쓰는데 저희는 하나의 철형으로 보다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식이죠.”

그는 “ 새활용이란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이를 지켜내려는 과정에서 주는 감동이 더 크다” 고 덧붙였다.

지난 5월부터 매주 수요일 공방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방문한다. 새활용플라자를 찾은 견학생들로 이곳에서 가죽팔찌만들기 체험으로 교육을 마무리한다. 그동안 한 달 평균 100여 명의 교육생들이 찾았다.

?골판지와티셔츠를 활용해 만든 종이엽서. 종이엽서키트는 교육용으로 어린이들에게 인기다.

 

“환경은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죽 팔찌 만들기. 셔츠를 활용한 엽서 만들기, 일회용 젓가락 대신 여러 번 쓸 수 있는 젓가락 보관집 만들기 등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새활용 제품 만들기 키트(kit)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구매가 곧 나눔으로 연결

에코파티메아리가 다른 새활용업체보다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수익금 전체가 아름다운가게로 다시 흘러들어가 소외된 이웃을 돕는데 쓰인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의 구매가 곧 나눔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는 의류공장이 밀집한 ‘라나 플라자’ 센터가 무너져 1135명이 사망하고 2500명이 부상하는 사상 최악의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에코파티메아리는 아름다운가게가 이들 피해자들의 자립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공방인 ‘뷰티풀웍스’에 4년째 가방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고 디자인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제품을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가져와 한국에서 판매해 2016년에는 1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뷰티풀웍스에는 15명의 여성근로자들이 모여 기술을 배우고 제품을 만들어 현지에서 판매하고 협업도 하면서 자립을 꿈꾸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연소재 '주뜨'로 만든 가방. 에코파티메아리는 가방디자인을 공유하고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품 생산 공정의 일부를 일반 기업이 아닌 자활센터와 지역에 나눠 그 온기가 골고루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한다. 세탁은 녹색빨래방 사업을 진행하는 서울광진지역자활센터에게 맡기고 마스코트 릴라씨의 봉제는 구로의 자활공동체인 ‘여우솜씨’에 의뢰해 자립을 돕고 있다.

새활용플라자 2층에 위치한 에코파티메아리 매장에 가면 다양한 새활용 제품들과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디자이너 경력 5년 차로 업무를 총괄하는 신팀장은 에코파티메아리를 떠받치는 정신을 그물코 정신이라고 소개했다.

씨줄과 날줄로 빈틈없이 서로 엮인 그물코처럼 너와 나 우리는 모두 서로의 삶에 책임이 있는 존재입니다. 환경파괴, 절대빈곤 등의 사회문제가 결국 나로 인한 것이며, 내 삶과 남의 삶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죠.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쓰레기 하나도 이웃의 아픔도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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