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이현 모어댄 대표를 최근 이사한 서울 합정동 사옥에서 만났다.

“식당에서 저희 가방을 메고 있는 분을 봤어요. 너무 기뻐서 제가 밥을 사드렸죠.(웃음)”

자동차 가죽시트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모어댄’의 최이현 대표(37)는 최근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컨티뉴’ 백팩을 멘 고객을 만난 일화를 털어놨다. 방탄소년단 멤버 RM부터 방송인 강호동, 김동연 경제부총리, 최태원 SK그룹 회장까지 유명 인사들이 멘 가방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모어댄 제품을 이용한 일반 고객을 일상에서 만난 건 처음이었다.

한 브랜드가 소비자의 일상생활에 스며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창업 4년 차 사장에게는 의미 있는 경험임이 분명했다. 최 대표는 “모어댄의 목표 중 하나가 국내외 어디서든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인데, 첫 단추가 끼워진 것 같아 무척 기뻤다”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새활용플라자 ‘조기 졸업’해 8월 합정동에 쇼룸 갖춘 새 둥지 틀어
모어댄은 옷가게였던 주택을 활용해 1층은 쇼룸, 2층은 사무실로 사용한다.

서울 용답동 새활용플라자에서 8월 합정동으로 이사해 새 둥지를 튼 모어댄 사옥을 방문했다. 기존에 서울시에서 지원을 받아 새활용플라자에 3년 계약을 하고 들어갔지만, 공간이 충분치 않아 ‘조기 졸업’을 택했다. 최 대표는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확장해야 하는 시점에 독립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나왔다”고 말했다.

합정동에 꾸린 새 보금자리는 원래 옷가게였던 40평(132㎡) 규모의 2층짜리 주택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1층은 컨티뉴의 제품을 전시해둔 쇼룸, 2층은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공간이다. 최 대표는 “모어댄 오프라인 매장이 경기 고양 스타필드점, 제주 JDC 면세점 2군데인데, 서울에도 매장이 있는지 묻는 고객들이 많았다”며 “리사이클링 제품이다 보니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쇼룸 겸 사무공간으로 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는 10일 1층 쇼룸의 정식 개원을 앞두고 있지만, 사옥 내부는 아직 어수선했다. 지난 4~5월에는 SK스토아의 홈쇼핑 방송을 준비하느라, 8월에는 제주 면세점 입점에 집중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탓이다. 유명인들이 사용한 가방, 리사이클링한 친환경 제품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모어댄’은 여러 유통업계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홈쇼핑?면세점 입점부터 미국 법인까지 설립하며 세계 곳곳으로 
최 대표는 "앞서 유명인들이 자발적으로 저희 제품을 사용해주셔서 홍보가 됐는데, 만약 가능하다면 문재인 대통령, 가수 GD, 혁오 등이 메주셨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지난달 10일 모어댄의 ‘컨티뉴’가 제주공항 JDC면세점에 입점했다는 소식은 큰 이슈였다. 국내외 브랜드 경쟁이 치열한 잡화 분야에서 사회적기업의 제품이 면세점에 입점했다는 자체가 드문 일인데, 판매 성적도 좋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면세점 측에서도 사회적기업 제품을 들여놓아서 잘된 적이 별로 없어 큰 모험이었을 텐데 주목받고 있어 다행이다”라며 “한 번은 준비된 상품이 품절돼 매장 진열대가 전부 비었던 적도 있었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국내를 너머 해외로 뻗어 나갈 준비에도 한창이다. 지난 1월 독일에서 열린 윤리적 패션쇼에 참가했을 때 스웨덴 자동차사 ‘볼보’에서 모어댄 제품을 보기 위해 팀을 파견했을 만큼 호응을 얻었고, 현지 바이어로부터 주문도 받았다. 지난해에는 미국에 법인을 설립해 이달 LA에 매장을 낼 계획이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태국, 싱가포르 등 15개국에 수출도 한다.

덕분에 모어댄의 성장 곡선은 가파르게 상승해 최근 월 매출 2억원을 넘어섰다. 2015년 6월 5일 ‘환경의 날’에 맞춰 모어댄을 창립했을 당시 월 400만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이듬해 9월 브랜드 ‘컨티뉴’를 출시한 후 2000만원이 됐고, 현재는 그 10배가 된 셈이다. 올해 초 목표로 했던 연 매출 10억 원도 무난히 넘길 전망이다. 

최 대표는 “스타트업은 매출보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중요한데 가까스로 넘었다”면서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내년, 후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마케팅, 제품 기획, 디자인 등 분야 직원을 모집 중이다. 현재 정규 직원이 총 11명인데 그 중 절반인 6명은 경력단절 여성, 북한이탈 주민 등을 고용했다.

사회적기업의 모범 사례 맹목적 지원보다는 한 단계씩 밟아가야
최 대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건 그냥 '프로젝트'일 뿐"이라며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저마다의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기업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판로개척과 홍보?마케팅에 성공한 모어댄은 본받고 싶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여기에 오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2006년 영국 유학 당시 헐값에 산 중고차 BMW ‘미니’가 뺑소니 사고를 당하면서 폐차해야 했을 때 너무 아쉬워 자동차 시트의 가죽 커버를 벗겨온 것을 계기로 최 대표는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 

한국에 돌아와 수백 군데 폐차장을 돌며 가죽을 모으면서 문전박대도 수없이 당했고 ‘네가 재활용한 가방을 한 개라도 팔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컨설턴트의 조롱도 들어야 했다. 다행히 ‘쓸모 없는 것을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그의 철학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능성이 시작됐다. 모어댄의 ‘쓸모’를 확인한 각종 경진대회에서의 우승과 SK, LG,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의 지원도 성장에 꼭 필요한 원동력이 됐다.

소셜벤처, 스타트업을 시작한 후배들에게 최 대표는 “많은 분들이 모어댄의 사례를 곱씹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쉽게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맹목적으로 지원만 받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경진대회 입상, 대기업의 지원도 사업의 목표와 방향성에 따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대표는 “너무 많은 기회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기보다는 각자의 역량에 맞게 한 계단씩 밟아가야 한다”며 “사업을 지지해준 주체들과 제대로 관계 설정을 맺고, 다음 단계의 밑거름으로 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잡화 120여 종을 만들어 판매 중인 모어댄은 앞으로 '원단'을 제공하는 회사가 되는 게 목표다.

가방, 지갑, 열쇠고리 등 현재 120여 종의 제품을 판매 중인 모어댄은 올해 신발을 만들어 새롭게 선보일 계획이다. 최종적인 목표는 ‘원단’을 제공하는 회사가 되어 세계 유수의 패션 회사에 모어댄이 만든 가죽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원단 회사인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모어댄의 롤모델이에요. ‘최고의 정장은 곧 제냐의 원단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원단의 질이 최고 수준이죠. 업사이클 분야에서 이상적인 모델로는 모어댄의 원단이 선택되길 바라고 있어요. 우리 회사의 가죽을 통해 품질도 좋고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주고 싶어요.(웃음)” 

사진. 이우기 작가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